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삶시 세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이도 Mar 17. 2021

섬들에게

위계질서가 강한 나라에서 동생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봤다. 첫째로 태어난 터라 주로 언니 누나로 불리웠지만 종종 나 역시 동생이기도 했다. 오늘은 동생으로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위로와 힘을 주면 좋을지 고민하는 글이다.






누군가를 돌보고 책임지는 것에 보다 익숙한 편이다. 연년생 동생과 다투는 날엔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컸음에도 일 년의 차이로 상대를 먼저 헤아려주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부모의 부재 시 보호자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며 늘 언니답게 행동하길 기대받았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첫째로서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들을 체득하고 어떤 것들은 체념함과 동시에 나는 늘 짙게 외로웠다. 서로 어느 정도 자라기 전까진 동생에게도 이런 관계에서 오는 고충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이런 시간들을 보내와서 그런지 책임감 강하게 행동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많이 쓰인다. 어느 관계이든 간에, 그들이 제 위치에 부여된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가끔 그 무게가 버겁거나 외롭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런 위계질서가 너무 익숙하면서도 늘 벗어나고 싶다. 비즈니스에서 효율성을 위해 수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나이라는 기준으로 자연스럽게 부여받은 역할로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을 갈망한다. 먼 나라 호스텔에서 만난 여행자들처럼 서로 다신 만날 일이 없다면 가능해질까?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오랜 세월을 살고 많은 것을 내려놓고 나면 가능해질까? 영등포 살던 시절 위아래 십몇 살 차이가 나도 스스럼없이 지내던 할머니와 친구 분들을 상상한다. 하긴 그때 우리 할머니는 칠십이 넘었었지. 그럼 내가 꿈꾸는 관계를 맺기 위해선 근 오십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 시기를 보다 앞당길 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그 전까지 내가 살고있는 이 문화권 속에서 나의 의미를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고민한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른들과 주변 언니 오빠들을 위해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위로나 챙김의 모습들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그 반대의 형상은 일반적이진 않은 것 같다. 애교를 연습해볼까. 그것은 타고난 친구들에 비하면 나의 재능은 아주 형편없다. 패스. 그럼 편지를 쓸까? 요즘 같은 세상에 편지는 너무 무겁고 진지하겠지. 차라리 가볍게 안부인사를 드릴까?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덜 부담스러우니까. 그냥 생각나서 연락드리게 되었다고, 오늘도 기쁜 하루 되시라고 인사를 보내야겠다.


그런데 불쑥 이런 고민이 든다. 갑자기 이런 문자를 보내는게 이상해 보이면 어떡하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고민을 하다 보면 명절의 안부인사를 드리는 타이밍까지 기다려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아아 망할. 왜 인간 사회는 이렇게까지 각박하고 살기 힘들어져서 누군가의 마음을 쉽게 받기도 주기도 어려워지게 된 건지. 산 정상에 올라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향해 시원하게 욕짓거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어찌 됐던 보편적인 나이스 타이밍은 명절 같으니 다음 명절인 추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마음 같아선 매일 당신들이 편히 잠들고 일어나길 바란다고 아침 알람처럼 꼬박꼬박 전해주고 싶은데. 힘들 때 내가 가장 괴로웠던 건 이렇게 오늘을 버텨내도 내일이 온다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 걱정 없이 잠들고 눈을 뜨는 것이 지금도 내겐 참 쉽지 않은 일처럼 느껴진다고, 그래서 당신들이 매일 좋은 잠을 자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은데. 으음. 매일 이런 말을 듣는다면 좀 부담스러울테니 한 3개월이나 반년에 한 번씩 보내는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한다.






상대방에게 현명하게  맘을 전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인간관계란 서로가 원하는 거리를 셈하는 일이라고 누군가 말했었지. 어렸을  수학을  열심히 했었어야 했나. 이젠 어떤 관계에 있든 간에 요즘은 어떻게 사는지 묻고 싶어도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며 시선을 내게로 다시 돌리는 것에 익숙해지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아아, 이래서 다들 어른이 되어가며 점점 멀찍이 떨어져 가는 섬이 되는 걸지도. 그래도.

매거진의 이전글 딸기 유지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