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seille', Uncharted Waters Online
짭조름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감돈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냄새를 따라가면 푸른색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가 나타난다. 부둣가 볼라드를 따라 갈매기 무리가 하늘을 유영하며 사람들의 손에 들린 과자를 호시탐탐 노리고, 땅바닥을 열심히 기어 다니는 갯강구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 반대편으로 부리나케 도망간다. 가장 가까이 위치한 테트라포드에 수없이 많은 따개비 무리가 다닥다닥 붙어있으며 그 근처 콘크리트에 낚시꾼들이 진을 치고 앉아 물고기와 진득하게 시간 싸움을 겨루고 있다. 출항하는 어선들은 곧 멀리 수평선 가까이 놓인 구름에 겹쳐져 희미한 회색 그림자만을 남기고 떠나며, 해가 뉘역 거릴 즈음에 돌아오는 거센 엔진 소리는 그날의 만선에 바치는 축배가 된다.
인간에게 바다는 미지의 장소였다. 인류 문명의 신화에서 등장하는 그 출신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대개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왔다'라고 표현되었으며 떠나는 이들이 '저 먼바다로 떠나갔다'는 것은 대개 그 인물의 죽음을 의미했다. 그렇게 바다는 '모르는 곳'의 상징이었다. 폭풍이 몰아치고 끝없는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표현하는 수단이었고 그만큼 개척되지 않은, 미지의 공간이었다. 바다는 공포의 공간이기도 했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저 수평선 너머로 모험을 떠나는 것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바다에 대한 공포는 그곳으로 함부로 떠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괴물들을 탄생시켰다. 크라켄과 레비아탄이 살고 있는 바다에 함부로 접근했다가는 그들의 먹이가 될 뿐이라는 소문이 퍼졌고, 세이렌이 자리 잡고 있다는 섬 근처는 항해가 금기시되었다.
바다는 인류 문명의 변두리였다. 동양에서는 인간이 사는 땅을 하늘이 내린 천자가 다스린다고 보았고 반대로 바다는 용왕이 다스린다고 여겼다. 서양에서는 하늘은 제우스가, 바다는 포세이돈이 다스리며 자연스럽게 제우스가 신들 중 가장 강하고 권위가 높은 것으로 우대했다. 인간이 밟고 사는 것은 바다가 아닌 땅이었기에, 고대 그리스나 페니키아, 폴리네시아인 정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바다는 그저 어부들이 고기를 낚는 곳, 혹은 멀리 떨어진 곳을 배로 건너가기 위한 배경 정도였을 뿐 그 누구도 바다를 그 스스로의 삶의 터전이라 여기지 않았다.
지중해를 무대로 삼았던 고대 그리스와 태평양 남방해역을 터전 삼은 폴리네시아 인들의 삶의 터전은 분명 바다였지만 그럼에도 인류의 대부분은 심리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바다와는 먼 삶을 살았다. 바다를 터전으로 잡아 번성했던 고대 그리스조차도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바다 민족'에 의해 그 기록이 완전히 소각되어버릴 지경이었다. 8세기 무렵 등장한 바이킹은 그야말로 유럽 대륙에 재앙이었다. 잉글랜드와 이베리아 반도는 물론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인근까지 침략하며 그 위세를 떨쳤고 자연스레 그들의 이름은 공포와 용맹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한 바다의 이미지는 15세기 무렵, 유럽에 인도산 향신료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특히 인도산 후추는 그 값어치가 천정부지로 오를 만큼 귀했고 자연스레 인도와 유럽 간 주요 교역품이 되고야 만다. 당시 이 무역을 지배했던 국가는 오스만 제국으로, 그들은 동지중해의 패권을 쥐어 잡고 인도양-홍해로 이어지는 후추 교역료를 완전히 틀어쥐었다. 자연스레 유럽 대륙으로 들어오는 모든 후추가 이들 오스만 제국의 손을 거쳐 들어오게 되었다. 이탈리아 반도의 국가들과 오스만의 후추 무역 신경전이 계속되던 무렵, 후추 무역의 변방에 위치했던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이 무역에 끼어들기 위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당시 레콩키스타를 통해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들의 땅은 농사를 짓기에는 꽤 척박했기에, 국가를 부흥시키기 위하여 상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 인도양-홍해 후추 무역로는 이들에게 큰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못했다. 이들은 그리하여 인도로 향하는 다른 길을 찾게 된다. 포르투갈의 인판테 동 엔히크 왕자가 보낸 탐험대가 그 신호탄이었다. 그는 15세기 초반부터 아프리카 서안으로 탐험대를 보내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의 몇 배는 더 큰 아프리카 대륙을 우회한다면 인도로 가는 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가 파견 보낸 탐험대는 아프리카 서안을 점점 개척해 나가며 정박하는 곳 마다 탐험 거점을 세웠다. 우리나라 해군의 참수리급 고속정 정도의 배수량을 가진 나무 목선을 타고 한 달 넘게 항해를 떠난 그들은 매 항해마다 목숨을 걸어야만 했고 그렇게 1488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아프리카 서안 끝에서 희망봉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희망봉 발견은 포르투갈의 해상 상업 왕국 건설의 큰 기점이 되었다. 비로소 아프리카 대륙을 우회하여 인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포르투갈을 계속해서 항로를 확장했고, 1497년 5월 20일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가 이끈 선단이 인도 캘리컷에 상륙하면서 그 결실을 맺었다. 비로소 오스만 제국이 장악하던 후추 무역은 포르투갈이 발견한 신항로라는 경쟁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세계정세를 대격변을 맞이했다. 포르투갈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에서는 해상무역에 참여하기 위해 너도나도 선단을 꾸려 인도로 향하였고 그렇게 대항해시대가 개막하였다. 그때부터 바다는 비로소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인간 활동의 무대가 되었다.
유럽 각국에서는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선단을 꾸려 출항시켰다. 또한 자국의 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해군을 육성했고 대포로 무장한 전열함을 계속해서 건조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해적이 되어 교역을 마치고 돌아오는 상선을 공격해 전리품을 강탈하기도 했다. 어떤 해적은 정부에게 허가를 받고 적국의 선박만을 노략질하는 사략선을 꾸렸다. 대서양은 해군과 해적, 도망치는 상선단과 약탈하려는 해적 간의 싸움으로 가득 찼고 각국의 항구는 선원을 모집하기 위한 모병원들로 붐볐다. 비록 고되고 힘든 일이었지만 한번 항해에 성공하면 엄청난 부를 맛볼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모험을 떠났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항구에서 건조되는 범선, 교대로 교역품을 실어 올리며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 바다에서 조우한 적에게 경고 없이 발사되는 대포알과, 끝내 서로의 배에 올라 백병전을 펼치는 모습을 널리 퍼트리는 주점 선원들의 이야기가 어찌 당시 젊은이들의 마음을 울리지 않았겠는가. 물론 대항해시대가 좋은 점만 있지는 않았다. 대항해시대를 통해 발전한 유럽 문명은 노예무역이나 제국주의 등 인륜을 어기는 행태를 많이 행하였다. 또한 낭만으로 가득 찬 줄 알았던 현실 속 선상 생활은 시궁창이었다. 식사라고는 소금에 절어 물에 헹구지 않으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염장 고기와 씹으면 이빨이 다 깨지는 쉽 비스킷이 전부였고, 먹을 수 있는 물이라고는 썩고 고인 물밖에 없어 언제 올지 모르는 비를 기다려야만 하는 시궁창.
그럼에도 그 시대에 모험을 떠났던 이들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남아있고 그때를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이 많이 등장했으며,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여전히 그 시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는 대항해시대는 분명 낭만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낭만은 지금 이 순간까지 이어지고 있다. 해상무역이 매우 보편화되고 이제 발견할 곳도 남아있지 않은 현대이지만 바다는 여전히 낭만의 대상이다. 여전히 바다는 평소에 느껴볼 수 없던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이고 때 묻은 일상의 지루함을 색다른 냄새와 습기로 씻겨주는 공간이며, 비록 인류는 탐험을 마쳤으나 인류가 아닌 새로운 개인, 한 명의 인간에게는 아직까지 무궁무진한 탐험을 제공하는 모험의 세상이다.
그토록 낭만으로 가득 찬 바다가 나에게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기억하고 있는 첫 번째 바다는 제주도의 바다이다. 가족여행으로 방문한 제주도에서 많은 곳을 방문했었다. 우도로 가는 배를 타고 파도를 바라보며 신났던 기억, 파도가 갑판에 넘쳐서 홀딱 젖었지만 그럼에도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제주도에서 탔던 관광잠수함에서는 처음에 꽤나 공포를 느꼈던 것 같다. 천천히 수면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창문으로 적나라하게 보이고, 그 주변을 돌아다니는 물고기와 산호초들의 향연에 그런 공포감은 금세 사라졌었다. 그 이후로도 제주도는 꽤 자주 방문했다. 언젠가는 고깃배를 타고 나가 낚시를 한 적도 있었다. 물고기를 낚는데 까지는 성공을 했으나 그 가시 박힌 고기를 차마 맨손으로 잡지 못해 겨우 풀어줬던 겁쟁이가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렇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을왕리도 등장한다. 인천에 있는 을왕리 해수욕장은 서해에 위치한 전국적으로 꽤 유명한 해수욕장이다. 서해의 바다인지라 역시 뻘이 짙게 깔려있고 조수간만의 차 또한 커서 아침의 해안선과 저녁의 해안선이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을왕리는 우리 가족이 주로 방문하던 해수욕장이었다. 물이 그다지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해수욕장 자체가 넓어 뛰놀기에 적합했고 수심이 꽤 얕아 우리 같은 꼬맹이들이 물장구치며 놀기에 아주 좋았기 때문이다. 을왕리에서 열심히 놀다가 안경을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안경을 찾으려고 한없이 바닷물이 씻겨간 바닥을 뒤져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갯벌에서 불쑥 튀어나온 파이프에 무릎을 긁혀 피를 철철 흘리며 집에 돌아온 적도 있다. 당시 남은 흉터는 아직까지 무릎에 자리 잡고 있다.
이후 대학을 나오면서 바다는 단순히 내가 놀러 가는 곳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내 삶의 터전이 되고야 말았다. 대학에 다니는 4년간은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게 바다였고 아침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갈매기를 벗 삼아 뛰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바다가 내게 더 이상 그다지 많은 감흥을 주는 장소가 아니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바다수영을 하기 위해 바닷물에 풍덩 몸을 담갔고, 동아리 활동 차 윈드서핑을 타며 매우 차가운 겨울 바닷물에 풍덩 빠져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나는 바다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바다가 익숙해질 무렵 나는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2019년에는 아이슬란드, 2020년에는 서유럽이 여행지였다.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바다들은 잠시 메말라있던 바다에 대한 나의 감흥을 다시 되살려주는데 충분했다. 아이슬란드 서부 스나이스펠스 반도에서 바라본 북극해는 고요함의 극치였다. 바다 건너에 위치한 것이 그저 그린란드, 북극뿐인 그곳의 바다는 처량하게, 그러나 고요히 그 장엄함을 발했으며 그 자체로 위대한 서사시의 배경이 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눈으로 덮인 바닷가에 차고 올라오는 파도가 쌓여있던 눈을 녹이고 바스러지듯 사라진 눈 결정들이 다시 북극해의 일부분으로 돌아가던 그곳의 풍경은 뇌리에서 잊히지를 않는다.
서유럽에서 본 바다는 북극해와는 정 반대의 분위기였다. 내가 방문한 마르세유는 지중해를 접한 프랑스 제2의 도시로 우리나라로 따지면 부산에 해당하는 곳이다. 책과 영상으로만 접했던 지중해를 눈으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설렘을 가지고 마르세유를 방문했었다. 그렇게 만난 지중해는 정말 아름다웠다. 지중해 특유의 따뜻한 해양성 기후는 겨울이었음에도 사람들이 밖에 나와 휴양을 즐길 수 있게 했다. 마르세유의 그 여유로운 일상에 나 또한 물들어, 지중해를 배경으로 둔 성곽에 올라 그에 마련된 벤치에 누워 천천히 그 정취를 만끽했다. 조용히 흘러갔다 흘러나오는 바닷물, 그리고 그를 따라 왕복하는 어선. 등대 위에서 고고히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갈매기 까지, 그 어떤 소음도 없이 그저 흐르는 바닷소리와 갈매기 소리만이 가득했던 마르세유의 지중해였다.
나는 지금 바다에 살고 있다. 은퇴를 할 무렵까지 나는 바다에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집중하며 바다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 경험을 공유할 것이다. 바다가 주는 여유로움에 취하고 바다가 주는 공포감에 질려 떨기도 하다 보면 한때 크라켄과 레비아탄이 살았다 전해지는 바다에 직접 배를 타고 가서 당당히 서있는 순간도 있을 테고, 세이렌의 노랫소리 대신 힘차게 울리는 뱃고동 소리에 빠져드는 순간도 있을 테다. 가끔은 매일같이 만나는 바다에 질려 다시는 바다를 보지 않겠노라 선언하기도 하겠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다가 내미는 거친 손바닥을 부여잡고 다시 바다로 되돌아올지 모른다. 그렇게 수없이 많이 만났던 바다와, 만날 바다에는 그 어떤 날의 바다보다 푸르른 내일의 태양이 내리쬘 것이며 찬란히 반짝이는 소금 결정의 짠내가 여전히 코 끝을 맴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