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에 대하여_

'Honor', Main title of The Pacific

by 레드오렌지

영웅, 설렘과 희망이 공존하며 때로는 조금의 공포스러운 경외감도 묻어있는 그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이 살아온 모든 곳에 존재했고 추앙받고 있다.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한반도 땅에서 추앙받고 있듯 넬슨이라는 영웅은 브리튼 섬에서 여전히 추앙받고 있다. 아마 영웅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 사이에도 존재할 것이다. 다른 무리들과 싸워 영역을 지켜낸 늑대 무리의 대장이라던지, 충실히 가족 구성원을 지켜내는 고릴라 대장이라던지. 다른 범인들은 가지지 못한 비범한 능력과 용기, 재능을 가지고 위대한 업적을 이뤄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영웅이라 부른다.




영웅은 사람들이 닮고 싶어 하는 이상향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이상향은 입에서 입으로, 글에서 글로 퍼져나가는 이야기로서 듣는 사람을 설레게 한다. 누군가는 영웅 적과 싸우는 모습에 경외를 느낀다. 적과 맞서 싸우고, 훌륭한 무술을 바탕으로 엄청난 전과를 올리는 모습을 보며 그 영웅처럼 싸우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영웅이 겪는 고초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동경한다. 역경이 닥쳐와도 꿋꿋이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영웅이 그랬던 것처럼 견뎌내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영웅의 행동 하나하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영웅의 행동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그 영웅이 실존인물인지 가상인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가상 작품에 나오는 영웅이 비록 일개 작가가 꾸며낸, 짓궂게 말하면 거짓된 인물일지라도 상관없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고 영웅을 설계하는 과정에는 분명 그가 살아오면서 들었던 수많은 영웅의 이야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가 만든 영웅은 결국 세상을 살아간 수많은 영웅들의 일화와 만들어진 영웅들의 일화가 섞여 하나의 인격체로 창조된 영웅이다. 비록 가상의 인물일지라도 영웅의 본질을 가지고, 사람들이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행동을 작품 속에서 보여줬다면 그 인물은 영웅으로서 사람들에게 수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충분한 자격이 있다.


그 예로 수없이 많은 히어로 영화들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보고도 분명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이 가진 다크히어로적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위악자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아이언맨을 보고 자란 어린이들은 아이언맨의 고뇌를 보고 영웅 또한 사람이라는 것을 배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를 보고는 우리가 영웅이라 부르는 그 사람들이 정말 영웅인지, 나아가 영웅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는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된다.




침략자에 맞서 조국을 지키는 이들은 현대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그들은 여전히 영웅이라 불리고 있으나 주로 전쟁영웅만을 영웅이라 칭하던 전통적 영웅 개념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흘러온 시간의 깊이만큼, 퍼져간 소문의 넓이만큼 현대사회에는 그만큼의 영웅이 있다. 현대사회는 문명이 태동한 이래로 수없이 깊게 쌓여간 역사의 밀도에 걸맞은 영웅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문명이 발달할수록 빠르게 퍼져나가는 한 개인의 성취는 반대편 지구로 넘어가 영웅의 서사시로 울려 퍼진다.


누군가는 의학을 바탕으로 영웅이 된다. 슈바이처는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19세기 후반에 그는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현재 가봉 땅으로 건너가 그곳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현지인들에게 '오강가(마법사)'라고 불렸으며 195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국경 없는 의사회' 또한 의학 분야의 영웅들이라 할만하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전쟁터로 뛰어가 전상자들을 구호한다. 그 어떤 것도 생명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신념에 그들은 안전한 국가에서 평화롭게 일상을 영위하며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음에도 오지로 뛰어가 자신을 희생한다.


어떤 이는 스포츠를 통해 영웅이 된다. 1980년, 캐나다의 테리 폭스는 골육종으로 인해 절단한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달고 자선 마라톤에 나섰다. 암 연구를 위해 2400만 명의 캐나다 인에게 1인당 1 캐나다 달러를 기부하는 '희망의 마라톤'이었다. 마라톤을 시작한 4월 12일부터 그는 매일 42.195km를 달렸다. 그렇게 그는 9월 1일 폐암으로 마라톤을 중단하기까지 143일간 5,375km를 달렸다. 캐나다인들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의 희생을 지켜본 이들의 성원으로 기금은 이듬해 2월 2,400만 캐나다 달러를 돌파했으며 지금도 캐나다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한 마라톤이 열리고 있다. 테리폭스는 전 인류의 복지 증진을 위한 항암 연구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순수한 의미의 영웅, 사람들이 동경하는 그 영웅이 가진 모습은 대체 무엇인가. 뛰어난 능력? 비범한 기질? 모두 맞는 말이다만 그것만으로는 영웅이 될 수 없다.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겁박하고 핍박한다면 그는 영웅이 아니다. 비범한 기질을 가지고 고작 도박, 노름이나 한다면 그는 영웅이 아니다. 그 능력들 사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영웅이 되기 위해 끼워져야 하는 한 가지 능력, 세상을 살아오고 사람들로부터 추앙받은 그 영웅들이 가졌던 공통점은 바로 희생과 구호다.


희생, 영웅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비로소 영웅이 된다. 식상한가? 희생이라는 키워드가 식상해진 이유는 이미 많은 영화에서 영웅이란 희생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영웅과 희생이라는 단어가 멀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희생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목숨을 내놓는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포기한다 같은 행위도 물론 희생이지만 좀 더 의미를 확장하고 싶다. 영웅들이 하는 희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숭고한 개념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는 것이 희생이다. 지켜지는 이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고된 곳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희생이다. 지켜지는 이들을 위해 고된 곳에서 그들을 지키기 위한 능력을 키우는 것조차 희생이다. 백혈병으로 인해 조혈모세포가 필요한 이들에게 흔쾌히 자신의 시간을 기부하여 검사를 받고, 피를 뽑는 과정도 당연히 희생이다. 희생이란 무거운 단어가 아니다. 모두가 희생할 수 있으며, 희생하고 있다. 숭고하지만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것, 깊고도 넓은 그것이 희생이다.


구호, 영웅은 누군가를 위기에서 구함으로써 비로소 영웅이 된다.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으로 저 멀리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을 구하게 된다면 그것이 구호다. 영웅의 행동에 감화된 사람이 또 다른 영웅이 되어 다른 사람을 구호한다면 그 또한 영웅적 행동이다. 다른 사람의 조혈모세포 기부 후기를 읽고 자신도 조혈모세포 기부 신청을 하게 된다던지, 작은 돈이나마 꾸준히 기부하여 굶주린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전해줄 수 있는 그 모든 행동이 영웅의 행동이다.


그렇기에 세상에는, 적어도 현대에 혼자만의 영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웅은 혼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영웅은 그 이전에 존재했던 수많은 영웅들의 행동에 영향을 받아 영웅이 되었다. 또한 그는 그를 바라보고 동경하는 이들 덕분에 영웅으로 불릴 수 있었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영웅들이란 그렇다. 그렇기에 지금 시대에 고전적 영웅은 필요하지 않다. 한 명의 전쟁 영웅, 한 명의 특별한 영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영웅과 그 지지자는 서로 필요충분조건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서로가 필연이며 서로가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영웅, 그로부터 영향을 받아 또 다른 희생과 구호를 보여주는 사람 또한 영웅이다. 영웅담이 인터넷을 넘어 퍼져나가고 수없이 많이 구전되는 시대의 영웅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영웅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영웅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을 구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영웅의 숫자와는 관계없이 영웅 그 자체가 가진 속성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삶의 일부분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사람을 구함으로서 자신의 삶을 완성하였기에 그들의 업적은 여전히 칭송받고 있고, 앞으로도 칭송받을 것이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영웅들이 세상에 등장할 것이며 그들 또한 칭송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아니, 더 이상 영웅이 영웅으로 불리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그 희생과 구호가 너무나 일상이 되어버려 영웅적 행동이 당연해진 그런 세상을 꿈꾼다. 그렇게 앞으로 등장할 수많은 영웅들의 활약으로 더 이상 영웅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 희망한다. 이것이 이것이 지나간 영웅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며, 다가올 영웅들에게 보내고 싶은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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