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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시 세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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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Mar 24. 2021

고양이 산책

며칠 새 고양이가 산책하는 모습을 두 번이나 보았다. 길고양이도 아니고 집고양이가 바깥에 나와있는 것을 보는 것은 적어도 내 인생에선 흔한 일이 아니었다. 으레 고양이란 극한의 집순이 집돌이와 동의어가 아니었는지? 아무튼 마실을 나온 두 마리의 고양이들 중 어제 만난 한 마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일을 하다 갑작스레 한 시간 가량 자유시간이 생겼다. 평소 같았으면 가만히 핸드폰을 하며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겠지만, 어제는 날씨가 너무 좋았기에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삼 분쯤 걸으면 나오는 유치원 옆에 공원이 하나 있던데. 그 공원이 볕이 잘 드니까 그곳에 가서 쉬다 와야지. 슬슬 걸어 도착한 공원의 동그란 벤치에 누워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짧은 낮잠을 시도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십 여분 정도 지났을 때, 당장 내 머리맡에서 고롱고롱거리는 소리가 났다. 예상하지 못한 진동 소리가 나무 판대를 타고 귀를 울렸다. 이게 뭔가 싶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두 뼘쯤 되는 거리에서 한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웬 고양이.


이 갑작스러운 눈 마주침에 당황스러운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고양이가 동공 지진하는 것을 다 보았다. 길고양이가 쉬러 나온 건가 싶었지만 스트릿의 그것이라기엔 털의 결이 너무나도 뽀송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옆엔 유치원에서 갓 하교한 듯한 아이가 고양이를 제 무릎 위에 앉히고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참새 같은 입으로 옆에 함께 앉아 계신 엄마에게 레오는- 레오는-... 하며 끊임없이 조잘거리던 그 모습은 아마도 당신이 받은 사랑의 모습처럼 조용히 아이를 관찰하고 이야기하고 예뻐해주려 했던 것이리라. 레오씨를 바라보니 어느새 그는 제 어린 주인의 손 위에 고개를 파묻고 편안한 자세로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안락함에서 오는 고양이의 규칙적인 진동 소리와 조잘조잘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 평화롭다. 들려오는 소리들을 배경 삼아 선잠에 들었다 깨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맞춰놓은 알람 소리에 부스스 일어나 시계를 보니 다시 일하기 10 전이었다. 고양 씨와  가족분들은 진즉에 집에 돌아가신  같았다. 마음속으로 아까  동공 지진을 되새기며 조금 웃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당신을 당황하게 만든  같아 미안하다고 전했다. 세상엔 텔레파시라는 것이 존재할지도 모르니 언젠간 닿지 않을까.


어떤 시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헤매고 노력했던 시간들보다 훨씬 밀도 있게 흘러 들어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빈 구덩이를 메우곤 사라진다. 바지를 털며 습관처럼 커피를 사 갈까 하다 오늘은 왠지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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