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에 대하여_

'Glorious Morning', Waterflame

by 레드오렌지

나뭇가지에서 시뻘겋게 타오르는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를 발견한 이족보행 개체가 소리를 지른다. 나뭇가지를 들고 집에 돌아와 흙으로 만든 그릇을 그 덩어리에 올려둔다. 천천히 겉에서부터 말라가던 그 그릇은 어느새 전체가 단단해지고 이족보행 개체는 그릇을 구운 그 덩어리를 '불'이라고 부른다. 소중하게 집 한가운데 가둬놓았던 불은 그가 함께 넣어둔 나무를 타고 점점 더 커져간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냥에서 돌아와 불에 활활 타고 있는 그의 집을 발견하고 슬퍼하며 울부짖는다. 그는 잔해를 뒤적거리다 어제 주워왔던 돌멩이를 놓아둔 자리에 반짝거리는 단단한 황색 돌멩이를 발견한다.




발전,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이 개념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경험에서 출발한다. 모든 사람이 발전을 경험한다. 사람마다 발전을 겪는 빈도, 발전도는 차이가 나겠으나 분명 그들은 5년, 10년 전의 자신보다 발전했다. 아니, 최소한 갓 태어나 아장아장 걷지도 못하던 그 아기일 때보다는 분명 발전했다. 한 인간 개체의 발전은 곧 인류 전체의 발전이다. 매우 작고 보잘것없는 발전이더라도 그렇다. 때로는 그저 한 명의 발전이 인류 전체 종에 있어 거대한 진보를 이룩하게 한다. 과학에서는 만유인력의 뉴턴이나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 철학에서는 유학의 공자와 공리주의의 벤담을 꼽을 수 있겠다. 뿐이랴, 세상을 엄청난 혼돈 속에 빠지게 하기도 한다. 공산주의의 카를 마르크스가 그랬다.


현대, 근대, 근세, 중세, 고대, 선사를 거쳐 원시 인류까지 돌아보았을 때, 한 시대는 분명 그 전 시대에 비해 발전하였다. 구석기시대 불을 발견한 사람들보다는 신석기시대 농사를 지은 사람들이 발전했다. 고대 청동기 문명에서 청동검을 들고 전쟁을 하던 사람들보다는 중세 철기 문명에서 철검, 철 갑옷을 입고 전쟁하는 사람들이 더 발전했다.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 살던 사람들보다는 근대 국민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더 발전했다. 물론, 이들보다 현대에 사는 우리가 더 발전했다.


더 발전한 시대가 그 전 시대보다 정신적, 존재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은 아니다. 흔히들 현대의 인간이 과거 '미개한' 시대로 돌아간다면 그 천재성으로 세계를 변혁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시대란 그 시대의 테마,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고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발전은 그 시대에 발전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함께 발전해 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령, 로켓 공학이 아무리 발전해서 지구 밖으로 어떤 물건이든 쏴서 올릴 수 있다 한들 그것만으로 위성을 띄울 수는 없다. 위성을 띄우기 위해서는 우선 위성을 제작하기 위해 전자공학과 정밀공학이 필요하다. 게다가 띄운 위성과 연결하기 위해 통신공학까지 접목시켜야 하며 마지막으로 상대성 이론을 바탕으로 시간 오차까지 해결해야 한다.


인간이 항상 발전만 한 것은 아니다. 발전과 발전 사이에는 거의 대부분 후퇴가 섞여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은 번영을 누리다 '바다 민족'이라는 불분명한 집단에 의해 초토화되어 근 300년 후 아테네와 스파르타 같은 도시국가가 등장하기까지의 기록이 없다. 고대 중국 진시황이 자행한 분서갱유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쳐오며 수많은 사상가들이 낳은 서적들을 불태웠다. 후한 말, 조조가 위나라의 왕을 자처하고 그 아들 조비가 황위를 찬탈하여 위 황제로 등극한 그 순간은 유학적 관점에서 역사의 후퇴였다.


하지만 바다 민족에 의해 멸망한 미케네 문명을 딛고 일어선 고대 그리스는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사상을 남겼으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역사에 영원히 그 이름을 남길 철학자를 배출하였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시황제의 정통성과 권위를 확립하여 그를 기반으로 전 국토의 도량형을 통일하고 법가적 사상을 바탕으로 율령제, 관료제를 시행하였다. 이는 그전까지는 없었던 규율에 의한 통치행위였으며 국가적 역량이 한곳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황위를 찬탈한 위나라의 조비에 의해 형성된 위나라에서 시행한 구품관인법은 과거제도로 발전하여 동아시아 세계의 관료제를 정착시켰다.


그러니까 발전과 후퇴가 반복되고 서로 얽히고설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한다. 어느 구간만 보면 한없이 후퇴하는 듯하고, 발전 없이 정체되어있는 구간도 보인다. 그러나 전체를 보면 분명 방향성을 가진다. 거대한 시각에서 인간은 발전하고 있다.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발전을 해내야 흐르는 문명의 시간에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 영국의 적기 조례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이 한창 태동하던 19세기 중반, 당시 자동차 산업이 가장 발전했던 영국에서는 ‘적기 조례’라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악법이 탄생한다. 당시 운행되던 증기자동차의 운행을 제한한 법인데, 1865년 제정된 최초의 적기 조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최고 속도는 교외에서는 시속 4마일(6 km/h), 시가지에서는 시속 2마일(3 km/h)로 제한한다.

2. 1대의 자동차에는 3명의 운전수(운전수, 기관원, 기수)가 필요하고, 그중 기수는 붉은 깃발이나 붉은 등을 갖고 자동차의 55 m 앞을 마차로 달리면서 선도해야 한다. 기수는 보속을 유지하며 기수나 말에게 자동차의 접근을 예고한다.


당시로서도 30km/h 이상을 달릴 수 있던 증기자동차의 시속을 제한하고 그 앞에 사람이 뛰어다녀야 한다니, 지금 보면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법이 산업혁명의 영국에서 탄생했는가 의문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법 제정의 원인은 다름 아닌 마부 업자들의 로비였다. 당시 운송업의 주류를 이루었던 마차를 끄는 마부들이 증기자동차의 등장으로 인해 대거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을 우려, 그를 막기 위한 법의 제정을 영국 의회에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다.


이 법으로 인해 영국 내의 자동차 수요는 다른 서구 국가, 특히 미국이나 독일에 비해 매우 뒤처지게 되었고 자연스레 영국 자동차 산업의 후퇴를 불러왔다. 우리가 유명한 양산 자동차 브랜드로 독일 자동차 브랜드인 벤츠, BMW를 주로 거론하고 영국의 애스터 마틴, 롤스로이스를 꺼내지 않는 이유의 기저에는 1865년의 적기 조례가 깔려있을 정도로 근 200년이 지난 현재까지 강력한 영향을 남기게 되었다. 참고로 그 애스터 마틴은 현재 이탈리아 사모펀드가 보유하고 있으며, 롤스로이스는 1998년에 BMW로 인수되었다.


영국은 시대의 변화, 특히 인류 문명의 근간 패러다임의 변화 중 가장 중요한 산업혁명을 이끌었지만 같은 시기, 자동차 산업에서 만큼은 그 선두적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고 되려 후퇴하는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상기한 타이밍의 중요성이다. 모든 사람, 모든 국가가 같은 기울기를 가진 나선형의 역사를 써 내려가지 않는다. 시대가 변하는 그 시점에서 누군가는 순간의 변곡점을 찾지 못해 상승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변화하는 시대의 탄력을 받아 폭발적인 힘으로 변곡점을 만들어내 엄청난 기울기를 가진 상승 곡선을 만들어낸다. 영국은 변곡점을 찾지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상승하는 곡선을 억지로 끌어내렸고, 미국과 독일은 그를 기회삼아 자동차 산업 자체를 바꿔놓아 지금까지도 상승하는 곡선을 만들었다. 이것이 타이밍이 중요한 이유다. 타이밍을 정확하게 집어내 탄력을 받는 것.


또 다른 예로 세도정치기 조선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대항해시대로 시작하여 제국주의로 이어지던 16~18세기 격동의 세계사에서 조선은 그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불과했다. 조선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11세기에 태동한 성리학을 기초로 하고 있었고 임진왜란과 정묘,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전쟁의 소용돌이를 겨우 벗어난 조선에게 그들을 침략했던 일본과 청나라는 여전히 오랑캐일 뿐이었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불러온 중흥군주라는 정조조차도 문체반정을 일으킬 정도로 해외 문물에 대해 그다지 우호적인 입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변화의 바람에 조선에도 상인들을 중심으로 근대적 경제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지만, 전제 군주가 다스리는 왕국에서 민간, 그것도 천하게 여겨지던 상인에 의한 수동적 개혁은 그 세를 불리기 어려웠다.


그렇게 조선은 18세기 세도정치기에 들어섰다. 당파싸움, 가문 싸움에 조선의 조정은 그 전보다 더욱 크게 불어오는 격동의 바람에 대응하지 못했다. 일본은 페리 제독에 의해 강제로 개항당하고 청나라는 아편전쟁으로 침탈당하는 그 상황에서 조선 조정은 해묵은 사회 문제였던 삼정의 문란조차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못했다. 흥선대원군의 개혁은 그 효과를 보이는 듯 하였으나 이내 척화비로 귀결되어 개항의 물결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패착이 되고 말았다. 반대로 일본은 기존에 계속 이루어지던 네덜란드와의 교역으로 만들어낸 기초 체력과 페리 제독의 강제 개항을 발판 삼아 세계적인 열강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하였고, 자연스레 제국주의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집어삼킨 행동은 비록 당시 시대가 제국주의 시대였다 하더라도 정당성이 없으며, 잘못되고 비난받아야 마땅한 행동이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비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잘못을 따진 이후에 결국 미래를 향해야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개인역량강화를 강조하여 신민회를 창설, 실력양성운동을 펼친 것도 이것의 한 맥락이다. 과거를 아무리 안타까워해도 돌아오지 않으며, 흘러간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해도 소용없다. 결국 미래를 위해 발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역사가 가르쳐준 미래를 바탕으로 발전을 준비하고 같은 결말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 각자의 생존을 위해 시대의 발판을 타야 한다. 국가의 생존을 결정하는 건 발전이며 발전의 타이밍, 발전의 골든타임을 정확히 판단하여 그 시대의 탄력을 받아 상승곡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왜 발전을 주제로 놓고 사람의 발전이 아니라 역사의, 국가의 발전을 서술했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대체로 인간의 발전과 국가의 발전은 대동소이하다. 특히 생존에 대해서는 매우 비슷하다.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등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연구와 투자를 진행하는 것처럼, 인간의 발전도 각자 살아온 방식과 방향에 따라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노력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가 선택하는 모든 결정의 과정을 사실 우리 한 명 한 명의 인간들도 진행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이것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흥망성쇠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가장 흥할 때 겪는 일들은 사실 인간도 마찬가지로 겪는다. 경제적으로 풍부할 때는 여유롭게 살 수 있어 문화가 발전한다. 사람이라면 취미를 가꾼다. 살기가 팍팍하다면 당장 문화부터 각박해진다. 사람이라면 예민해지고 취미보다는 휴식을 찾는다.


그렇기에 인간의 발전에 있어서 국가의 발전을 공부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한 개인의 일대기를 읽고 그의 흥망성쇠를 확인해서 그가 잘했던 것은 배우고 못했던 것은 따르지 않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람의 삶은 너무나 다양해서 나의 삶을 그대로 대입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마다 성향도 너무나 다르다. 내향적인 사람, 외향적인 사람, 직관적인 사람, 계획적인 사람. 각각이 삶을 가꾸고 발전하고 후퇴하는 이유, 방식이 너무나 다르다. 위인전이나 악인전을 참고하기는 좋으나 그것을 교과서 삼아 기초로 삼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국가의 역사는 큰 틀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국가가 비슷한 이유로 흥하고 비슷한 이유로 망한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가 상업을 장려해서 활성화된 경제로 군대를 키워 흥하다가 어느 순간 돈을 벌어다주던 경제적 수단이 막히고 내분이 일어나고 배신자가 발생해서 다른 국가에 침략을 받아 멸망한다. 그렇기에 국가의 역사는 발전을 위한 매우 훌륭한 교과서 역할을 해줄 수 있다. 특히 같은 시대에 존재했던 국가들을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남들과 비교하지 마세요, 자신의 삶을 사세요, 당신은 멋집니다.'라는 달콤한 말들이 많이 떠돈다. 저 말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맞는 말이다. 비교의 대상이 대체로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기에 그로부터 오는 자존감의 하락이 발전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하지만 발전의 입장에서 남들과 비교해야 하는 순간은 분명 존재한다. 다른 이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어떤 수준까지 올라왔는지 확인하며 자기 나름의 발전 타이밍을 엿보는 것이다. 거대한 변혁의 순간을 놓치고 남들이 그 순간을 밟고 올라가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면 그때 생긴 격차를 메꾸기란 정말 어렵다. 시대의 흐름을 보고, 파악하며 언제 어떤 순간에 발판에 폭발적인 힘을 주어 뛰어오를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서 비교는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나아가는 방식을 선택하는 건 나의 역할이다. 발전에는 후퇴가 반드시 동반된다는 현실을 깨닫고 우리는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시대의 흐름을 분석해 뛰어오를 순간을 찾아야 한다. 발전하고 싶지 않다면 현실에 안주해도 상관없다. 제자리에 앉아 그저 흘러가는 세월에 몸을 맡기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식탁에 앉아 차려진 식사를 먹어도 된다. 인간 사회에 정이 남아있고 세상이 각박하지 않다면 그 또한 유리한 생존 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 뿐이라는 사실은 항상 마음속에 품고 살아야 한다. 발전하지 못한 국가는 끝내 발전한 국가에게 잡아먹혔다는 사실을 품고 살아야 한다. 발전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생존을 위한 도구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벚꽃에 대하여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