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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Mar 16. 2021

딸기 유지비

자취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자 내 삶을 유지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생각해보니 물건을 사는데 큰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밥도 있는 대로 잘 먹었다. 종종 여행과 공연에 목돈을 썼었지만 코로나의 여파로 소비의 큰 두 기둥이 사라지니 삶이 꽤나 컴팩트해졌다.


소소해진 가계부 속 눈에 띄는 지출이 있었다. 이를 딸기 유지비라 부르겠다. 봄이 되고부터 우리 집 냉장고에 늘 채워져 있는 두 식품이 있다면 닭가슴살과 딸기다. 다이어트 중 과당은 피할수록 좋다고 들었는데 예외적으로 베리류는 괜찮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일 디저트로 열 알에서 열두 알 정도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다.


딸기는 주로 근처 과일가게나 집 앞 마트에서 사 온다. 제철이라 그런지 언제 가더라도 매대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저 딸기들 중에 무엇이 가장 맛있을지 눈으로만 보고도 알 수 있다면! 과일을 사러 갈 때면 드래곤볼에 나오는 전투력 스카우터를 빌려오고만 싶다. 어느 팩이 가장 맛있을지 내심 진지하게 요리조리 둘러보지만 아직 장보기 레벨 쪼렙이라 다 그게 그거 같아서, 결국 골라골라 랜덤박스를 집어가는 심정으로 부디 달콤한 딸기이길 바라며 가장 탐스럽고 붉어보이는 친구 한 팩을 데려온다.

 

당도=전투력


집에 도착하면 흐르는 물에 딸기  알을 씻는다.   먹어보면 그날의 성과를   있다. 탐스러운 붉은색에 비례해 아주 달코옴한 날도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 물에 담가놓은 딸기를 먹은 마냥 맹맹할 때도 있다. 물딸기가 걸린 날엔 딸기의 색깔에 조금 배신감을 느낀다. 이런 맛이  거면 흰색이나 투명색에 가까워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이젠 괜찮다. 그릭 요거트를 사서 찍어 먹으면 된다는  알았으니까! 마트에 다시 가는 길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놀랍게도 요거트에 찍어먹는 딸기는 조금   딸기여야  맛의 밸런스가 맞았다. 그러니까 이젠 어떤 딸기를 골라와도 맛있게 먹는 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취 5개월 차의 내공은 이런 것이었다.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오늘 마트에 갔더니 벌써 수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딸기 매대 바로 옆이었다. 지난겨울 막 딸기 시즌이 시작되었을 때의 데자뷰마냥 수박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어 괜히 마음이 조급해지려 했지만 생각해보니 제철이라기엔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 그래 아직 봄이니까! 당분간 제철 딸기를 마음 놓고 즐길 것이다. 갑자기 아라시가 생각이 나는걸. 모 예능에서 마츠모토 준이 딸기를 샴페인에 퐁당 넣어 먹었었지. 갑자기 괜히 한번 따라 해보고 싶어 졌으니 오늘 밤엔 탄산수에 딸기를 퐁당 넣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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