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에 놀러 갔다. 좋아하는 동네이지만 집에서 꽤 멀리 있기 때문에 한번 갈 때 마음의 다짐을 하고 가야 한다. 동네에 도착해서 다채로운 사람들과 가게들을 보는데 놀이동산에 놀러 온 것처럼 기뻤다. 규격화되지 않은 알록달록함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나는 정신없이 골목 구석구석을 나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계속해서 한 꽃집과 마주쳤다. 외관은 낡고 정신없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안쪽이 궁금해지는 곳이었다. 나는 유리문을 통해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꽃들의 모습이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집밥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른 꽃집들과는 다른 느낌에 호기심이 생겨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분명 오래된 꽃집이었다. 그곳에서 각자의 속도대로 피어나고 있는 꽃들이 나를 맞이했다. 살아있는 꽃들이 내는 향기가 공기 중에 자연스레 섞여있는 모습이 코로 듣는 합창 같았다. 단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천천히 꽃들을 바라보며 무엇을 살지 고민하고 있는데 뒤에서 주인 아주머님이 슬그머니 다가오셨다.
"오늘은 프리지아가 좋아요."
어머님의 손끝을 따라가자 생연둣빛 꽃망울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곳에 진한 노란색 꽃들이 툭툭 피워져 있었다. 얘네가 다른 꽃들에 비해서 더 쌩쌩하단 어머님 말씀에 프리지아 하나를 달라고 말씀드렸다. 이거? 이거? 만개한 다발과 아직 덜 핀 것 중 마음에 드는 걸 고르라 하셔서 덜 핀 걸 말씀드렸다. 끝단을 다듬으시며 꽃에 대해 이것저것 말씀해 주시는 어머님의 말가락이 흥겨웠다. 기억나는 게 있다면 프리지아는 태생이 다른 꽃들보다 강해서 오래간다는 말이다. 나는 꽃값을 송금하며 꽃이 다 포장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머님의 마지막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다.
"저녁에는 비닐 한 자락을 더 씌워줘요. 꽃도 추위를 타. 집에 가는 길에 춥지 않을 수 있게 보호해줘야 해~"
투박한 손길로 턱턱 꽃을 포장하시던 어머님이 꽃샘추위에 얇게 입고 밖으로 나가는 딸에게 목도리를 둘러매주듯 말씀하셨다. 그 말에 담긴 온기에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랐다. 그분은 엄마가 자식을 대하는 느낌으로 자신의 꽃들을 대하고 계셨다. 나는 그 꽃집의 꽃들이 왜 그리 자연스레 피어있었는지, 왜 그 공간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의 가정집에 놀러 간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뭐든 진심으로 애정하는 마음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티가 날 수밖에 없구나. 주인 어머님께서 신경 써서 포장해 주신 꽃에 상처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집으로 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