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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Oct 19. 2023

급식을 먹지 않는 교사

  교원공동체 모임이 있어서 이웃 학교에 갔었어. 친한 선생님이 근무하고 계신 곳이라 이름은 익숙한데 막상 학교 안은 그때 처음 들어갔었지. 회의나 출장이 있을 때는 주로 교육지원청이나 본청이 많고, 거점 학교도 더러 있지만 의외로 인근 옆 학교 갈일이 생각보다 없잖아. 조금 신기한 마음을 품고 교정을 살폈어. 우리 학교와 규모, 연식, 학급 수 등 쌍둥이처럼 닮은 곳이라 얼핏 봐도 비슷한 게 많더라. 학교들이 저마다의 교육 철학과 기조에 맞춰 다양한 구조와 건축 양식을 가졌다면 좋을텐데 생각한 적이 많은데, 역시 그 학교도 복도, 화장실, 교실, 차가운 손잡이, 네모 투성이 창문. 사진 잘 찍으면 우리 학교라고 해도 누군간 믿겠지 싶을 정도로 닮았더라고. 


  회의를 마치고 나니 5시쯤 되었을거야. 친한 선생님이 배려해주셔서 손님 자격으로 함께 그 학교의 석식을 먹게 되었어. 그런데 맙소사. 너무 큰 반전이 있었어. 그 학교의 교직원 식당이 너무 너무 멋진거야! 누가 봐도 건물의 가장 아름다운 곳을 식당으로 만든 것 같았어. 홀 형태의 넓은 공간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유려한 곡선이 부각되는 책장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어. 늘 시끄럽고 정신 없을 식당이란 공간에 우아한 율동감을 주더구나. 높은 천장과 넓은 홀에 넉넉하게 놓인 좌석은 아무 때나 와도 교직원 누구나 원하는 곳에 앉을 수 있어 보였어. 당연하듯 잔잔한 노래도 흘러나오고 있었고, 시원하게 뚫린 전면창으로는 조경 사업을 하는 학교 재단의 수준에 맞는 잘 가꿔진 정원이 보였어. 


  교사는 일과 중 모든 시간이 업무 시간이잖아. 휴게시간이 없지. 점심 시간에도 학생 안전의 사각지대가 만들어지면 안되기에 그 시간도 근무 시간에 포함되잖아. 그래서 돌아가며 급식 지도라는 업무를 하는 것이고. 우리 학교 식당은 학생 식당 한켠에 가벽을 세워 만든 임시 공간 같은 곳이잖아. 같은 재단의 여러 학교 교직원이 이용하는 것에 비하면 규모도 작아서 줄을 서야 할 때가 많았고, 자리도 비좁았지. 다양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학생 급식 시스템에서 아이들이 선택하지 않아서 남은 메뉴를 주는 걸 알았을 때 음식에 크게 미련 두는 스타일이 아님에도 살짝 빈정 상하기는 했어. 


  넌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에겐 더 큰 문제가 있었어. 대학을 졸업하고 부터 간헐적 채식을 시작하고, 주중에는 채식지향인이 되어 페스코 식단을 먹게 된지 오래였거든. 초임 때는 눈치 본다고 티도 못 내고 적당히 섞여서 잘 먹는 척 했어. 시간이 지날수록 고역이어서 은근 슬쩍 조금씩 못 먹는 걸 식판에 담지 않기 시작했지. 그 때는 이렇게 배식 시스템을 하는 직장에 다녀서 다행이구나 했어.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만 퍼서 먹으면 음식을 남겨서 버릴 일도 없고. 허전한 내 식판의 빈 칸에는 뭐든 잘 먹어라, 다이어트 그렇게 하지 말아라, 관리 세게 하네, 등등 여러 동료들의 말들이 반찬 대신 올라오곤 했어. '제가 채식을 해서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요.' 라고 말해도 똑같이 체중 관리, 건강 관리에 대한 조언들을 해줬어. 불편한 말은 거두는 게 좋아서 그냥 듣고 말았지. 그들도 그냥 나처럼 보고 말아주면 좋았을텐데.  


  그런데 어쩜 그렇게 먹을 게 없니. 빨간 고기 줄까 갈색 고기 줄까. 밑반찬과 메인 요리는 대부분 고기 일색이었고 국물 요리도 육고기 베이스인 경우가 허다했어. 결국 연차가 조금 쌓일 무렵 급신 안 먹어를 선언하고 도시락을 싸와서 먹기 시작했어. 마음 편하고 좋더라. 원래 많이 먹는 편도 아니었던지라 가볍게 먹을 수 있어서 좋았어. 그런데 어느 날. 교내 메신저로 교감선생님으로부터 단체 메시지가 왔어. 이것저것 당부의 말씀과 함께 시작된 메시지의 요지는 다음 달 부터 전 교사는 급식을 먹어야 한다는거야. 당시 급식 퀄리티에 불만을 품은 분, 체질 개선이나 체중 관리로 식단 조절을 하는 분 등 여러 사유로 급식을 먹지 않는 교사가 나 외에도 몇 분 계셨어. 메시지에는 한두명이 빠지다보면 수가 더 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단체 급식의 효율이 떨어지고 1인 식사 단가가 더 올라갈 수 있으니 협력해 달라 써 있었어. 협력이라는 이름은 협박의 다른 말이기도 한 걸까?  


  처음으로 교감 선생님에게 길다면 긴 메시지를 보냈어. 


'저는 간헐적 채식주의자라 일반 급식을 먹는 것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몇년 간 어떻게든 먹어보려 했는데 반찬과 국의 거의 대부분을 못 먹는 날이 많아지며 결극 급식을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식비가 그냥 빠져나가서 아깝지만 다른 분들께 피해가 된다면 급식비를 내고 먹지 않는 게 교감 선생님이 제시하신 협력에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곧바로 나이스한 내용을 담은 답장이 왔지만, 그날 난 아마 조금 찍혔겠지? 하하하. 그런데 속이 후련했어. 누군가와 당분간 조금 불편해질 수는 있지만 내가 중요하다고 여긴 삶의 태도를 꺾지 않았고, 이를 인정받은 하나의 사례로 남을 수 있어서. 이 작은 승리의 기억이 학교를 나온 뒤에도 오래 남아 있어. 학교 안에서 잡음을 내지 않는 교사가 되기 위해 학교 밖의 나를 속였다면, 지금도 후회했을 것 같아. 너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작은 선택 속에서 교사라는 이름 안에 너를 힘들게 우겨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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