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륙과 착륙
12월 말이 되면 주섬주섬 짐을 챙겨 제주도로 떠나는 게 결혼 7년 차 우리 부부의 한 해 마무리 리추얼이었다. 그렇게 하기로 서로 약속한 적은 없지만 12월 마지막 주엔 어김없이 쫓기듯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새해가 되어 육지로 돌아왔다. 마이앤트메리의 <공항 가는 길>을 들으며 영종대교를 건넜다. 양 옆으로 넘실대는 바다를 보니 이미 떠 있는 기분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온몸에 감도는 특유의 간지러운 긴장감을 떠올렸다.
남편은 깜깜해진 제주도에 도착해 쫓기듯 여행을 시작하고 싶지 않아 했다. 내내 아껴두었던 마지막 반차를 이 여행의 시작을 위해 썼다. 12월 말 금요일 오후의 국내선 공항 내부는 통창으로 길게 들어오는 한낮의 햇빛이 있어 그런지 잔잔한 열기가 느껴졌다. 내내 거추장스러웠던 코트와 캐리어를 수하물로 부치고 스웨터 차림에 작은 크로스백을 맸다. 도착하면 3시쯤 되니 예약해 둔 렌터카를 찾아 곧장 우리가 좋아하는 동쪽 해안도로를 달려 도심과 멀어졌다 싶을 때 바다 뷰를 감상할 수 있는 카페에 가기로 했다. 생각만해도 완벽한 계획! 금요일 오전엔 회사에 있었지만 오후엔 푸른 섬 제주도에 있는 삶.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연결 편에 문제가 생겨서 몇몇 비행기의 이륙 시간이 지연되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비슷비슷한 항공편명들 중 귀에 콕 박히는 단 하나.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였다. 처음엔 30분가량이었다. 언짢았지만 제주행 비행기에서 더러 있는 일인데 연착은 처음이라 오히려 여행에 낯선 리듬감을 줘서 나쁘지 않다며 행복회로를 돌렸다. 연착된 탑승 시간에 맞춰 여유 있게 탑승구로 갔다. 탑승구 입구의 안내 보드 판에 승무원이 무언가 다급히 적고 있었다. 1시간 연착. 나처럼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이 승무원 뒤로 빠르게 모여들고 있었다. 두 번째 연착 안내에 동요한 승객들의 어두운 오오라가 주변을 감쌌다. 가족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 어르신이 난감한 표정으로 무언가 항의하다 자리로 돌아와 신경질 적으로 전화기를 눌렀다. 왠지 이 긴장감이 금방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 뒤로 두어 번의 연착이 있었다. 알고 보니 한 시간 반 연착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가 타야 할 비행기는 제주도에서 출발도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거짓말처럼 다른 항공사의 비행기들은 제시간에 제깍제깍 하늘로 향했다. 심지어 우리가 타야 할 같은 항공사의 다른 비행기도 잽싸게 승객을 태워 떠났다. 이거 뭐 방송사에서 기획한 실험 카메라 같은 건가? 예전에 한 방송사 뉴스에서 PC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분노조절 능력을 테스트한다며 한참 게임 중인 PC방의 메인 전원을 내렸던 일화가 떠올랐다.
4시간가량 지연된 탑승구 앞에는 몇 차례 고성이 오갔다. 아까 어르신은 점잖게 타이른 편이었다. 유아등을 동반한 보호자들의 수고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따지고 보면 책임 소지가 1%도 될까 말까 한 지상직 승무원들도 딱해 보였다. 얼굴색이 노랗다가 초록색이었다 보라색이 되는 듯했다. 도착해서 오션뷰 카페에 가도 바다인지 낭떠러지인지 알 수 없는 깜깜한 밤일 듯했다. 저녁 식사도 할 수 있을지 난감해졌다.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 렌터카를 선점했으니 취소되진 않으나 사용하지 못한 시간 동안의 금액은 보상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비행기에 타서 좌석에 앉게 되었다. 어두운 공항 활주로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육지의 야경을 보며 이륙할 거라 생각 못 했는데.
“현재 활주로가 혼잡한 관계로 우리 비행기 잠시 대기 후 이륙하겠습니다.”
승무원의 기내 방송.
남녀노소 모두 한 마음으로 비난과 화를 담아 구시렁거리는데 마치 천둥 같은 일갈이 들렸다.
“지금 장난하냐고!!!!!!!”
한 아주머니의 사자후 덕에 모두 숙연해졌다. 아이를 동반한 보호자의 녹진한 피로감이 가득한, 매우 정당한 분노였다.
아주머니의 사자후가 출발 신호였다는 듯, 비행기는 활주로에 붙은 채 굴러가는 듯 싶었던 바퀴를 이윽고 떼어냈다. 사람들은 멋진 공연에 화답하는 듯 환호와 함께 박수를 쳤다. 남편과 마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가긴 가네.”
비행기가 뜨는 원리를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그렇지만 인생 가장 쫄깃했던 이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