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하여_

'First Love', Joe Hisaishi

by 레드오렌지

사랑, 그것은 샌드위치에 뿌린 올리브유처럼 자연스레 스며드는 한나절의 감정이다. 그것은 수없이 반복되는 영원한 삶의 뜀박질처럼 그 생의 끝을 우리의 심장에서 보겠다는 일념으로 박동하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블랙홀의 차가운 표면처럼 식어버리고 주변의 모든 추억들을 사건의 지평선 아래로 잠식시킨다. 흐르는 시간의 찰나를 쪼개어 뜨겁게 나눈 그대와 나의 하루, 한 달, 한 해는 그 누구에게도 엿보이기 싫은 우리만의 찬란한 순간이며 나의 조각난 심장을 이어 붙이는 실마리의 끝자락으로 남을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바늘에 얽히고 이끌려 풀어져 끝없이 넓어진 실 한올의 구멍으로, 이내 다시 메꿀 수 없는 빈 공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사랑은 태풍처럼 몰려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기도, 햇살처럼 다가와 이내 구름에 가려지기도 한다. 그것은 때론 매몰찬 고통을 남기며 동시에 따뜻한 치유의 손길을 내민다. 포근하며 공허하다. 기쁘며 슬프고, 이끌며 놔버린다. 불타오르다 이내 잦아들며,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타오른다. 빛이자 그림자이고, 냉정이자 충동이다. 뫼비우스의 띠 위에 놓여 끝없는 길이다. 처음 보는 도시에 혼자 놓인 어린아이가 이리저리 헤매는 길이다.



사람은 사랑받고 싶어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의 근원은 사랑이다. 괜스레 마주한 이슬 맺힌 길거리의 풀잎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순간의 사물체일 뿐이나 그를 사랑하는 이에게 풀잎이 이슬을 맺은 그 순간의 기억은 평생을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그의 삶에서 풀잎의 존재를 영원히 지우지 못하게 한다. 한 명의 사람이 일생을 살아오면서 사랑한 것들은 그의 일생에 문신처럼 각인되어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다.


부모의 사랑, 연인의 사랑, 동물의 사랑, 무생물에 대한 사랑. 모두 사랑이다. 사람은 살아가면 많은 사랑을 마주친다. 태어나면서 부모의 사랑을 마주쳤다. 부모는 우리에게 그 끝을 모르는 애정과 따뜻한 격려를 물려주었으며, 이것을 그 정도에 따라 우리가 성인이 되고 나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를 결정하곤 한다. 동물들도 그렇다. 부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사냥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 어린 황조롱이 성체는 부모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한 개체보다 더 훌륭하게 사냥을 할 거이며, 이것은 결국 그의 생존을 보장하게 될 것이다. 무생물은 또 어떠랴, 사람은 무생물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진다. 미 해병 EOD의 한 병사는 그저 무인 로봇일 뿐인 '조'에게 '느림보 조'라는 이름까지 붙여주며 매 전투에 참여했다. 한 폭파 제거 작전에서 '느림보 조'가 폭파되고 말았을 때, 그는 그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에 뛰어드려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렇듯, 인간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존재에게도 사랑을 느낀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중요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마 연인에 대한 사랑이지 않을까. 그의 지향성이 어떠하던 이는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어나서 결혼 적령기에 이르기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소위 말하는 '운명의 연인'을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운명이라는 것이 실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당장 내 사례만 들어도 그러하다. 이 세상의 운명론을 믿지 않고, 신의 존재를 믿지 않으나 뭔가 내 운명의 상대가 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만 같은, 그랬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리 냉철한 사람도 자기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원래 나와 만날 예정이었어", "우리는 운명이야"라는 각종 진심 어린 미사여구로 연인과의 하루를 장식하곤 한다.


사랑은 사람을 충동적으로 만든다. 사랑이라는 게 어디까지나 우리 뇌와 호르몬이 만들어 내는 현상이니 만큼 어느 정도는 이성의 통제를 받을 법도 한데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은 연인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내일 출근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룻밤 새 진해-서울을 왕복했다. 잊을만하면 거짓된 연인에게 속아 전 재산을 탕진한 사람의 기사가 나와 세상을 놀라게 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충동적으로 사랑고백을 해서 차이는 이야기는 이미 로맨스 소설의 클리셰가 되어버렸다. 현빈과 손예진이 출연한 '사랑의 불시착'에서는 사랑 때문에 주인공이 월북, 월남도 하지 않는가. 사랑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위험하고 동시에 매력적인 감정이다.


다른 이의 연애상담에 사랑이란 그저 햇살처럼 다가왔다가 그림자처럼 멀어지는 것이라며 건조하게 대답하는 사람도 막상 본인 일이 되면 그 충동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다가오는 햇살에 설렘을 느끼고 왠지 손 뻗으면 닿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소망한다. "햇살이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 햇살이 계속 나를 비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리를 굴려보며 움직이는 해를 따라 계속해서 걸어간다. 가끔 햇살이 너무 강해 뜨거움을 느끼면 피하기도 하고, 구름에 가려지면 영영 떠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한다. 다시금 햇살이 나를 비추면 행복을 느끼다가도 지평선 너머로 햇살이 그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면 노을이 만들어낸 나의 그림자와 비로소 마주한다.


그렇기에 사랑은 서로를 향해 공전하는 쌍성같아야 한다. 그들은 서로의 무게중심을 공전축 삼아 공전한다. 큰 별이 작은 별을 이끄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분명 작은 별도 큰 별을 이끌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이끈다. 그들은 결코 일정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서로를 너무 사랑하여 더 가까워지려 한다면, 로슈 한계를 넘어가버리면, 끝내 큰 별이 작은 별을 삼켜버려 블랙홀 하나만 남게 된다. 영원히 빨아들이는 블랙홀, 추억마저 사건의 지평선 아래로 감춰버리는 블랙홀로.




세상에는 사랑노래가 많다. 10곡의 노래가 나오면 8곡은 사랑을 주제로 하는 듯싶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주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사랑이라는 주제 속에도 다양한 하부 항목들이 많다. 처음 사랑을 시작하는 설렘을 담았다거나, 이별의 슬픔을 담거나.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슬픔으로 가득 차 있거나 하는 식이다. 진부하다면 진부한 주제이지만, 고구려 유리명왕도 황조가에서 사랑을 노래한 걸 보면 인류의 보편적 감정 표현 소재로 보는 게 적합할 듯싶다.


후술 할 노래들은 내가 최근 들어 많이 듣는 사랑노래들이다. 가끔은 설레는 노래를 듣고 싶다. 무료한 일상에 산뜻함을 품고 나도 같이 설레고 싶은 감정이다. 억지로 기분이 좋아지고 싶을 때 틀어놓기도 한다. 예를 들면 출근길? 왠지 쓸쓸할 때는 울적한 이별노래를 듣는다. 옆에 비슷한 주제로 밤새 슬픈 이야기를 나눌 친구 한 명이 생긴 느낌이다. 비가 내리는 날 집에 혼자 앉아있을 때 보통 그렇다. 사랑노래는 정말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가사가 공감이 간다. 내가 겪어본 적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사 속의 인물이 어떤 감정일지 너무나 잘 알게 된다. 그래서 사랑노래의 가사는 중간이 없다. 항상 아름답거나, 슬프다.



'연애를 시작한다는 건 말이야', 블루파프리카



'그래 연애를 시작한다는 건 말이야,

집에 오는 길에 맥주처럼 멈출 수가 없는 것

밤하늘의 별들까지 모든 것이 너를 향해 가는 것

달콤한 초콜릿처럼 멈출 수가 없는 것

휴일을 앞둔 저녁처럼 모든 것이 아름다워지는 것'



제목은 연애에 관련되었지만 사실 사랑 전반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을 시작한다는 건 뭐라고 할까, 너무나 일상적이고도 동시에 환상적이다. 일상적인 단어로 사랑을 설명하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만 미사여구를 넣게 된다. 뜨거운 사랑이라던지, 황홀한 사랑이라던지. 사랑이라는 단어에 미사여구를 넣지 않으면 그 자체로 그 감정에 실례하는 기분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작고 소중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진 가치가 그만큼 크다. 그렇기에 사랑은 내가 시작하고 싶다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내 멋대로 멈출 수가 없다. 그저 사랑이라는 기차에 갑작스레 실려 이리저리 움직일 뿐. 그렇게 움직이는 기차 속 세상의 주인공은 너와 나다.




'Ohayo my night', 파테코/디핵



'내가 너를 사랑하여도 네가 날 안 사랑해도 우린 나름대로 행복할 거야'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의 사랑 반을 받아, 남은 사랑의 반도 내가 채워줄 거야 꼭'

'내 방 천장에 그려 본, 내 우주에게 물어본 말은 나를 사랑하면 안 될까?'



뭐랄까, 찌질하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애처롭게 부탁하는 모습, 남은 사랑의 반도 자신이 채워주겠다고 하는 그 감정. 지질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공감된다. 사실 찌질함이 사랑의 본모습은 아닐까 생각한다. 평생을 나누고픈 사람이 내 앞에 등장했는데 태연한 척, 별로 관심 없는 척하는 게 어디 쉽겠는가? 지질한 모습을 이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놓는 그 상황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사람이 사랑하면 안 돼요', 준호준



'사람이 사랑하면 안 돼요. 매번 내 모든 걸 앗아가요'

'내 무덤은 내가 파야 잃을 게 없으니, 더는 사람이 사랑하면 안 돼요'



사랑에 상처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런 상처를 딛고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지만, 누군가는 사랑으로 벌어진 상처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고 만다. 가사의 주인공이 그렇다. 사랑을 하는 것을 자신의 무덤을 파는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큰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지난 사랑에 겁을 먹어버려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사랑을 할 때마다 내 모든 것을 빼앗기는 고통을 겪는다는 가사가 씁쓸하다.



'Broken', 결



'날 그리워했다고 하다니 넌 참이기적이네, 차라리 욕을 하고 말을 말지 왜 또 나를 울게 해'

'내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을 넌 아니? 아름다운 기억은 악몽이 돼 날 찾지'



떠나간 사람이 다시 돌아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그리웠기에 반갑기도, 왠지 다시 시작할 수도 있겠다 싶다. 잠깐 동안 즐거웠으나 행복했던 지난 이야기를 늘어놓는 너의 모습에 이내 그만둔다. 네가 모질게 내쳐버린 그때의 나의 마음에는 이미 못이 박혔기에. 너와 내가 주인공이던 기차 위 세상은 이미 무너졌고 그때의 기억은 악몽이기에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못 견딘다. 연인과 헤어진 직후에도 다른 사람을 찾아 헤맨다. 가끔은 안타깝다.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채울 수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부재가 얼마나 클지 조금은 공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 없는 삶을 사랑해야 한다.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나 자신이 비로소 나 자신일 때, 내가 사는 목적이 나의 행복일 때, 내가 비로소 내가 되었을 때. 그때가 되어야 누군가를 만날 수 있고 누군가와 사랑할 수 있으며 누군가와 행복할 수 있다. 따라서 나에게 있어 사랑은 수단이다. 나 자신이 더 행복해질 수 있고, 나로 인해 네가 행복해질 수 있는 수단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행복을 위해 사랑을 사용하고 싶다는 뜻이다.


사랑을 하면 수많은 선택지에 마주친다. 당장 처음 만나서 어떤 인사를 할까, 어떤 음식을 먹을까 같은 고민부터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 라는 고민까지. 처음 사랑할 때를 떠올려보라. 처음 사랑할 때는 그 모든 순간이 설렘이었다. 상대방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에 놓치고 싶지 않음에서 오는 떨림이었다. 가끔 서투른 실수를 해 내가 왜 그랬을까 한탄하는 순간조차도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수없는 갈림길에 고뇌하며 하나하나의 선택지에 기뻐하고 후회하는 그 모든 순간이 사랑이다. 길의 끝에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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