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퇴사를 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제주도로 한 달 살기를 떠난 것이었다.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집을 떠나 낯선 곳에 머물겠다는 내게 사람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다들 물음표 살인마가 될 작정이었다. 정작 아무런 의문을 던지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다. 엄마였다. 나의 퇴사 선언에 의외로 '알았다.'라는 단답형 말에 이어 '잘했다.'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랬던 엄마가 제주도에서 나만의 하루 루틴이 생길 무렵, 제주도로 찾아오셨다. 혹시나 캐리어 속에 나를 향한 수많은 질문을 담아오시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공항에서 만난 엄마의 여행 가방은 가볍고 단출했다.
솔직히 한 달 살기 계획보다 엄마와의 일주일 동행을 짜는 게 더 힘들었다. 예쁜 카페나 유명한 맛집을 모시고 가면 무난하려나? 엄마에게 제주도 와서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드시고 싶은 음식을 물었다. '아무거나 다 좋고, 네가 하는 거 같이 할게.'라는 시원찮은 대답이 돌아왔다. 언니와 머리를 맞대 보았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 확실히 확인한 거라곤 우리 둘 다 엄마의 취향을 도통 모르겠다는 사실. 혹은 엄마도 취향을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을 좀체 하지 않고 살아왔음을 깨달았다는 것. 반 포기 상태로 그냥 내가 보내는 하루에 엄마를 끼워넣기로 했다.
공항에서 엄마를 픽업한 뒤, 내처 동쪽으로 달렸다. 이름 없는 조용한 바닷가에 차를 대고 텀블러에 담아온 커피를 마셨다. 반려견과 함께 갈 수 있는 비건 요리 전문점에 가서 계란도, 유제품도, 육류와 어패류는 더더욱 들어있지 않은 심심한 요리를 먹었다. 오름에 올라 크고 작게 솟은 이웃의 오름의 이름을 함께 소리 내어 불렀다. 하루에 두세 번 인적이 드문 숲과 풀밭을 찾아 반려견과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여행 내내 퇴사에 대해 묻지 않던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 내게 질문 대신 이렇게 말했다.
와서 보고 싶었어. 네가 왜 이런 삶을 선택하고 살고 있는지.
이제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하지를 않나. 어디 길에서 주워온 강아지나 키우고, 이제는 멀쩡한 직장도 관둔 대책 없는 나란 사람. 지금의 내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말끝에서 가볍게 흩날리는 물음표보다 작지만 단단한 마침표였음을 엄마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았다.
아빠를 떼어놓고 딸이랑만 다니니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며 방실방실 웃으며 공항 탑승장으로 들어가다가 '이 큰 섬에 딸내미 혼자 달랑 놓고 가는 것 같아 미안해지네.'라고 말하며 이상한 포인트에서 금방 울컥하고 마는 눈물 많은 사람과 어젯밤 내게 온 힘을 실어 응원을 보내던 단단한 옆모습을 가진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는지 순간 헷갈렸지만, 다행인 건 늘 최전방에서 나의 삶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나의 엄마라는 사실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