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Sungha Jung
모든 사람이 행복을 향해 나아간다. 각자의 행복한 결말을 위한 여정을 걷는다. 여정은 길다. 대개 사람들은 거의 평생에 걸쳐 행복이 무엇인지 고뇌하며 행복의 본질에 대해 탐구한다. 누군가는 순간의 쾌락을 행복이라 정의한다. 지금 당장 자신의 기분이 좋아야 비로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깨달음을 행복이라 말한다. 끝없는 고행 끝에 얻은 깨달음이 곧 행복이라는 것이다. 뉴욕에 사는 톰에게 행복은 센트럴파크에서 조깅하는 것일 테고, 한국에 사는 민수는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며 차를 마시는 게 행복일 테다. 이처럼 사람마다 행복은 다르다.
친구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행복이라는 화두를 던지면 대개 분위기는 무거워진다. 분명 행복이란 즐거움의 다른 말일 텐데 그것에 대한 대화 분위기가 무거워지다니, 이상하다. "당신은 행복합니까?"라고 던지는 화두가 개개인에게 그만큼 무겁게 다가온다는 뜻이리라. 나의 행복에 대해 쉽사리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행복이 우리의 삶에서 궁극의 목표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 스스로가 행복의 기준을 높게 잡고 있기 때문일까?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보자. 나는 뜨겁고 습한 여름날, 밖에서 땀을 뻘뻘 흘리다가 집에 들어와 에어컨을 틀고 찬물에 샤워를 한 후 비로소 침대에 눕는 그 순간이 떠오른다. 아니면 오랜만에 들린 서울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프라이머리의 ‘3호선 매봉역’을 듣고 있을 때? 지하철이 덜커덩 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멜로디가 주는 특유의 감성에 빠져버리면 헤어 나올 수 없다. 따뜻한 차 한잔을 책상에 올려두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또 어떤가, 걱정 없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행복 아니겠는가.
행복이 무엇인지는 철학자들의 탐구주제이기도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행복에 대한 담론은 항상 존재해왔다. 니체에게 행복은 극복이다. 매 순간순간을 위험하게 살아가라는 그의 사상에 있어 행복이란 어려움이나 시련에 마주한 이가 그것을 극복할 때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다. 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고 외치는 그에게는 시련 또한 사랑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자 행복의 근본적인 획득처였다. 공자에게는 배움이 곧 행복이었다. 논어의 첫 문장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공자의 말을 생각해보라.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과정에 있는 공부 그 자체로 행복을 얻는다는 공자의 철학. 그것은 행복이 결말이 아니라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행복과 기쁨을 동치 시킬 수 있을까? 말인즉슨 '나는 행복하다.'와 '나는 기쁘다.'를 같은 표현으로 볼 수 있느냐는 뜻이다. 사전에서 행복과 기쁨의 정의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행복 :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기쁨 :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 정의를 놓고 보면 기쁨과 행복의 관계는 사실 종속적이다. 욕구가 충족되면 기쁨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면 행복하다. 즉, 행복의 조건 중 하나는 욕구의 충족이다.
욕구에 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이론인 '매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구를 6개 단계로 구분한다. 살아있기 위해 필수적인 산소, 영양소 등에 대한 생리적 욕구, 주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 욕구, 조직에 속하여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 소속감 및 애정 욕구, 나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존중 욕구, 자기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는 자아실현 욕구, 자아를 완성하고 초월하여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자아초월 욕구가 그것이다. 각 욕구는 이전 단계의 요구를 충족해야 비로소 채울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욕구를 충족해야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걸까. 살아있기만 하면, 즉 생리적 욕구만 충족하면 행복한가? 집이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때 비로소 행복해지는가? 아니면 타인에게 인정을 받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을 초월하여 남을 위해 살아갈 때? 자아를 실현한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대, 정말로 자아실현에 도달했다고 행복할 수 있을까? 비로소 자아실현에 도달했더라도 그다음 단계인 자아초월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지 못해 불행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지금 존재하는 인류에게 있어 행복의 조건이 생리적 욕구의 충족이라면 반례가 많아도 너무 많다. 생리적 욕구를 충분히 충족하고 있지만 불행한 사람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았다. 반대로 자아초월의 욕구 충족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공자, 예수와 같은 성인을 제외한 모든 초월하지 못한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는 이야기인가?
키워드는 모든 인류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모든 인류의 행복에 필요한 최소한의 욕구 충족 기준을 한 가지 수준에 맞출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가 스스로의 행복도를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비교가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가 가진 행복의 기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비로소 행복한지를 고민하는 것. 나는 작은 것에도 행복함을 느끼는가? 아니면 삶의 궁극적 목표를 이룰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는가? 궁극적 목표를 이룰 때까지 내 삶이 불행해도 나는 괜찮은가? 무인도에 표류 중인 조난자에게는 파도에 밀려오는 비상식량으로 충족되는 생리적 욕구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만약 그가 무인도 탈출만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가 표류하고 있는 그 시간들은 불행한 시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바보를 생각해보자. 감히 말하건대 바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바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바보들을 떠올려보라. 나는 스펀지밥의 '뚱이'가 떠오른다. 뚱이는 바보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며 눈치가 없다. 집게리아 종업원으로 일하는 도중 전화로 "거기 집게리아 맞죠?"라고 물어보는 손님에게 "아뇨? 뚱인데요?"라고 말하는 그의 행동은 전형적인 바보다. 가족과 친구들이 자신을 걱정하는 건 아는지 마냥 웃고 다니며, 화가 나면 세상이 무너져라 소리치고 즐거운 일을 하면 세상이 무너져도 모를 정도로 몰입한다. 뚱이는 딱히 본인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소소한 일마저도 그에게는 행복을 준다. 뚱이는 그렇게 그저 현재에 살아간다. 현실, 현재, 이 순간.
그렇다. 우리가 힘든 이유.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 우리가 행복을 위한 길을 찾으면서도 끝내 다다르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우리가 행복을 결말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현재형이다. 고단한 하루를 끝낸다고 행복해질까? 내일 다시 출근할 생각을 하면 불행해진다. 새로운 차를 샀다고 행복해질까? 금세 행복감은 사그라들고 줄줄이 새 나가는 할부 값이 걱정일 게다. 그렇기에 행복하고자 하는 우리는 순간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고단한 하루를 끝내고 집에 들어온 순간.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운 그 순간.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성공한 그 짜릿한 순간. 그와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있는 그 순간. 어떤 차를 살까? 행복한 고민을 하는 순간. 마침내 출고된 차의 보호필름을 뜯어내는 그 순간. 우리는 그 순간순간에서 행복을 느낀다. 모든 생이 순간순간의 즐거움뿐인 바보, 뚱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수험생활은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공부를 시작해서 새벽이 되어 비로소 침대에 누워있는 일상을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보내야 한다. 혹시라도 떨어지면 어떡하지, 미래에 대한 걱정에 밤잠을 설칠 때도 많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합격하고 난 후 그 시간을 생각하면 왠지 아련하고 그리워질 때가 있다. 수능시험에 재수를 하던 시기가 떠오른다. 고민 많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생각처럼 성적이 많이 오르지도 않아 걱정이고 혹시나 시험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고민하던 기간이었기에. 그런데 가끔은 그때가 떠오른다. 항상 모의고사를 보고 난 후 친구와 학원 근처 놀이터에 걸터앉아 캔맥주를 마시곤 했었다. 한창 더운 여름날 시험을 보고 마시는 맥주가 그렇게 달고 맛있었다.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눴던 그 순간에서 나는 행복을 느꼈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료들과는 "그래 그때는 행복했었지...", "참 즐거운 시기였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추억 보정이라는 말이 있다. 고통스러웠던 과거도 지금 생각해보니 즐거웠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칠었던 시기도, 포기하고 싶었던 시기도 미래의 한 지점에서 되돌아보면 행복했던 때일 수 있다. 가난에 고통받았지만 가족끼리 오순도순 화목하게 살던 때, 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있지만 친구들이 찾아와 위로해 주던 때를 생각해보자. 그 '때'가 모여 행복했던 '순간'이 된다. 그렇게 행복했던 '때'를 만들며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현재를 바라볼 때, "아 그때, 그때 행복했었지 정말."이라고 말하는 순간들이 많도록.
Living in the moment - Jason Mraz
So I just let go of what I know I don't know
그래서 나는 내가 모르는 것들에 손을 놔버려
And I know I'll only do this by
그리고 오로지 내가 하게 될 것을 알고 있지
Living in the moment
이 순간에 사는 것.
living my life
내 삶을 사는 것.
Easy and breezy
쉽고, 살랑거리며
With peace in my mind
내 마음에 평화와
With peace in my heart
내 심장에 평화와
Peace in my soul
내 영혼에 평화를 안고서.
Wherever I'm going, I'm already home
그렇게 가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해있어.
Living in the moment
이 순간에 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