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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Feb 23. 2021


어떻게 (더러운) 개와 같이 살아?

직장동료 J의 말



“밖에 나갈 때 신발 신기는 건 아니잖아. 

바깥에서 뭘 밟았을지도 모르는 개를 대충 닦아서 집에 들어오게 하고, 침대랑 소파 같은 곳에 올라오게 하다니. (더러워)”


“개들 쉬하고 똥 싸면 깨끗하게 똑 떨어지나? 그건 아니잖아. 

그럼 주변에 다 묻었을 텐데. 그건 좀...(더러워)?”


“자기 개 예쁘다고 물고 빨고 뽀뽀하는 사람들 솔직히 좀 그렇지(더럽지) 않니? 난 정말 이해 못하겠어.” 


“매일매일 씻기는 거 아니면, 냄새나고 그렇지 않나? 있잖아 그 왜 개 특유의 (더러운) 냄새!.”


J는 전 직장동료. 밥도 함께 먹을 만큼 가까웠고, 나이도 엇비슷해서 비슷한 또래들과 함께 어울렸다. 강아지 가족이 있는 몇몇 동료와 가끔씩 ‘우리 집 강아지’를 주제로 수다를 떨었다. 우리도 안다. 새벽에 들어갔는데 우리 개만 날 반겨주었다는, 엄마랑 말다툼하는데 옆에 와서 컹컹 짖으며 그만 하라고 말렸다는 등의 시답잖게 기분 좋은 얘기라는 걸. 그렇지만 뭐 직장에서 쉬는 시간에 나누는 대화 치고 그럴싸한 게 있을는지. 맨 앞의 말들은 우리가 강아지 이야기를 나눌 때 J가 했던 말 중에 기억나는 것들이다. 해당 단어는 숨겨두었지만 누가 봐도 기승전 더러움을 뜻하는 문장들.


내가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강아지와 함께하는 나의 삶에 대해, J를 포함한 그 누구의 이해를 바란 적은 없다. 그런데 나는 설명을 해야 한다는 남모를 의무감에 휩싸였다. J의 확신대로라면 너무나 ‘더러운’ 생명체와 어떻게 같이 살 수 있는지. 찍소리도 못하게 납작코를 만들만한 멋진 해명을 하고 싶었다. 


강아지를 아기에 비유할까? 그건 너무 간 것 같아. 오히려 어떻게 강아지=사람 일 수 있냐고 비웃음 당할 거야. 모든 생명은 동등한데 더럽고 깨끗함의 기준이 무엇이냐 할까? 아냐, 그것도 어차피 이해 못할 거야. 특유의 냄새라는 게 혹시 고소한 냄새를 말하는 거냐고 되물을까? 아니야, J가 강아지 꼬순내의 매력을 알기나 하겠어. 


이제부터 그때는 못했던 해명을 길고 천천히, 고급지게 하려 한다. 

나의 솔이를 위해서.

 

솔이는 꽃향기를 맡는 걸 좋아한다. 자기 눈높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작은 꽃들에게 안부를 묻듯 가볍게 코를 킁킁인다. 자기 키보다 높이 핀 꽃을 보겠다고 가지를 당기거나, 활짝 핀 꽃을 꺾어가지 않는다.    

외출 후 바닥에 앉아 요상하게 몸을 구부려 몸을 핥는다 싶으면 자세히 살펴야 한다. 터럭지 한 올에 자기 냄새와 다른 무언가가 묻는 걸 너무 싫어하기 때문이다. 쓱 하고 닦아주면 그제야 편히 엎드려 눈을 한번 맞춘 뒤 한숨을 폭 쉰다. 만족한다는 뜻이다. 


솔이가 가장 싫어하는 순간은 목욕을 하러 들어가는 때이고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목욕을 마치고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이다. 목욕을 끝내고 나면 잠시 공중에 뜰 정도로 힘차고 즐겁게 온몸을 턴다. 온 집을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집에 있는 가족들과 눈을 맞추며 ‘놀자!’ 자세를 하고 장난을 건다. 엄마의 준엄한 통제가 있는 화장실을 나왔다는 해방감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솔이가 씻고 나서의 홀가분함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사우나 후 커피우유를 먹는 우리처럼, 꼭 목욕 후 우유를 얻어 마시며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솔이는 실외 배변을 한다. 아주 어릴 땐 실내 배변도 했지만, 하루 2번 꼬박꼬박 산책을 나갔더니 자연스럽게 바깥에서만 볼일을 보는 강아지가 되었다. 한 번도 집에서 실수를 한 적 없다. 어쩌다 낑낑거려서 밖에 데리고 나가면 참았던 오줌을 폭포수같이 쏟아낸다. 우리 가족끼리의 추측인데, 만약 솔이가 집에서 실수를 한다면 스스로를 못 견딜 것 같다. 솔이는 오랫동안 스스로의 위엄과 품위를 지킨 노견이다.  


더러움과 깨끗함에 대한 솔이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 그 기준이 누군가에겐 더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솔이의 모든 행동은 그런 말을 한 사람에게조차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꼬질꼬질한 강아지가 행복한 강아지라고 생각한다. 솔이가 더럽다고 생각해 본적 한 번도 없다. 사람들처럼 화장실을 다녀오면 손을 닦고, 무언갈 먹으면 입 주변을 닦은 뒤 양치를 해야 한다는 걸로 깨끗함과 더러움을 판단할 영역의 존재가 아니다. 솔이 같은 개들의 기준에서는 사람이 더 더럽고, 모두에게, 이 세상에 해로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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