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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Sep 17. 2019

큰사람

아빠와 나

  어렸을 적부터 아빠는 늘 나더러 큰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딸내미는 공부 열심히 해서, 하바드도 가고 세상에 무서울 것 하나 없이 떵떵거리며 살아라!"


  그놈의 큰사람이 뭐라고, 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부터 아빠는 새벽같이 딸들을 깨워 공부를 시키셨다. 그것도 아주 열성적으로. 출근 전 "오늘 영어는 어디까지, 수학은 어디까지" 페이지를 손수 접어두시고, 야근을 마치시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신 날에도 오늘의 공부량을 직접 체크하고 채점까지 도맡아서 하실 정도였으니까.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새 학기 첫날이 생각난다. 슬슬 고등학교 수학 선행 학습을(!) 해야 한다며 새벽 5시에 시작하던 ebs 수능 강의를 직. 접. 시청하셨던 우리 아빠. 남들은 출근 준비하기도 바빴을 그 시간에, 오로지 딸 하나 잘 키워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수능 강의를 찾아 들으셨다니. 어지간한 학부모님들도 그렇게까지는 못하시지 않으셨을까.


  그렇게, 그렇게 극성이었다, 우리 아빠는.




  하지만 그런 아빠의 기대와는 달리 그 당시 나는 공부에 큰 욕심이 없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었던 나는 남들 다 자는 꼭두새벽에 왜 그러고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억울해서 견딜 수 없었다. 나만 사는 게 왜 이래, 불만들을 야금야금 축적해오던 어느 날.


  퇴근하고 돌아오신 아빠에게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즉시 육탄전이 벌어졌다. 아빠는 네가 아직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다, 공부하는 게 제일 쉽다 등의 말로 나를 몰아가셨고, 나는 하고 싶은 게 따로 있다, 곧 죽어도 이쪽 일을 해봐야겠다며 왈왈왈. 멍멍멍.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밤 꼬박 6년동안 싸웠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즈음인가, 말을 해도 해도 고집이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아빠는 네 마음대로 살라며 모든 기대를 내려놓으셨더랬지. 그렇게 내가 원하던 진로로 와 나름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요즘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되지도 않는 근자감과 오기로 똘똘 뭉쳐 있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던지 전부 다 이룰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과 부닥치며 조금씩 용기가 사그러 드는 요즘, 어렸을 적 아빠와 벌였던 설전들이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아빠는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나를 '큰사람'으로 키우려고 하셨나. 정글 같은 사회의 길을 먼저 걸어간 선생님으로서 어린 딸에게 나름대로 최선의 조언을 주고자 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밉던 아빠가 이해되는 날이 오다니. 나이를 먹긴 먹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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