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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시 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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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Oct 10. 2019

갓 비빈 짜파게티를 버리고 왔다

스트레스성 폭식을 줄이기로 결심하며

  막 짜파게티를 버리고 오는 길이다.


  다 비벼놓고 한입도 먹지 않은 짜파게티였다(두둥). 누군가는 돈지랄이다 하겠지만 내겐 나름 큰 결심이었다. 스트레스성 폭식을 인지하고 이를 그만두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언젠가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즉각 먹는 것으로 풀었다. 직접 돈을 벌게 된 이후부턴 더했다. 오늘처럼 일이 고되었던 날이면 퇴근길 편의점에 들러 보이는대로 담아 나에게 주는 보상이라며 온갖 야식들을 흡입하기 바빴으니까.


  배달 어플도 질세랴. 햄버거, 닭발, 치킨... 뿌링클과 허니콤보의 기로에서 고민하다 '매일 돌려가며 시켜먹으면 되지!'라는 판단을 내리곤 역시 난 천재라며 어깨를 으쓱하던 나였다. 1인 1닭을 일종의 규율처럼 여긴지 일주일, 위장은 쉴새없이 늘어났고 혼자 바닥을 볼 때까지 먹는 것이 점차 습관이 되었다.


  적당히 먹고 내려놓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갈려버린 정신을 어떻게든 보상받겠다는 듯 매일 밤 내 치아는 쉴 새 없이 아래 위로 움직였다. 그건 마치 고장난 열차와도 같았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그저 식도 아래로 꾸역꾸역 밀어넣기 바빴으니 말이다. 정신줄을 놓은 폭식 뒤엔 불쾌한 포만감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연한 후회가 들 때면 이불 뒤에 숨어 억지로 잠을 청하거나 물을 한껏 마시곤 변기를 부여잡곤 하였다.


  그렇게 텅장은 텅텅장이 되어가고, 매일 야식으로 퉁퉁 부어버린 얼굴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어느 날. 부쩍 올라버린 살은 둘째 치고서라도 건강이 급격히 안좋아진게 느껴졌다.






  시작은 장염이었다. 불규칙적인 식사와 자극적인 음식들로 놀란 위장이 음식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자잘한 빨간불들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역류성 식도염은 친구가 되었다. 습관처럼 한 폭토는 치아를 얇게 만들었다. 불규칙적인 생활 습관으로 면역력이 떨어지니 난생 처음 알레르기도 생겨버렸다.


  다른 것보다도 정신적인 빨간불이 더 크게 다가왔다. 떨어져버린 체력은 게으름을 불러왔고, 이 때문에 빠르고 쉽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했던 얄량한 마음가짐은 장기적인 목표를 위한 절제력과 인내심을 떨어뜨렸다. 미시적인 달콤함에 익숙해져 당장은 힘들지만 건강한 방법들을 외면했던 댓가였다.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 바닥이라고 느꼈다. 왜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방치했을까, 왜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을까, 왜 내 몸과 마음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이런 답이 나왔다. '내가 많이 약해져있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내게 닥친 일들을 감당하기 버거웠고 나는 그런 스스로를 하찮게 바라보고 있었구나. 내가 나에게 사랑을 주지 못할 정도로  마음에 사랑과 여유가 없었구나.

 

  폭식자존감이 낮아졌다고 알려주는 심신의 빨간불이었다는 걸 깨달은 밤이었다.






  결국 생각의 결론은 이렇다. "나를 돌볼 사람은  하나 "이라는 것이다. 이 뻔한 것을 잊고 살면 이 사단이 나는 것이었다. 다신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나는  하나뿐이라는걸.


 언젠가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를 보다 마음에 박힌 대사가 떠올랐다.



  난 여전히 내가 애틋하고 잘되길 바라요




  내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지금 내 모습이 아무리 맘에 안들고 엉망일지라도, 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랄 뿐이구나. 돌고 돌아 이 생각에 다다른 순간, 더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짜파게티를 버렸다. 오늘도 습관처럼 준비했던 야식이었다. 다 완성된 자태를 보고도 일말의 미련이 없었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탁 털어넣는 순간, 마음 속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희열이 느껴졌다. 됐다,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950원어치 돈지랄치곤 꽤 커다란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절제력을 키울 것이다. 인내심을 가질 것이다. 앞으로 폭식의 기미가 스멀스멀 올라온다면 마음을 잘 살펴봐야지. 위장 말고 어느 마음에서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봐야겠다. 어찌됐던 뿌듯하다 이 말입니다. 나의 고백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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