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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Mar 08. 2021

비누 같은 사람

나는 비누가 정말 좋다. 그래서 마트에 가면  비누 코너에 들린다.  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진  없지만 그래서 안정감이 넘치는 패키지들을 종종 살핀다. 숯을 넣었다는 때밀이 비누부터 사우나에서 종종 보이는 오이 비누와 우유 비누, 보기만 해도 세제 향이  나는   이십개들이 쌩비누들과 쑥과 장미와 벌꿀과 벚꽃과 블루베리와 레몬을 거쳐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비누까지 보고 있으면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편안해지며 아, 오늘 마트 잘 왔네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서너 개 들이 에 삼사천 원 정도 하는 비누를 사들고 집에 돌아온다. 사온 비누는 옷장에 보관한다. 패키지에서 나는 향기가 옷에 은근히 배지 않을까 싶어서다. 옷장 구석에 차곡차곡 쌓인 비누들을 볼 때마다 맘 한 구석이 든든하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왜 대부분의 샤워부스에 설치된 비누대는 손바닥만 할까? 마음 같아선 한 벽면에 오직 비누들을 위한 기다란 비누대를 걸어놓고 여러 가지 향이 나는 그들을 모조리 올려놓고 싶은데 말이다. 그럼 매일 아침 샤워를 할 때마다 내 기분에 맞는 비누를 골라서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하루종일 내 살에서 나는 비누 향을 킁킁대며 간간히 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세상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다. 욕심이 많아서 그런가. 무력함에 우울해질랑말랑 할 땐 얼른 내 팔에 코를 묻고 오늘 아침 내가 선택한 향을 맡으며 안정감을 찾는다. 좋은 향이 나는데 깨끗해지기까지 한다니. 거기다 하루 종일 몸에 밴 잔향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할 수도 있다니 이건 정말 멋져. 될 수 있다면 비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 글을 쓰는 내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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