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혹은 우아한 거짓말

-가장 아름다웠다의 시제는 과거형이 아니라 미래형이어야한다

by Woowa


인생의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절을 의미하는 화양연화.

1960년대의 홍콩을 배경으로 배우자의 불륜을 알게 된 남녀가 서로에게 빠져드는, 미장센이 기가 막힌 영화.

생각해보면 이 영화를 스틸컷으로 참 오랫동안 바라봐왔던 것 같다. 실제로 나는 이 영화의 스틸컷 엽서 여러 장을 침대 옆 창문 커튼봉에 보랏빛 비즈실로 한 줄로 꿰서 길게 걸어놓았다. 나는 가끔씩 창밖을 바라볼 때 이 엽서들을 스쳐 지나쳐갔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방안으로 시선을 옮길 때 화양연화의 한 장면에 잠깐 시선이 머물기도 했다. 어떤 날엔 두 사람이 함께 걷는 뒷모습을 바라봤고, 어떤 날엔 장만옥이 한쪽 손으로 벽에 기대듯 벽을 짚고 서 있는 모습을 바라봤다. 어떤 날엔 그녀가 입은 옷에 시선이 갔고 어떤 날엔 두 사람이 키스할 때 생기는 미간의 주름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렇게 잠깐씩 눈이 마주칠 때마다 이 아름다운 영화의 멜랑꼴리한 첼로 선율을 듣는 듯한 기분에 빠지곤 했다. 그러면서 떼버릴까 하는 생각도 매번 했던 것 같은데, 생각이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이 스틸컷 엽서들은 아직도 내 방 창에 매달려 있다.

왜 화양연화냐고 묻는다면, 왕가위 감독의 팬이라거나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 대단히 반했다거나 하는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그냥 이 영화를 떠올렸을 때 내게 말을 거는 느낌이 소란스럽지 않고(오히려 침묵이나 음악에 가까우려나), 첸부인(장만옥 분)의 슬픔과 고통이 그녀가 치파오를 스물 두벌이나 갈아입고 나오는 동안 치파오의 날줄과 씨줄로 엮여 더욱 아름답고 찬란한 슬픔으로 다가온 까닭이다.

찬란한 슬픔이라니, 이보다 더 우아할 수는 없지 않나. 너무 매혹적이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 이 스틸컷을 보며 한쪽 구석에 살짝 보이는 자동차가 눈에 거슬렸다. 단순히 함께 나란히 걷고 있는 남녀 주인공의 뒷모습에만 주목했던 나는 대충 잘라낸 듯한 이 스틸컷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동차가 시선을 분산시키며 미학적인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인상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 자꾸만 시선이 갔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뭘까 이유를 찾았다. 그러다가 이 둘이 걷고 있는 길을 보았고, 이 길이 보행자가 다니는 길이 아니라 도로 한가운데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자동차가 있어야지만 완성되는 이 장면의 미장센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기분이었다. 습관적인 사고는 눈을 멀게 만든다. 보면서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진실은 때때로, 아니 어쩌면 거의 대부분이 이러한 편협한 시선 위에서 습관의 옷을 입고 서있는지도 모른다. 항상 의심해야 한다고 말하던 어느 철학자의 말은 옳다.

차도 잘 다니지 않는 시간, 서로 사랑하지만 "우린 그들(불륜 중인 서로의 남편과 아내)과 다르잖아요" 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사랑을 내려놓은 남녀가 도로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다. 반대 차선에서 달려오는 자동차가 옆으로 아슬하게 스쳐간다. 그들이 그어놓고 지키는 선이란 게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보여주는 걸까. 애초에 사랑의 본질이라는 게 놓인 자리가 위험하다는 걸 에둘러 보여주는 걸까.

사랑은 모험으로 이끈다. 아 사랑, 심장을 뛰게하는 떨림의 비밀. 이 우아한 거짓말, 불멸의 판타지. 무모한 발길질 혹은 무한 도전. 이 모든 것 위로 시간이 흐른다. 오직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는.




영화에서 기억하는 또 다른 이미지. 차우(양조위 분)가 앙코르와트 사원에 비밀을 고백하고 묻어버리는 장면.솔직히 영화를 보다가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마도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게 그 지점에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비밀과 고백, 아이러닉하게도 이 둘은 그 고유한 속성과 달리 항상 함께 다닌다.

오래된 사원의 갈라진 틈에 묻은 차우의 화양연화. 누구에게라도 말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던 차우는 그렇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동시에 묻어버린다. 사원의 틈이 이를테면 시간의 틈같다. 그 틈은 누군가에게는 화양연화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보릿고개같은 청황부접의 시기일 수도 있다. 혹은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누군가의 그저 그런 하루 일 수도 있지만. 시간은 그저 그 위로 무연하게 흐를 뿐이다. 시간은 모든 순간을 같은 속도로 지나간다.


사실 내게도 차우가 그랬듯 내 시간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고 온 적이 있었다.

장소도 다르고 방식도 다르지만

나도 어느 때인가 어느 곳에서 내 시간의 한 때를 묻고 온 적이 있었다.

나는 편지를 썼더랬다.

내가 그 곳을 사진 속에서 미리 보고 그곳으로 정했던가. 이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곳에 가기 전부터 그곳에 반드시 가야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지도에도 없는 그 길을, 안내판도 없는 그 곳을 매우 힘들게 찾아갔다.

그리고 도착한 순간, 알았다.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드디어 내가 계속 가고 싶어했던 곳에 와있다는 걸,

여기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준비를 했었고 작정도 했었다는 얘기다.

나는 준비해간 편지지에 하고 싶던 이야기를 굉장히 관념적인 표현을 써서 정성껏 담았다.

훗날 내가 읽었을 때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여백이 가득한 단어와 문장들.

그걸로도 모잘랐는지 무어가 그렇게 불안했는지

이곳에 사는 누가 발견하더라도 쉽게 읽을 수 없게 한글로 쓰자, 나름 치밀했다.

평소 나는 매우 솔직한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솔직하지 못한 채 모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겁장이가 되어 있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내 감정을 누군가 알게 된다는 사실이.

그런데 또 이상하게도 흩어져버리는 말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바닷물에 흘려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가에게 닿아선 안 되었다.

나는 땅속 깊이 생매장하고 싶었다. 묻고 싶었다. 진심으로. 누구도 발견할 수 없도록.

그래야만 내가 덜 아플 것 같았고, 내가 아팠다는 사실을 아무도 영원히 모를 것 같았다.

엄청난 갈증을 느끼며 편지를 묻고 온 날, 나는 그 날을 사진으로 남겼다.

아니 그 장소를 사진으로 남겼다는 말이 더 적확한 표현이리라.

그리고 지금도 그 사진을 매우 좋아해서 자주 응시하곤 한다.

온몸의 수분을 증발시킬 듯 뜨거웠던 햇빛

헤매는 곳이 아닌데 이상하게 사람도 길도 보이지 않아 제자리를 맴돌았던 하루

너무 목말라서 아무 죄책감없이 따먹었던 누군가 심은 포도나무의 열매

세상이 하얘보이던 하루의 기억.

사진을 보면 그 날의 갈증과 햇빛이 찾아든다.

그런데 얼마전 티브이 다큐 프로그램에서 내 기억의 그 장소를 보았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목격한 장면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비밀이 들통난 기분

스샷을 찍어놓고 액자에 넣어놓은 사진과 비교했다

설마 아닐거야

근데 나무가 많이 자랐네

아니겠지 그런 우연이 있을리가 없잖아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나무가 이 정도쯤 자랐을까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하다보니 반가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기억으로부터 오랜만에 안부 영상 편지를 받은 기분이랄까

재밌기도 했다

다르지만 매우 닮은 공간

다르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서운한 기분마저 들어서

시간이 변했으니 공간도 변했을거야

그래 아니라고 단정짓기엔 무리수가 있지

깜짝 놀랄 정도로 닮았잖아

자꾸 같은 공간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었다.

내가 묻은 비밀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한때는 많이 아팠다고 고백할 수 있을 만큼

그 비밀이 그리운 장소가 될 만큼

오랜만에 만나서 심장이 두근거릴만큼

내 작은 비밀 위에 시간의 더께가 두텁게 쌓였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내게 있어 인생의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절은 언제일까.

나는 언제나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가장 아름다웠다 라고 말할때의

시제는 과거형이 아니라 늘 미래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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