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과 할머니
방충망 바깥에 거미가 앉았다. 그것도 아주 큰 거미가.
사실 길쭉한 다리 세 개 보이는 것이 전부이지만. 그 위압감이 어마어마했다. 몇 달 전부터 창문 구석으로 거미집 같은 게 보이더라니, 이렇게나 커다란 친구가 살던 집일 줄이야. 살면서 이렇게 크고 길쭉한 거미를 본 것은 처음이라 지금 나는 조금(많이) 당황스럽다.
평소에는 저 긴 다리 하나 보이지 않던 아이가 이 아래까지 내려왔다.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장마철 내내 제 집으로 쳐들어오던 비를 맞다 못해 내려왔다거나, 아니면 요 며칠 태풍의 영향으로 심하게 불던 바람에 제 집을 잃었다거나, 제 집을 잃었다거나…
거미집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예쁘게 짜여 있던 집은 어딜 갔는지 실 몇 가닥만 남아 달랑달랑 흔들리고 있었다. 수재민이구나. 징그럽다 외치기도 잠시 고새 안쓰러운 마음만 가득했다.
어렸을 적 할머니와 함께 살던 그 집은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비가 샜다. 작은 방 정중앙에서 살짝 비켜진 곳에 빗방울이 똑똑 떨어지기 시작하면 할머니와 나는 그곳을 피해 이불을 깔았다.
방구석에서 삐딱하게 자야 하는 것도 모자라 양동이를 차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어 다녀야 하고, 빗물 가득 찬 빠케스를 여러 번 갈아줘야 하는 것도 일. 혹 태풍이 온다는 예보를 보거나 조금이라도 바람이 세게 불 것 같으면 바깥 창에 테이프로 엑스자도 그려야 했다. 집은 점점 못생겨지지, 불편하기만 하지, 이런 날들이 며칠 반복되는 장마철이면 나는 점점 썽이 나는 것이다.
할머니, 비 언제 그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네!
잔뜩 찡찡대며 입 댓 발 나와있던 나와는 다르게 할머니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조용히 통을 비우러 나가실 뿐이였다.
문득 그때를 돌이켜본다. 고작 비 조금 새는 걸로 방방 뛰던 어린 손녀를 바라보시던 할머니의 마음은 어떠셨을지. 참 웃기기도, 어이없기도 하셨겠지. 비 내음 가득 돌던 작은 방에서 조용히 나를 달래주시던 할머니의 담담한 목소리가 생각난다.
괜찮다, 다 지나간다.
훅 들어온 한 마디였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기억은 뚜렷하다. 나는 칭얼대던 입을 다물고 할머니 곁에 앉아 있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그 짧은 문장 하나에 너무 많은 것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떤 세월을 살아온 것인지 아직도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거미는 아무 미동 없이 그 자리에 앉아있다. 문지방에 앉아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시던 할머니처럼.
얘야, 오늘따라 웬 비가 이렇게 세차게 내리니. 장마가 그치면 다시 집을 지을 거니. 다음엔 비가 내려도 쉬이 무너지지 않도록 더 튼튼한 집을 지어라. 바람 부는 것 따위, 비 조금 새는 것 따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