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에 대하여_

'Rylynn', Andy McKee

by 레드오렌지

바쁜 날을 보내고 있는 중 우연히 신입 사관생도들의 입학식을 본 적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족들을 초청하지 못하고 유튜브 생중계로 대신했던 입학식이었다. 연병장 한가운데 1학년 정복을 입은 이들이 늠름하게 서있었고, 그 뒤로 선배 생도들이 예복 차림으로 그들의 입학을 축하하고 있었다. 신입생도들은 입학식 전 5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가입교 훈련, 혹은 가입교 훈련이라고 불렸던 그 훈련은 2022년부터 충무기초훈련으로 불리고 있다. 전통 있는 훈련이 드디어 제대로 된 이름을 갖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5주간의 충무기초훈련은 갓 수험생활을 마친 민간인 학생들을 사관생도로 탈바꿈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수험생활 동안 체력단련보다는 공부에 집중했을 신입생도들이 학교에서의 생활에 원활히 적응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기초체력과 정신력을 향상한다. 여느 기초군사훈련이 그렇듯, 정신적으로는 큰 충격을 받고 체력적으로는 큰 한계에 부딪히는 훈련이기도 하다. 5주간 휴일 없이 훈련에 참가하는 동안 신입생도들은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매우 고달프다. 종교활동에서 받는 간식이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 없으며, 훈련 중간중간 이루어지는 좌학 시간은 또 그렇게 안락할 수 없다.


신입생도들을 바로 옆에서 가르치고 성장시키는 주체는 다름 아닌 선배, 조교생도들이다. 조 교생 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신입생도들이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사관생도이자 훈련기간 동안 가장 많이 마주치는 사관생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교생도를 선발할 때에는 따로 인사위원회를 개최하여 훈육장교들의 심의를 거친다. 조교생도가 되었다는 것은 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자원이라는 것을 뜻한다.


특히 중추적 역할을 하는 건 3 기수(3년) 선배인 소대장 생도인데, 충무기초훈련은 기본적으로 소대단위로 훈련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대장 생도의 지도방침과 성향을 신입생도들의 생도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소대장 생도가 중요한 이유다. 잘못된 전술지휘가 부대를 전멸에 이르게 하는 것처럼, 잘못된 교육도 마찬가지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는 사례가 많지 않은가. 같은 중대였던 동기는 소대장 생도에 임하며 많은 고민을 토로했다. 어떻게 후배생도들을 지도해야 할까, 어떻게 이야기해야 이 친구들이 좋은 사관생도가 될 수 있을까 라며. 그 친구가 지도 해던 신입생도들이 입학 이후에도 아주 잘 생활했던 것을 보면 그 고뇌는 좋은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입교식이 떠오른다. 1월 6일부터 2월 9일까지 5주간 가입교 훈련을 마친 우리는 마침내 연병장에서 입교 선서를 할 수 있었다. 연습했던 것에 비해 순식간에 지나간 입교식,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가족들을 만나 눈물을 흘리던 동기들도 많았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이 기뻐서 한껏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가져오신 불판과 불고기가 특히 떠오른다. 훈련 기간에 간간히 집에 보냈던 편지에 먹고 싶은 음식을 적어놨는데, 그중 하나였다. 참 맛있게 먹었다. 동기 중에는 갑자기 너무 많은 음식을 먹은 탓에 배탈이 난 친구도 있었다. 입교식이 끝나고 동기들과 모여 그런 친구들을 놀리기도 했다. 그렇게 맛있었냐며...


그리고 그날 밤에는 소대장 선배와 우리 소대 동기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 그렇게 무섭던 소대장 선배가 웃으며 우리와 축구를 하는 것을 보며 마냥 신기했었다. 저 선배가 저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나? 축구를 끝내고는 다 같이 목욕탕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생도생활을 시작했었다. 내 군생활의 시작이 그랬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고됨에 끝내 포기한 적도 많았고 이겨낸 적도 많았다. 아무리 힘든 훈련이라도 어쨌든 끝은 있었고 그 끝에는 휴식이 있었다. 하루를 끝내고 침대에 누웠을 때 생각하던 건 내일이었다. 내일은 비가 올까? 무사 태평하게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면 금세 1년이 지나갔다. 1년의 마지막에는 항상 내년을 생각했다. 내년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사람들이 내 삶에 등장할까.


임관을 앞두고 있는 시기에는 그런 기분이 든다. 보호막이 모두 해제되는 것 같다. 이제는 정말 고향과 멀어진다. 새로운 세계가 설레면서 동시에 걱정된다. 주변에서 거는 많은 기대는 부담스럽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일까? 익숙했던 이 학교에서 벗어나 수없이 많은 근무지에서 언제나처럼 열심히 일할 수 있을까? 곧, 탈피에 대한 두려움이다.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고 연락도 잘할 수 없고 묵묵히 이 망망대해에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이 길은 이곳에 들어오기로 결심하고부터 어쩌면 평생 짊어져야 했던 숙명 같은 것일 텐데. 그런 고뇌의 시작, 내가 이곳에 들어오고 싶었던 이유. 내가 군인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뭘까.


그 이유를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어떤 이유건 내가 선택했다는 것. 내가 선택한 이 길에 걱정만 한다면 그것만큼 나 스스로를 욕되게 하는 것은 없다. 내가 선택했다면 우직하게 밀고 나가야 하는 게 옳다.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그 선택은 틀리지 않다. 설령 실패했더라도 그러하다. 사람은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결국 그 경험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졸업 및 임관식 당일을 맞이했다. 그날따라 더 추웠던 아침 공기에 침대의 이불속은 왠지 평소보다 따뜻했고 포근했다.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여니 찬바람이 훅 하고 들어왔고 추위를 느끼며 바라본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비가 오겠구나를 직감하며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여느 때와 비슷한 메뉴의 아침식사. 그러고 보니 매일같이 부지런하게 식사를 지어주던 조리병들이 생각났다. 6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식사를 매일 준비하던 게 참 고되었을 텐데 항상 고마운 마음이 컸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일출이 나를 반겼다. 떠오르는 해와 언제나처럼 배들이 떠있는 진해만의 풍경. 4년 전, 나의 가입교 훈련에서 소대장 선배는 그 풍경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누려!”라고 말했었다.


임관식은 오후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근무복을 입고하는 마지막 분열 연습을 마쳤다. 그렇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마침내 임관식의 시간이 도래했다. 시간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단순한 행사로 지나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나 우리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모두들 마지막 행사를 기념하며 서로 간 인사를 나누었다. 앞으로 볼 기회가 적은 해병대 동기들과는 더욱. 4년간의 회포를 풀며 그때는 그랬었지, 즐거웠다. 나중에 다시 보기를 희망한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 눈물을 흘리는 동기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웃는 분위기였다. 헤어짐이란 슬픈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임관식의 오늘은 슬픔으로 장식하기에는 너무나 찬란한 하루였기에.


소위 정복을 갈아입고 길을 나섰다. 하늘은 아침에 낀 먹구름이 대변하듯 흐렸다. 당장이라도 빗방울이 몰아쳐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를 풍겼다. 우리는 입장 선상에 서서 생도로서의 마지막 행사, 우리의 임관식을 준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족들을 초청하지 못해 유튜브 생중계를 했다. 우리를 촬영하러 오는 카메라에 한껏 기쁨을 표현하였다. 그러던 중 한 명이 하늘을 바라보고 말했다. “비 온다.” 소위 정복을 입은 우리는 비를 맞기 시작했다. 하얀 정모부터 천천히 물들이기 시작한 정모. 빗물이 어깨를 물들이기 시작할 무렵 모두가 서로를 쳐다보며 말했다. “끝까지 재미있네!”


그렇게 임관식은 시작되었다. “잠시 후 오늘의 주인공 신임 소위들이 입장할 예정입니다.”라는 사회자의 안내와 함께 우리는 힘차게 행진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어깨를 적신 빗방울은 어느새 양말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우리는 팔을 흔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결국 이 비도, 임관식도 끝날 것을 알기에, 모두가 축하해주는 이 행사를 만끽하기 위하여. 임관식을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연습할 때는 그렇게나 오래 걸리던 행사인데... 행사가 끝날 때까지 비는 내렸지만 대부분의 식순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비록 비가 내리지만 이 자리를 빛내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마지막 분열을 끝내고 사진 촬영까지 마친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생각보다 허무하네” “짐 챙기고 교육사로 가자” 나의 졸업 및 임관식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시작이 그렇다. 시작하는 순간에는 엄청난 열정으로 뭐든 열심히 하려 한다. 내 앞에 있을 역경은 없을 것 같고,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다짐이 무색하게 시련을 마주한다. 가끔은 시련에 좌절한다. 이겨내지 못하고 무릎을 꿇는다. 쉽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려 아득바득 발악하지만 끝내 실패할 때가 많다. 실패가 전염되기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 때도 있다. 그럴 땐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을 온데간데없고 마음속에는 어둠만 가득해진다. 난 잘하는 게 뭘까 하며 떨어지는 자존감, 나 자신에 대한 불신. 패배감, 더는 못할 것 같다는 무력감까지.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지만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럴 때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건 시작의 기억뿐이다. 초심. 뭐든지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던 마음가짐을 말이다. 실패했으면 그냥 다시 시작하면 된다. 쉽지는 않겠지만 다시 시작하는 것도 도전이다. 힘든 일이 있으면 찬란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는 건 어떨까. 누군가는 나의 시작을 축복해주었으며, 무언가를 성취했던 그 순간에서는 나 자신이 최고였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도 결국 과거에 있던 고통과 인내가 만들어낸 선물이다. 그저 평탄한 일상의 반복이었다면 시작과 끝이 그렇게 극적으로 행복하지는 않았을 테다. 같은 42.195km를 자동차로 타고 가는 것과 달려가는 것이 다르듯 말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보는 거다. 지금 겪는 고난은 결국 미래에 찬란한 순간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마치 나의 시작이 그러했듯.


그래 그런 순간이 있었지. 그때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찬란했던 그 입교식을 위해서, 나는 고통스러운 5주를 보냈지. 아 그래. 그 5주가 있었기에, 그 5주를 그토록 인내하며 버텨냈기에 입교식이 그렇게 찬란했었구나. 지금 겪는 시련이 있기에 내 미래는 찬란하겠구나. 찬란했던 그 임관식을 위해서, 나는 고된 4년을 보냈지. 4년간의 시련이 쌓이고 쌓여 내가 그곳에 서있었구나. 수많은 인내의 시간이 결국 이 빛나는 자리를 빚어냈구나.


어째서 많은 여정에는 그 끝과 시작을 선포하는 행사가 함께할까 생각해본다. 그냥 넘어가도 되는데, 굳이 안 해도 되는데, 그렇게까지 축하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하는 그런 행사들을 말이다. 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힘들 때, 포기하고 싶을 때. 초심을 기억에서 꺼내오기 위해서 중대한 여정의 시작에는 항상 찬란한 의식이 거행되는 게 아닐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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