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다짐
"올해는 유독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아."
오랜만에 친구와 안부전화를 하다 나온 말이었다. 코로나가 장기화될 조짐이 보인다며 전과는 확연히 달라져버린 일상에 적응하기 위해 허둥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좀 익숙해질 만하니 시월이었다고. 그러네, 올해도 세 달 뒤면 안녕이네. 한 해가 저무는 건 늘 아쉽지만 올해가 가는 건 유달리 아쉬울 것 같다며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정말 변화무쌍한 2020년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의 여파로 하반기에 잡혀있었던 일정들이 전부 내년으로 미뤄졌다. 이번 일을 통해 크게 느낀 것 중 하나는 삶에 변수가 많아지는 시기일수록 내가 내 중심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살피고 돌볼 것, 세상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탐구할 것, 그리고 이렇게 불확실한 삶일지언정 언제나 나 자신을 믿어줄 것. 코로나가 한창 극에 달했던 지난 9월엔 앞으로의 일상이 어떻게 흘러갈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어 무력감과 불안에 잠 못들 정도였는데, 하루를 루틴화 하는 것 만큼 이에 특효약이 없다는 사실도 알았더랬다.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엔 마음을 비우는 대신 내 바운더리 안쪽만큼은 최대한 변수를 줄이면 되는 거라고. 꼭 중요한 것들만 남기고 일상을 정리했다.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던 주머니를 비운 것 마냥 머리가 가벼워졌다. 왜 매번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서 규칙적인 일과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는지 드디어 알 것 같았다.
본디 삶은 변수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일찍 알아챈 사람들에겐 제 삶의 중심에 자신을 두는 게 너무도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아가 약해지는 시기가 오면 나는 삶의 방향키를 쉬이 다른 것들에게 넘겨버리곤 했었어서. 뭐, 가끔씩 이렇게라도 다짐하는 거다. 더는 변수에 내 중심을 넘기는 일은 없으리라, 앞으로 나는 내 삶의 유일한 상수로서 나를 온전히 책임지며 살아가리라. 이도 저도 아니게 흘려보낸 지난 시간들을 뒤로하고 돌아온 시월을 맞이한다. 올해 남은 석 달을 무엇으로 채우면 좋을지 고민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