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바다를 유영하는 우리

물공포증 극복

by 홍문화

살면서 세 번,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유아기에 수영장에서 한 번, 청소년기에 강에서 한 번, 성인이 되어 바다에서 한 번. 발은 땅에 닿지 않고, 숨은 막혀오고 손과 발을 허우적대지만 사방에 의지할 곳이 없을 때의 공포가 몸에 각인되어 선뜻 수영을 배우기가 쉽지 않았다.


”바닷속 깊이 잠수해서 수면을 바라보면, 마치 밤하늘을 바라보는 것 같아. 빛이 아스라이 느껴지고 저 위에 달이 떠 있는 것처럼 보여. “ 스쿠버다이빙을 하는 친구의 이야기에 나도 언젠가 바닷속을 경험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당장 오늘 시작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구민센터 수영장 등록도 어렵다는 것도 핑곗거리가 됐다. ‘언젠가 해야지. 언젠가’


”울릉도 노지캠핑, 같이 갈래? “ ”그래! 가자! “ 등대학교에서 서로가 삶에서 경험했던 좋은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한 친구가 울릉도 노지캠핑을 우리에게 추천했고, 어느덧 함께 여행할 그룹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캠핑을 해보고 싶어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여행 일정이 다가올수록 스멀스멀 걱정이 올라왔다. ‘바다에 들어갈 때 내가 민폐가 되면 어떡하지?’ 여행을 가는 멤버는 다섯 명이었는데, 한 명은 철인삼종경기를 하고, 한 명은 배에서 선원을 한 경험이 있고, 한 명은 어린이 수영단 출신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나처럼 물공포증이 있는 친구가 있었다.


”해삼 따보자 “ 그런데 그 친구는 걱정이 아니라, 기대를 하고 있었다. ”나, 프리다이빙 시작하려고. 수영 못해도 프리다이빙은 할 수 있대 “ 도저히 수영 몇 달로 바다에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았는데,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검색해 보니 물공포증을 프리다이빙으로 극복했다는 이야기들이 정말로 많았다. ‘오케이. 좋아, 우리 같이 물 공포증 극복해 보자’


그렇게 울릉도 여행을 가기 두 달 전, 프리다이빙을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기초 교육을 받고, 잠수풀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낯선 공간에서 새 수영복과 수모를 쓰고 어미 잃은 새처럼 떨고 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괜찮다고 했다. ”제가 옆에 계속 있을 거예요. 할 수 있는 만큼 하세요 “ 선생님은 거짓말쟁이였다. 따뜻하게 품어줄 것처럼 말하더니 금세 절벽에서 자식을 떨어트리는 어미 새가 됐다.


”조금 더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나와버리면 안 돼요 “ 그렇게 나는 물에 고개를 넣은 세 번 만에 2분 20초를 무호흡으로 있었다. 투명하고 푸른 물속, 먹먹함과 고요함이 느껴질 때 두려움 속에서도 묘한 평안이 있었다. ”거 봐요. 하니까 되잖아요. 바로 다음 코스로 가죠 “ 그렇게 나는 그 과정에서 20m 다이빙을 하고, 이퀄라이징이라는, 귀의 압력을 빼는 기술을 선천적으로 내가 잘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물에 떠 있을 수 있고,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떠오를 수 있음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나니 물 공포증도 거의 사라졌다. 어미새가 곁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 만으로 든든했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물이 아니라, 어찌할 바 모른 채 죽을 것 같았던, 그 경험 자체구나’


그렇게 그 여름, 도착한 울릉도 바다는 에메랄드 빛으로 찬란하게 아름다웠다. 떨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롱핀을 차며 들어간 물속은 놀라웠다. 처음 보는 물고기의 등장에 작은 물고기들이 놀란 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수풀은 아지렁이처럼 춤추고 있었다. 친구들과 일렬로 바다로 깊이 헤엄쳐 들어가는 동안, 바닷속 공간이 영화 속 장면 전환되듯 달라졌다. 물고기 떼를 지나고, 다양한 색의 수초를 만지고, 겉으로 보이지 않았던 동굴로 들어가는 동안, 물속에서는 타닥타닥 장작이 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겉을 보며 동경했던 바다의 속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석양에 붉게 물든 바다에 온전히 몸을 맡기고 둥둥 떠올라, 다섯 명이 수평선 아래로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며 ‘굿바이’를 건넨 순간의 온도는 마음에 짙게 남았다.


바닷속의 모든 것이 신비로워서, 거기서 만나는 모든 생명 하나하나에 호기심 가득해져서, 사실 육지에서 마주하는 동식물 하나하나가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이었는지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아고, 죽겠다’ 울릉도에 다녀온 후 수영을 꾸준히 한지 일 년이 되어간다.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순간은 있지만, 이제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진 않다. 산다는 건, 좋아하면서도 두려운 그 대상에 다가가는 자신의 방법을 배워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의 바다를 유영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모두에게 안녕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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