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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Nov 03. 2020

나의 행운목에게

대충 키워도 잘 자라는 식물은 없었다

  우리집 행운목을 소개하고 싶다.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직은 어색하던 때, 정류장 근처에 있던 꽃집에서 데려온 친구다. 무던한 반려식물을 찾는다는 나의 말에 '얜 신경쓰지 않아도 잘 커요~'하며 보여주신 이 식물은 누군가 동강 잘라놓은 통나무에 물을 주고 키우면 이렇게 자라지 않을까? 싶은 모양새를 가졌다. 무뚝뚝해보이지만 아담한 베이지색 몸통에 이파리가 틔워져있는 모습이 첫눈에 보기에도 퍽 멋스러워보였다. 집에 두기 나쁘지 않아보여 고민하던 찰나에 '공기 정화도 잘 되고 볕 안받아도 잘 자라요~'라는 사장님의 말씀에 일단 한번 키워보기로 결정했더랬다.


당시 나의 심정. 그러고보니 우리집 행운목이 쵸파를 닮았네 @원피스


  집에 데려와보니 이 친구의 생존력은 생각보다 더 대단했다. 신경 쓰지 않고 지내다 화분 바닥에 물이 다 말라가는걸 보고 허겁지겁 물을 부어주기를 몇 차례. 그럼에도 쉽게 시들해지거나 잎이 노래지지도 않아 이거 정말 편한 식물이구먼! 하며 정말 별달리 신경 쓰지 않고 지냈더랬다.






  그러던 오늘이었다. 물을 갈아주러 가는 길에 화분을 쥔 손가락 위로 살락대는 뭔가가 느껴졌다. 생소한 간지러움에 쳐다보니 이파리였다. 헐, 그러고보니 처음 들여왔을 때보다 조금 더 길어진 것 같아. 요모조모 살펴보니 처음 데려왔을 때에 비해 색도 더 짙어진 것만 같고, 덩치도 조금 더 커진것 같고. 치렁치렁해진 이파리를 보니 몇 달 정리하지 않은 덥수룩한 머리를 보는 것만 같아 나는 낄낄대며 웃어버렸다.


  깨끗한 물로 갈아주면서 처음으로 이파리를 조심스레 관찰해보았다. 몰랐는데 군데군데 상처가 있었다. 잎 중간이 갈라졌다 실밥을 꼬매는 것마냥 아무는 중인 것도 보였고, 옅은 노란색으로 물들어가던 중에 다시 초록색으로 재생되고 있는 듯한 부분들도 보였다. 처음에 데려왔을 땐 이런것 하나 없이 새파랬었던 것 같은데, 밀려오는 죄책감에 서둘러 이곳 저곳 살펴보니 생각보다 상처가 많았다.


  정말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똑같다. 대충 키워도 잘 자라는 생명은 없지. 처음 데려왔을 때 그 마음이 적당했을 뿐이라서, 별달리 큰 애정을 두고 싶지 않아서 딱 그만큼의 거리감만큼 떨어져 바라보았었더랬다. 저한테 관심 하나 없는 와중에도 제 나름 살아보겠답시고 버텨왔을 나의 행운목. 여실했을 발버둥질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발견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파리를 길러낸 모습을 바라보면서 여러 감정들이 해일처럼 밀려들어와 나는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행운목이 좋아하는 것들을 검색했다. 3~7일에 한번씩은 물을 갈아주세요.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세요. 음지에서도 잘 자라지만 가끔 볕을 씌워주면 좋아요... 매주 화요일 금요일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을게. 네게 잊지 않고 신선한 물을 줄게. 창가에 놓을테니 네가 좋아하는 바람도, 비록 반사광이지만 빛도 충분히 받을 수 있길 바라. 앞으론 속상해서 잎이 갈라지거나 노랗게 변색될 일 하나 없었으면 좋겠다. 네가 맘 편히 잘 자랐으면 좋겠어.


늦었지만 우리집에 온 걸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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