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요즘 왜 이리 코를 골아?

네가 말로만 듣던 걔가 나야, 제니(JENNIE) : 임보일기 4

by 홍지이
20241207_201013.jpg 피곤하기보다 오히려 우리 집 피로회복제로 열일 중인 제니 :D

"여보, 요즘 제니도 돌보고 원고도 마무리하느라 좀 피곤한가 봐?"

"음~ 그런가? 산책도 두 번 나가고, 원고도 탈고해야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뭐 특별히 그렇진 않아."

"아, 그래? 근데 그럼...."

"왜?"

"요즘 밤에 왜 이리 코를 골아?"

"엥???? 뭐라고?!!!!!!"


쩌어어억. 서울깍쟁이인 내 자존심에 큰 금이 가는 소리.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자, 연애도 장장 6년을 했고 결혼한 지는 10년이 넘는 남편과 아직 방귀도! 아니 트림도 안 텄는데, 코골이라니. 그럴 리가 없다며, 우선 잡아 떼 보았다. 백 번 양보해서 너무너무 피곤하면 최소 이는 갈지언정, 코 곤다는 소리는 내 평생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다고. 숨소리가 커서 그런 거 아냐? 방이 좀 건조해서 코가 말라서 나는 소리를 들은 거 아냐?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했다.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듣던 남편이 대뜸 내게 핸드폰을 쓱 들이밀며 영상을 하나 보여주었다.


핸드폰에는 동영상인걸 알아챌 만한 옅은 노이즈가 보이는 깜깜한 화면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들리는 믿을 수 없는 그 소음.


'드르렁~ (한 박자 쉬고) 드르렁~ (두 박자 쉬고)'


한밤 중 침실에 울려 퍼지는 작지만 매우 낯선 소리에 잠에서 깬 남편은 그 와중에 내가 이렇게 믿지 않을까 봐 어두운 침대 머리맡을 손으로 더듬어 핸드폰을 찾은 뒤 눈도 잘 못 뜬 상태에서 우선 아무 곳을 향해 동영상을 찍었단다. 화면보다 중요한 코골이 소리만 들어있으면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생각으로.


짧은 영상에 소리가 매우 작았지만, 고요한 밤 작은 침실을 가득 채운 소리는 너무나 확실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고, 이제 코 고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에 자괴감이 든 나를 보며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지 뭐~ 귀엽고 웃겨서 찍은 거야.'라 말했다. 하지만 난 빼도 박도 못 하고 코 고는 아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에서 벗어나려 허우적 되고 있었다.


그날 오후 탈고해서 보내야 할 원고를 다듬으려 컴퓨터 앞에 앉아서는, 포털 사이트부터 들어가 다짜고짜 '코를 고는 이유'를 검색하고 더 절망했다. 아직 50세도 아니고, 남성은 더더욱 아니며, 다행히 (아직) 비만은 아니고(목과 배 주위에 지방은 많지만 ㅠㅠ) 무엇을 고쳐야 코를 골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였다. 이대로깍쟁이 라이프는 끝나버렸구나 하고 잠시 낙담했다. 그 후 원고 수정에 두 멍멍이들 교대로 산책, 바쁜 하루를 보내며 코골이 사건은 일상의 틈새 어느 곳에 잘 자리해 두고 서서히 잊었다.

스크린샷 2025-01-11 오후 7.47.18.png 출처 : 네이버 (https://www.naver.com/)


그날 밤,


'도로롱~ (한 박자 쉬고) 도로롱~ (두 박자 쉬고)'


이번엔 내가 잠에서 깼다. 어허, 이건 또 누구신가. 남편도 코골이 공범이었던 것인가! 잠결이지만 어딘가 마음이 후련해지는 이 사실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나 역시 침대 어딘가에 있을 핸드폰을 찾으려 손을 뻗어 침대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코골이 소리의 방향이 내 옆에 누워있는 남편의 머리 쪽이 아니라 우리의 발 쪽에서 들리는 듯했다. 평소 반려견 무늬는 우리와 같은 침대에 누워 자는데, 주로 남편의 다리에 기대 자곤 한다. 그런데 무늬는 코를 곤 적이 없다. 앗! 소리가 좀 더 아래에서 난다. 우리가 쓰는 저상형 침대 주변에는 두세 개의 반려견 침대가 함께 놓여있는데, 그중 발 아래쪽에 놓인 반려견 침대에서 나는 소리였다.


거실에 켜진 스탠드를 통해 침실로 세어 들어온 빛 덕에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던 참이었다. 그 침대에 똬리를 튼 갈색 덩어리. 코골이의 범인은, 아니 범견은 바로 제니였다!

20241212_134627.jpg 범견은 이 안에 있어!

내가 뒤척이는 인기척에 남편도 잠에서 깼다. '쉿ㅡ' 제니가 깰까 봐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다른 손으로 발아래 제니가 누운 쪽을 가리켰다.


'드르렁~ 코로롱~ 도로롱~ 헙~ 푸우~'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주 다양한 소리로 코를 고는 너! 이제보다 정말 고단했던 건 내가 아니라, 하루아침에 낯선 집에 와 낯선 사람과 강아지 언니와 함께 살며 새로운 질서를 배우고 온 힘을 다해 적응해 내는 중인 제니였던 것이다. 그 뒤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제니의 코 고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호흡에 무리가 가는 정도로는 아니고, 작고 귀여운 소리를 내고 그마저도 아주 짧고 잠시 고는 수준이라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제니는 매우 매우 건강한 상태지만 코골이 모습은 꾸준히, 면밀히 살펴볼 예정이에요.:D) 나중에 제니가 진짜 가족을 찾아가면 발 밑에서 작게 코 고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게 허전해서 아주 조금은 슬플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지금은 너무 다행이다! 남편에 대한 나의 깍쟁이 수명연장의 꿈은 당분간 계속될 예정이니.

IMG_20241211_095132_466.heic 제니 코골이 영상은 제니의 견권을 생각해 무덤까지 가져갈게요ㅋㅋ


::::: 제니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dearest_pup


매거진의 이전글사람 by 사람, 개 by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