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예스를 외쳐주는
나의 늙은 예스맨을 위해

아빠

by 홍지이

결혼 초기였다. 부모님과 언니 가족과 함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차 안에서, 남편이 내게 말했다.


"장인어른은 당신이 아빠 인 게 너무 좋으신 가봐."

"응? 그게 무슨 뜻이야?"

"아, 내게도 몇 번이나 '아빠는' '아빠가 해줄게.'라고 하시더라고."


아빠의 '아빠가 말이야'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예능인 강호동도 종종 '호동이는 이거 할 거야'라고 말할 때가 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다. 아빠의 말속엔 어딘가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듬직함이 실려있다. 이를테면 비바람이 부는 궂은날 앞서 걷는 자의 너른 등판에 몸을 숨기고 걸을 때 느끼는 순간적인 아늑한 기분이랄까. 혹은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래 가사가 함축한 희생과 양보의 상징과도 같은 부모님의 삶이 압축된 표현이랄까.


아빠는 내 삶의 모든 인간관계를 탈탈 털어보았을 때 그중에서 내게 늘 꾸준하고 안정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라오며 마주한 엄마도 비교적 그런 스타일의 엄마이긴 했다. 다만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엄마와는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는 편이라 대게 나의 선택과 고민의 과정을 엄마가 디테일하게 알고 계신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 아빠는 조금 멀리서 지켜보는 관찰자의 입장에 계실 때가 많았고.


아빠는 평생 산전수전 공중전, 흥망성쇠를 모두 겪은 사업가의 삶을 쌓아오셨다. 그래서 그런가 일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업하는 사람 특유의 유연함을 보이셨고 보통 올곧고 빈틈없이 정확한, 그래서 조금 냉정하기도 한 분으로 비쳤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늘 리더의 자리를 맡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엄마와 우리에게 있어 아빠란 언제나 '아빠가 말이야'로 시작해서 '오케이'로 끝나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서른 하나에 나의 아빠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둘의 나이는 끝자리가 같다. 내가 스물일 때 그는 쉰이 되었고, 내가 서른 일 때 그는 환갑을 맞이했다. 서른을 넘기며 다짐했다. 앞으로 아빠에게 싫어, 아니, 됐어, 라는 말을 아끼기로. 평생 나에게 '아빠는 말이야 네가 좋다면 좋다'며 늘 예스를 외쳐준 나의 늙은 예스맨을 위한 작은 보답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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