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카베 방위대의 밤',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돼지발굽 대작전
넷플릭스다, 웨이브다 OTT 춘추전국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예전만큼 영화관에 자주 방문하지는 않는다. 영화 가격이 그만큼 오른 까닭도 있고 극장까지 가서 보기보다는 VOD를 시청하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냥 모든 영화를 VOD로 시청하지는 않고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안 보면 평생 후회한다.' 싶은 영화는 반드시 영화관에 가서 보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 작품들은 보통 2회 차 이상 관람한다. 최근 개봉했던 '탑건:매버릭'은 IMAX로 한번, 4DX로 한번 보고 대구 신세계 백화점까지 가서 돌비 시네마로 한번 더, 총 3번 관람하기도 했다.
영화 장르를 가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장르에 따라 이 영화를 어디서 볼 것인가는 구분하는 듯싶다. 역시 로맨스 영화나 감성이 듬뿍 담겨있는 영화는 집에서 누워서 편하게 보는 게 제일이기 때문이다. 상술한 '이 영화는 영화관에서 안 보면 평생 후회한다.'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영화는 대개 압도적 스케일을 바탕으로 화려한 색감과 귀를 때리는 사운드로 무장한 액션 영화인 경우가 많기도 하고.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액션 영화만 영화관에서 보는 건 아니고 그냥 보고 싶은 영화가 마침 영화관에 있으면 그냥 가는 편이다. 다만, 공포영화를 제외하고는.
공포영화는 정말 싫어한다. 공포영화가 아니더라도 공포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법인 '점프 스케어', 흔히들 말하는 갑툭튀가 등장하는 영화는 잘 안 보게 된다. 영화관에서도, 집에서도 공포영화는 안 본다. 일단 공포영화는 그 장르 자체가 스트레스다. 등장하는 악역이 귀신이던 살인마던 상관없이 그 천천히 다가오는 음습한 공포감에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손끝 발끝이 차가워지고 천천히 닭살이 돋아가며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일어서는 그 느낌에서 오는 스트레스. 영화가 즐겁고 재미있고 여운을 가지려고 보는 건데 굳이 시간 들여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다.
또 다른 이유로는 트라우마가 있겠다. 트라우마가 너무 거창한 표현이라면 안 좋은 기억쯤으로 해두자.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수련회 따위에서는 보통 밤에 공포영화를 틀어줬다. 그 어린 시절의 나는 당연히 공포영화는 무서웠고 싫어했기에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그것도 아직은 '남자다움'을 강조하던 분위기가 남아있는 그 시대 분위기에 나름 컸다고 주장하는 한 명의 남자 초등학생이 공포영화를 어찌 무섭다며 피할 수 있었겠는가. 공포영화를 보면서 무서워하는 것보다 괜히 무섭다고 피했다가 주변 친구들로부터 겁쟁이 소리를 듣는 게 더 싫었던 것 같다.
몇몇 공포영화는 무서운 게 나올 때쯤이면 눈을 질끈 감고 두 귀를 막고 기다리면 태연하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언젠가 수련회에서 틀어줬던 '주온'은 그러지 못했다. 당시 유행하던 '주온'은 일본에서 만든 유명한 공포영화로 어린아이가 창백한 표정으로 앞을 응시하는 포스터로 유명하다. 이 영화의 특징은 분위기에 있다. 다른 공포영화들처럼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오기보다는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공포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그 어린 시절의 나는 어땠겠는가. 차마 눈을 감고 귀를 막지도 못하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그 분위기를 끝까지 다 경험한 나는 그날로 며칠밤을 편안히 잘 수 없었다. 혹시나 내 이불속에도 귀신이 들어있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공포영화를 싫어한다. 어린 시절 잠을 못 자던 안 좋은 기억과 공포영화가 가져다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가장 싫어하는 장르는 공포. 반대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는 역시 역사 기반 시대극이다. 역사라는 주제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며 특히 시대극이 내 마음을 끄는 이유는 바로 그 시대를 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저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역사 속 한 순간을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를 통해 마치 그때 그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 경험시켜주기 때문이다. 최근에 봤던 영화 중에서는 '미드웨이'가 가장 좋은 경험을 보여주었다. 일본 본토를 습격하는 둘리틀 특공대, 수없이 많이 등장하는 2차 대전기 함정들, 일본 항공모함 3척을 그대로 수장시킨 운명의 5분에서 나타나는 급강하 폭격기의 폭격 모습이 주는 전율이란...
그래서 시대극을 좋아한다. 미드웨이뿐만 아니라 1차 대전기 참호전을 다룬 '저니스 앤드'와 '1917', 전간기 영국의 정책 결정 과정을 보여준 '뮌헨:전쟁의 문턱에서', 2차 대전기 독일 애니그마 해독을 다룬 '이미테이션 게임', 대서양 선단 호송작전의 '그레이 하운드', 삼국통일전쟁을 다룬 '황산벌'이라던지, '안시성' 같은 영화가 가지는 공통점이 시대의 재현이다. 그 영화의 평점이 어땠고, 잘 만든 영화고, 서사는 어떠하니를 떠나서 텍스트로만 알 수 있었던 역사의 순간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정말 만족했다. 그 재현을 보면서 가슴이 웅장 해지는 느낌을 받는 그 카타르시스가 좋았다.
엔딩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당연히 해피엔딩을 좋아하지만 새드엔딩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남는 여운은 새드엔딩 쪽이 더 진하고 오래 남게 된다. 다만 가슴이 뜨거워지는 엔딩을 가진 영화를 선호한다. 상술했던 '탑건:매버릭'이 그랬고, '포드V페라리'가 그랬다. 특히 포드V페라리는 정말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고 생각날 때마다 다시 보게 되는 영화다. 영화 속에서 계속 울려 퍼지는 우렁찬 엔진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두 남자의 우정, 엔진음과 대비되어 잔잔하게 흐르는 주인공의 독백에 마지막 엔딩까지. 가슴이 뜨거워지고 차가워지고를 반복해서 끝내 단단해지는 그 기분은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가슴이 뜨거워지다 못해 감정선을 제대로 자극하는 영화도 물론 좋아한다. 아니, 가장 좋아한다. 신파로 가득하여 여기가 당신이 울 타이밍입니다! 하는 영화가 아니라 정말 그 분위기와 주제에 공감하여 눈물 흘릴 수 있는 영화가 그렇다. '기억에 대하여'에서도 언급한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 제국의 역습'은 그중에서도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다. 20세기를 살아온 어른들과 21세기를 살아갈 아이들에 바치는 듯한 주제의식은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아 내리게 한다. 얼마 전 보고 온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떡잎학교'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분명 재미있게 웃고 미소를 지으며 보고 있는데 계속 눈물이 흘러나오는 경험을 했다. 울어라! 울어라! 하는 영화가 아님에도 자연스레 자극되는 눈물샘에 담긴 여운이 계속 이어지는 그런 경험을.
영화 참 까다롭게 본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변명하나 하자면, 실제로는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다. 원체 즐거움에 대한 역치가 낮고 다들 재밌다 하는 건 나도 재밌게 보고 나오는 편이다. 히어로 영화를 상당히 싫어함에도 친구들과 마블 영화를 보고 나면 재밌다, 다음 편은 언제나 오냐는 등의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겨울왕국? 재밌게 봤고 OST는 지금도 가끔 듣는다. 다만 이 글에서 나누고자 했던 주제가 내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영화였기에 조금 까다로워 보일 수는 있겠다 생각은 한다.
가끔 누군가 내게와 '왜 이렇게 짱구는 못말려를 좋아해요?'라고 묻는다.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이야기를 한다면 끝도 없이 할 수 있고, 누가 내게 '그래서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뭔데?'라고 물으면 당연히 짱구 극장판 중 하나를 이야기할 정도로 좋아한다. 이유야 많지만 굳이 하나를 꼽자면 짱구와 함께 커왔기 때문이리라. 유치원을 다니기 전부터 짱구를 봐왔다. 유치원에 가기 전 아침을 먹으며 짱구를 봤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을 때 짱구를 봤다. 내 기억에 가장 처음 본 영화가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6기 전격! 돼지발굽 대작전'이었다. 나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는데 반해 짱구는 언제가 5살이었으며 짱구를 볼 때면 나도 같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영원히 자라지 않는 동심의 캐릭터로 대부분 피터팬을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게 짱구다. 짱구를 볼 때면 평생을 함께 해온 친구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짱구가 겪는 다양한 사건들이 내 친구가 겪는 일을 보는 것 같아 집중하게 된다. 특히 그 사건이 현실세계의 우리에게 남기는 헌정사라면 더욱 그렇다. 상술한 어른 제국의 역습이나 꽃피는 천하떡잎학교가 그 경우다. 영원히 5살을 살고 있는 짱구가, 현실세계에서 흐르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편지를 읽는 느낌. 이래야 여운이 안남을 수가 있겠고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나와 평생을 함께, 그리고 앞으로 함께 자라 갈 친구가 남기는 영화들인데.
그래서 여운이 남는 영화를 계속해서 만나고 싶다. 끝없이 남아 가슴 한편을 채우고 있는 영화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사랑받고 흥행했으면 좋겠다. 그때 봤던 영화는 이랬는데, 지금 다시 보니 어떻네. 그때 정말 재밌게 봤던 영화가 후속 편이 나온다고? 이걸 어떻게 안 보고 배겨? 이번에 나오는 작품은 어때? 하면서 쌓아가는 기억의 조각들을 나중에 꺼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지금까지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이 그래 왔듯, 또 다른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줄 그런 영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