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ledge never sleeps', FFXIV
태양이 천구의 사분의 삼을 지나 서편으로 내려가려 할 즈음, 하늘은 붉은색 옷을 입고 떠나며 돌아올 태양에게 그날의 마지막 해풍을 보낸다. 바람은 천천히 그 방향을 바꾸어 바다를 향해 불어 가고 하늘은 붉은색 옷의 끝자락과 함께 모습을 감춘다. 그렇게 어둠이 찾아온다. 세상을 가두었던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거대한 구멍이 하늘을 향해 열린다. 시시각각 변하는 달에 가려진 별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 수천, 수억 년 전 태어난 빛들이 눈빛에 맺힌다. 빛과 함께 울고 빛과 함께 웃는다. 바뀌어버린 세상의 분위기를 빛이 내린 푸르른 담요로 덮는다.
밤이 찾아오면 세상은 정반대의 색깔을 갖는다. 하늘에 해가 떠있는 낮 동안 세상을 돌아다니며 시끌벅적, 풍성한 소리를 내밀었던 사람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고요함이 남는다. 인간이 차지했던 낮의 세상은 이제 야행성 동물들이 차지하며 그들은 달빛을 받아 세상을 유랑한다. 올빼미가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하며 곤충들도 고개를 들고 나무 수액을 찾아 헤맨다. 해가 떠있는 동안에 한산하던 낮의 번화가는 밤이 되면 사람들로 붐비는 불야성이 되기도 한다. 이곳에는 야행성 동물들이 발 붙일 곳은 없다. 밤의 끝과 낮의 시작까지 그곳의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 그렇게 세상을 구성하던 소란함과 고요함은 밤이 찾아오면 정반대로 뒤집혀 다시 세상을 구성한다.
태양을 바라보고 태양이 내린 빛의 축복을 나침반 삼아 문명을 일궈온 우리 인간에게 밤은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밤이 오면 문명을 일구는 기쁨에서 잠시 벗어나야 하고 빛없는 차가운 공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다시 태양이 찾아올 때까지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밤은 추위를 동반한다. 낮동안 뜨겁게 달궈졌던 땅바닥은 해가 지구 반대편을 지나는 12시간 동안 천천히 식는다. 비록 보름달이 뜬 은은한 달밤일지라도 태양이 빈자리를 메꿔줄 수는 없다. 따라서 밤은 인간에게 결핍이다. 찬란한 빛을 잃게 된 결핍.
그런 결핍 속에서 낮에는 볼 수 없던 것들이 드러난다. 밤을 통해 찾아오는 결핍은, 그 자체로 새로운 세상을 향한 구멍이자 통로다. 이성과 빛이 지배하던 낮에는 보지 못한 감성과 어둠이 찾아온다. 낮이 이성의 영역이라면 밤은 감성의 영역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이성과 감성은 하루를 구성하는 낮과 밤에도 그 존재감을 발한다. 밤이 찾아오면 뭔지 모를 그 감성에 젖어든다. 공기 중을 떠다니던 수증기가 찬 공기에 나뭇잎 위에 자리를 잡고 이슬을 맺는 것처럼, 낮 동안 뜨겁게 타올랐던 우리의 이성은 밤의 차가운 공기와 함께 이슬을 맺어 감성에게 자리를 잠시 비켜주게 된다.
그런 감성의 세상에는 별과 달, 은하수가 함께한다. 이글거리는 빛을 발하던 태양이 하늘을 빛으로 가득 채웠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다양한 위상과 함께 황백색 빛을 은은히 발하는 달, 수없이 많이 뿌려진 별의 조각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뿌옇게 흩어진 은하수. 어쩌면 우주의 탄생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어났을 저 멀리 떨어진 별과 은하의 작고 희미한 불빛까지 나타난다. 그렇게 밤은 빛난다. 밤은 우주가 남긴, 아니 우주가 여전히 발하는 은은한 빛을 통해 빛난다.
그렇게 지구가 제자리를 한 바퀴 돌면 다시 이성의 아침이 온다. 다시 태양은 뜨거운 빛을 발하고 세상은 사람들이 문명을 일구는 소리로 북적인다. 시끄러웠던 불야성은 다시 조용해지고 밤을 지배했던 야행성 동물들은 잠에 든다. 하늘을 수놓았던 달과 별, 은하수는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는 푸르른 하늘과 구름이 자리한다. 세상에 자리 잡았던 거대한 결핍은 다시 아물고 밤은 잠시 휴식에 들어간다. 또다시 찬란한 푸른 어둠을 선사하기 위해 짧은 낮잠에 들어간다.
그렇기에 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밤은 다가올 새벽을 위해 인내하는 시간이 아니다. 밤은 그 자체로 밤이다. 이성에 지친 우리에게 감성의 쉼터를 제공하는 달빛의 시대일 뿐이다. 다가올 새벽을 위해, 다가올 햇살을 위해 이토록 찬란한 밤을 그저 인내하기에 달빛은 너무나 은은하고 아름답다. 누군가에게는 결핍이자 누군가에게는 치유인 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바래면 신화가 된다는 이병주 작가의 말처럼, 그 밤은 신화가 만들어지는 고귀한 시간이며 시대의 휴식터다.
그런 휴식터가 가진 색깔이란 미묘하다. 무지개 빛 찬란함을 가지고 형형색색 아름다운 통상의 색과는 거리가 멀다. 밤은 그저 사람의 온기가 모여 비로소 그 색을 갖고 은은함을 발할 뿐이다. 그렇게 밤의 온도가, 밤을 가꾸는 사람의 온도가 색깔을 만들어낸다. 타오르는 햇빛에 시뻘겋게 달궈졌을 수도, 한없이 차가운 절대 영도에 노출되어 끝없이 창백할 수도.
짧다면 짧은 삶을 살아오면서 만났던 수많은 밤은 보통 아무 색깔 없는 무채색의 밤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노을처럼 붉게 빛나는, 웃고 있던 밤이 존재했다. 한없이 기뻐 그 밤을 이내 잠들 수 없었던, 점점 차가워지는 공기를 이 벅찬 마음으로 데웠던 아름다운 밤이 있었다. 이 마음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었지만 모두가 잠든 시각에 할 수 없이 나 혼자 기쁨을 온전히 만끽했던 그런 밤이 있었다. 이성이 사라진 자리를 온전히 따뜻한 감성으로 가득 채워 정신이 몽롱해질 것 같던 그런 밤이 있었다.
한없이 창백한, 울고 있던 밤도 존재했다. 응결되는 이슬의 온도보다 마음의 온도가 조금 더 낮아 이내 이슬을 서리로 만들어버렸던 그런 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 이불속에서 혼자 차가움을 감내해야 했던 그런 밤이 있었다. 뒤바뀐 세상의 분위기를 온전히 끌어안자 들이닥친 그 고요함이 온몸의 세포 세포를 타고 들어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던 밤이 있었다. 그렇게 차가워진 마음이 더 이상 뛰지 않아 잠을 청할 수 없었던, 세상이 다시 따뜻해져 그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낼 때까지 뜬눈으로 지새우던 밤이 있었다.
오늘 밤은 어떤 색깔이 감성에 섞여 창문을 두드릴까, 붉은색일까, 푸른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