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일하는 동안 매년 3월의 기억은 잘 없어. 정말 말 그대로 늘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의 상태로 3월 한 달을 살아온 것 같아. 햇병아리 교사일 때나 제법 익숙해진 중견 교사가 되어서나 3월 울렁증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어. 지금보다 학생 수가 많았던 시절엔 한 해 입학생이 300명이 넘을 때도 있었거든. 근무하던 곳이 남녀공학 고등학교였는데 1학년이 자그마치 12 학급이었어.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 모든 1학년 학생을 수업이나 다른 교육활동으로 빠짐없이 만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근무 학교의 학생은 모두 우리 학교의 학생이라 입학한 순간 이미 나와 관계가 생긴 사이라고 생각했어. 아, 그리고 이 학교에 새로 부임하는 교사들도 계시는구나. 3월 한 달간 낯선 얼굴의 교사는 뚝딱거리지만 먼저 인사하려 노력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고 할 때가 훨씬 많지만. 3월 말은 되어야 얼굴과 이름과 교과와 부서, 그리고 행정업무가 짝을 이뤄 머리에 떠오르곤 해. 하지만 업무 접점이 전혀 없는 교사는 1학기가 끝날 무렵에도 잘 모르기도 하고, 심하면 1년 동안 '흠, 누구시더라?' 상태지만 티 안 내고 인사하며 지낼 때도 있어. 그러고 보면 하루아침에 이렇게 많은 인원의 낯선 사람을 만나는 직업도 그렇게 많지는 않겠구나.
이제 알았지? 갖 입학한 신입생들만큼이나 3월 2일의 교사들도 교정에 보이는 낯선 얼굴들을 보며 속으로는 잔뜩 긴장하고 있단 걸.
3월을 맞이한 교사들에게 각자의 리추얼이 있어. 3월 한 달간은 꼭 풀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동료가 있었어. 학급과 수업 시간에 만나는 아이들에게 기합을 전달하는 의미에서랄까. 나이가 어릴수록 아이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교사로 보이는 게 제법 중요해. 이때 잘못 말리면 3월 말 즈음엔 "나 올해는 망한 것 같아."라는 말을 하는 교사들이 속속 등장하지. 나도 자주 그랬던 것 같아. 3월이 오기 직전엔 2월 방학 기간까지 하던 운동 클래스나 각종 레슨을 2주, 길게는 1달간 홀딩해 놓는 교사도 많아. 왜냐면 3월엔 학부모 회의 같은 행사나 워낙 초근이 많고, 또 그 초근이 갑자기 생기는 경우가 더 많거든. 퇴근 이후의 시간을 계획하고 약속하기가 힘들어. 나 역시 3월엔 평일뿐 아니라 주말에도 약속을 쉬이 잡지 않았어. 주말엔 그냥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보내야 다가오는 한 주를 버틸 수 있겠더라고.
완벽을 지향하는 완벽주의자(절대 완벽하지 않다는 뜻)에 평소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 그런지 난 3월에 아프지도 못했어. '찍소리도 못한다.'라는 말 있잖아. 앓는 소리 한번 못 내고 있다가 3월이 가면 기다렸다는 듯 온몸에서 주는 신호를 그제야 눈치채. 예민한 건지 둔한 건지. 어느 해에는 4월 1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야. 어이가 없더라. 쉭쉭 쉰 소리를 내며 병원에 갔더니 성대 결절 직전의 상황이라는 거야. 성대가 너덜너덜해져서 닫히고 열릴 때 바람 통로로서의 역할을 하나도 못 한다며. 거짓말 같지? 아니야. 정말. 못 믿겠으면 잔인한 3월에게 물어보렴.
2일과 31일만 있는 것 같던 3월은, 그렇기 때문에 정말 휙 하고 지나가. 하루하루 거대한 사건이 촘촘하게 일어나는 것 치고 시간은 빨리 흘러. 신기한 게 출근해서 여는 하루는 더럽게 안 가는데 한 달은 엄청 빨리 가더라고. 그렇게 폭풍의 3월을 보내고 4월이 되면 점점 아이들 하나하나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 이미 갈등을 겪고 대화를 나누게 되거나 강렬한 개성을 뽐내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개 4월이 되며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 같아. 운동장에 햇살이 머무는 시간도 점차 길어지고, 낮기온이 오르며 점심을 먹고 나면 노곤노곤 해지는 시기지.
당시 교사들 사이에 3년 차 징크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어. 3년 차, 6년 차, 9년 차, 12년 차. 이렇게 3년 주기로 번아웃이 세게 온다는 거야. 나도 그때 3년 차였나. 유난히 4월을 맞이하는 게 힘들더라고.
'아무래도 난 좋은 교사가 아닌 것 같아.'
일하다 보면 저 생각 종종 하잖아? 내가 그 늪에 폭 빠졌어. 아이들에게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속으로는 '이거 맞아?'라는 의문이 들고, 생활 지도를 하거나 학습에 개입하는 타이밍도 맞는 건지 주저하게 되었어. 친한 동료들에게는 슬쩍 말했지만 멍한 상태라는 게 티가 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
"샘, 샘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이게 뭐야?"
"민들레 홀씨예요. 밖에 많은데 샘 바쁘셔서 오늘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셨죠?"
"아..."
"저기 창문에서 호- 하고 불어 보세요. 기분이 좋아지실 거예요. 힘내세요. 샘!"
당시 나는 별관 3층의 특별실에서 근무하고 있었어. 여기까지 민들레 홀씨를 온전히 가져오려고 급식시간에 나온 식혜를 떠먹기 위해 구비되었던 종이컵으로 덮어서 소중히 들고 왔더라고. 점심시간을 마치는 준비종이 울렸고, 아이들은 바람을 탄 민들레 홀씨처럼 바삐 교실로 갔어. 마침 공강인 나는 특별실에 혼자 남아서 창문으로 향했어. 호- 하고 불었더니 생각보다 더 가볍고 경쾌하게 흩어지는 홀씨들. 이렇게 민들레 홀씨를 불어본 게 언제였더라.
'내가 정말 엄청나게 멋진 일을 하고 있구나.'를 자각한 날이야. 이렇게 상냥한 아이들의 성장을 3년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니. 지금 그 아이는 3년 차 교사였던 그때의 나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어른이 되어 있겠구나. 그때의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교사였을까. 어떤 어른이었을까. 매 순간 완벽한 교사로 보이고 싶었어. 그래서 '글쎄' '잘 모르겠다.' '미안해'처럼 불분명한 말을 절대로 해선 안 되는 것 같다 생각했지. 근데 자꾸 그런 상황에 처하는 날 보고 실망했고 어디로든 도망가고 싶었나 봐. 그래서 내게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위로를 건네는 그때의 그 아이들이 너무 눈부셔 보였어. 나도 때로는 교사로서의 나의 성장과 고민을 내비치고, 감정을 표현하는 교육적인 의사소통을 연마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 교사관이 바뀐 거지.
이후로도 민들레 홀씨를 불었던 때처럼 아이들 덕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많았단다. 그 순간을 모두 이어 붙이면 교사를 그만둔 지금도 나를 다시 반짝하고 살아나게 하는 엄청난 힘이 된단다. 너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지? 어쩌면 그 순간을 그리며 교사가 되길 꿈꿨던 것도 같아.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