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를 죽일 권리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를 맴맴 노래부르다 불현듯 떠난 후 시드니 생활 2달 째에 접어들었다.
'거기 생활은 어때?' 하고 친구들이 물을 때 마다 제일 먼저 튀어나온 말은
"바퀴벌레가.... 크고...막... 날아다녀..." 였다.
그러고보니 친구들에게 카톡을 할 때도 늘 소재는 바퀴벌레였다. 바퀴가 또 나왔다. 바퀴가 내 발등을 지나갔다. 자다가 바퀴가 담요안에 바퀴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살면서 이렇게 까지 벌레에 대해 의식하고 생각하며 산적이 있었나 싶다. 가만히 있다가도 벌레가 지나가는 기분이 들어 소름이 쭈뼛 돋으며 다리를 파바박 터는 습관이 생겼다.
호주사람들은 땅이 어마무시하게 넓어서 인지 삶에 필요한 정도로만 개발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데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 만큼 도시 내에 자연이 많이 남아있고 온갖 생명체가 함께 산다. 집 뒷마당에 큰 과일 나무가 있는데 낮이고 밤이고 온갖 새들이 날아와 열매를 따 먹느라 나뭇가지가 턱- 턱- 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침이면, 이게 대체 뭔 소리여 하는 기상천외한 새소리에 잠에서 깬다. 진짜로 정글에서 나는 원숭이 소리같은 소리를 낸다. 위 끼끼끼끼끼끼 !
이웃집은 박쥐들이 망고나무를 하도 좋아해서 나무에 그물망을 쳐 놓고 박쥐 쫓기에 바쁘단다. (도심에 살고 있다. 진짜다.)
마당에 빨래를 널러 나가면 회색 도롱뇽들이 사샤샥 잔디 속으로 숨고, 밤이면... 밤이면... 바퀴벌레가 출몰한다. 아 갓 뎀잇.
물론 이렇게 바퀴벌레에 시달리는데에는 개인적으로 벌레를 무서워하는게 크다. 내가 공포에 떠는 걸 볼 때 마다 누군가는, 그들은 너를 해하지 않아. 그저 남은 음식을 조금 먹고 싶을 뿐이야.라고 차분하게 얘기하지만, 어이 자네, 내가 그걸 몰라서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벌레의 그 예측할 수 없는 행보가 두렵고, 나를 건드리는게 소름끼치게 끔찍한데다가, 살이 닿는다던지 벌레가 터지는 걸 상상하면 끔찍하다 못해 고통이 느껴지기에 나이들고 벌레를 단 한 번도 죽일 수가 없었다. 모기 한 마리도.
어릴 때는 개미집을 찾아서 막대기로 다 죽이겠다고 쑤시던 철모르던 꼬맹이었는데, 그 벌을 받는 건가 싶기도 하고. 다른 이유가 있을까 어린 시절을 곰곰히 되짚어 보기도 했다. 프로이드식 접근 방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벌레에 대한 충격적인 사건이 있긴 있었다.
때는 초등 2년차 주택집에 살 던 시절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 문을 열었더니 하얗고 매케한 모기향이 집 안에 가득해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집안에 있는 벌레를 박멸하겠다고 온 집안을 밀폐하고 수 많은 모기향을 접시위에 피어놓고 백화점을 간 것이었다. 서서히 연기가 걷히면서 드러난 집안의 형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한 발자국 건너 한 발짝 씩 벌레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벌레 시체들이 바닥에도 책상에도 이불에도. 주로 바퀴벌레, 초파리, 모기였지만 간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와 거미, 그리고 사마귀(대체 어떻게!)도 있었다.
입을 쩍 벌리고 결국 집 밖으로 나가 현관에 책가방을 걸어놓고 한참을 엄마를 기다리며 쭈구려 앉아 생각했다. 그 동안 가족들이 다 나가면 이렇게 많은 벌레들이 기어나와 신나게 살고 있던거구나. 이 기억이 내게 벌레터짐 공포를 심어줬으리라 생각하진 않지만서도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강렬하다.
다행히 그 뒤론 아파트 생활을 하며 한국에서는 여름철 모기 빼곤 벌레와 조우할 일이 거의 없었기에(홈매트 만세) 벌레를 두려워 하는 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고, 때문에 이 집에 들어오고 앞 방 친구들이 진심어린 조언을 할 때도 대수롭지 않게 듣고 넘겼다.
"여기 바퀴벌레 큰 데, 아래 층에 베이트(먹이로 유인해서 먹이고 죽이는 약)이랑 스프레이 있어! 우리도 처음 봤을 땐 밤새 생 난리 쳤었는데 베이트 치니까 괜찮더라. 미리 쳐 놔."
"Thank you!"
나라는 멍텅구리는 이 집에서 바퀴들도 나의 하우스메이트가 되리란 건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친절한 하우스메이트들을 만나 마냥 기뻐하고 있었다.
#1. 그렇게 호주에서 제 3의 룸메 바퀴와의 첫 조우는 불현듯 찾아왔다.
그 날 따라 평소엔 늘 방에 있던 룸메이트는 운동을 하겠다며 집을 나섰고, 나는 간만에 혼자 있는 시간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드라마를 틀었다.
사 사 삭 -
이상한 소리에 힐끔 고개를 들어보니 소라색 전면 벽 위를 손가락 세개를 합친 크기의 시커먼 바퀴벌레가 횡단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겐 너무 초현실적이라 보면서도 인지하지 못하다가 심장박동이 급격히 두둥-두둥둥-둥둥둥둥둥둥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퀴... 크다... 벽위를 걷는다... 방 안에...나랑...바퀴...나랑...바퀴 우리 둘 뿐...
최대한 차분하게(이 때 정신력을 이미 끝까지 끌어써버린 것 같다.) 아래층에서 스프레이를 챙겨왔다. 스프레이만 있다면 충분히 죽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문을 등지고 바로 오른편 벽이 문제의 바퀴가 횡단하는 벽이었는데, 문 왼편에서도 소리가 나서 보니 또 다른 통통한 바퀴벌레가 발 옆에서 기웃기웃하고 있었다. 바퀴에게 둘러 쌓여 코너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자 애써 침착하게 다독이던 이성의 끈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미친..........
신발 신는 것도 잊고 방에서 뛰쳐나가 계단 참에 서서 갈 곳을 잃고(1층 부엌엔 바퀴가 더 많이 출몰한다) 우왕좌왕하다가 옆에서 살짝 나는 바람소리에 경기를 일으키며 허공에 소리를 질렀다.
앞방에서 Are you okay?가 들려왔지만, 차마 이 나이 먹고 바퀴벌레 죽여달라고 할 수가 없어 눈물의 Okay를 외쳤다.
안되겠다, 방에서 노트북이나 챙겨서 일층가서 룸메를 기다리자고 생각해, 라이언 일병구하기처럼 노트북을 구하러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양 옆엔 바퀴 그리고 저 앞에 노트북이 있었다. 발소리로 바퀴를 위협해 멀리 쫓고 노트북을 가져오려 했지만, 문제는 그들은 이미 베이트를 먹고 맛이 간 상태라, 인기척에 도망가긴 커녕 내 소리를 쫓아 내가 있는 방향으로 일제히 따라오는 것이었다.
'오 흥미로운 소리가 나는군' 하며 양 쪽에서 지그재그로 다다다다 나를 향해 바퀴들은 다가왔고, 심지어 오른쪽 벽에 큰 바퀴는 벽에서 갑자기 훅 떨어지며 빛의 속도로 내 쪽으로 날아와 나로 하여금 짐승같은 울부짖음을 내뿜게 했다.
찰나였지만 더 이상 존재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상처받은 짐승같은 울부짖음을 듣고 결국 다른 방에 있던 친구는 물론 샤워하던 하우스메이트까지 뛰쳐나왔다. 강도든 줄 알았다고 했다.
친구들이 들어오자 바퀴들은 나만 쫄보인걸 알았던 건지 도망가기 시작했고 (대체 어떻게!) 결국 사살당했다. 큰 바퀴를 아담이 슬리퍼로 퍽하고 내리 찍었을 때 모두 Awwwwww를 외쳐서 힐끔 봤더니 벽에 누가 진흙덩어리를 던진 것 마냥 시커먼 덩어리가 뭉개져 있었다. 다시 한 번 존재하기를 멈추고 싶었다.
#2. 그 후
그 뒤로는 며칠간 1일 1바퀴가 Hi!를 외치며 방에 찾아왔다. 그로인해 운동부족으로 병원에 실려가도(실화) 운동을 안하던 내가 룸메가 운동 간다고 하면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가게 되었다.
그 사이 나는 틈 만나면 바퀴벌레를 검색해 그들의 생장과 번식을 집착하듯 찾아보고 있었는데, 본격적인 여름으로 접어들면 원래 호주는 바퀴천국이 된다고 했다. 이제 시작이며 점점 더 많아 질 거라고. 상상...그 이상으로.
하루는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정말 다섯 걸음 마다 바퀴들이 돌아다녀서 지그재그로 펄쩍 펄쩍 뛰며 멀리서 보면 신난 조커처럼 지하철역으로 달려오기도 했다.
이 곳사람들이 호주에와서 가장 인상깊은 게 뭐냐고 물을 때마다, 예의에 어긋날까봐 아름다운 자연을 짧게 언급한 후 머뭇거리며 튀어나오는 진심어린 대답이 바퀴벌레다. 참으려고 해도 결국에는 홀린 듯한 눈빛으로 So huge...and many...를 읊조리고 마는 것이다. 그들은 웃지만 나는 울고싶다. 바퀴를 박멸할 수 있다면 얼마까지 기부할 수 있을까 자주 상상하기도 했으나, 그들이 지구의 청소부라는 별명을 가졌다는 걸 알고 포기했다. 그랬구나... 너네가 지구의 청소부였구나... 나보다 공헌하는게 많을 수도 있겠구나...
#3. 탈출 포기
이 집이 오래된 2층 목조 건물이라 그런가 했는데, 새 집이든 헌 집이든 아파트던 주택이던 바퀴는 피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이젠 체념조에 접어들었다. 처음에는 문밑으로 바퀴가 낑낑 좌우로 엉덩이를 흔들며 방안으로 들어오는 걸 목도하고(경악) 문밑을 막을 궁리만 했다. 앞 방 친구들이 목조건물 특성상 벽이나 마루 나무 틈에 곳곳에 틈새가 많아 거기로 오는 경우도 많을 거라고 포기하라 조언해줄 때 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이었다.
하루는 턱! 소리가 나서 창문을 봤더니 방충망에 거대 바퀴 두마리가 붙어서 틈새를 찾아 헤매이는 모습에, 창문을 닫아 버리고 자신만만해 했는데, 한 참 후 창문 밑 벽 아래에서 자꾸 사부작 사부작 하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이 곳 저 곳 벽에서 사부작 거리는 소리를 간혹 듣긴 했는데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난 후라 모든 퍼즐이 맞춰지 듯 등골이 섬찟했다.
룸메가 벽 아랫 부분을 똑똑 노크해보더니 안이 비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간의 사부작 사부작 소리 끝에 바퀴는 어떻게든 방안으로 들어왔다. 이런 젠가.
안전지대란 없었다.
그 날 새벽 잠을 자다가 팔에 무언가 스치는 느낌에 깨, 룸메에게 뭔가 방에 있는 거 같다고 했다. 룸메는
There is nothing, go to sleep 했지만 등 뒤에서 나는 사부작 소리는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나 와쪄! :>'
무서워서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방 바닥에도 있을까봐 신발을 신지도 못하다가 냅다 돌진해 불을 켜고 벽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 침대 옆 벽 위에 거대바퀴가 나를 찾고 있었다.(단언컨대 절대로 저런 귀여운 느낌은 아니다. 실제 사진은 너무 끔찍해서 차마 올릴 수 없었다.)
지금도 밤에 영화를 보다보면 바퀴가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벽 속 틈을 돌아다니거나, 방 안 구석에 설치한 베이트(미끼 독약)를 먹느라 플라스틱 커버가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공포증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흔히 거론되는 게 잦은 노출이라지만 나는 도무지 좋아지는 것 같지가 않다.
룸메의 슬리퍼 날리기 신공만 빛나게 발전 중이다. 이러다 종목만 있다면 올림픽 나가겠다.
#4. 바퀴벌레를 죽일 권리
다양한 국적만큼이나 다양한 친구들이 이 집에 살고 있다. 바퀴만 보면 몸을 덜덜 떨며 패닉상태에 접어드는 내가 있는가 하면, CIA 못지 않은 추적력으로 끝내 온 집안의 바퀴를 사살하고 엄지를 치켜드는 앞방 폴란드 친구들도 있고, 이 생명체들을 친구처럼 귀여워하는 네덜란드 청년도 있다. 그의 이름은 브람.
집 밖 마당으로 가는 길에 소파가 있는데 그곳에서 브람은 늘 해피타임을 보내고 있다. 소파 뒤에 바퀴벌레가 굉장히 많아, 소파에 앉아있으면 바퀴가 어깨와 발등을 타고 지나다니는데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바퀴를 보면 고양이 부르듯 손을 내밀고 우쭈쭈하질 않나, 손에 올리고 쓰다듬기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그 이기에 바퀴만 보면 죽이려는 나머지 하우스메이트들과 생포해서 놓아주려는 그가 전투를 벌인다.
경기를 일으키며 죽이자고 외치는 나에게 하루는 그가 물었다.
무슨 권리로 바퀴를 죽이냐고.
바퀴를 죽이는데 권리가 필요했나.
웃기는게 바로 답이 나오지 않고 자기검열에 빠졌다. 내가 싫어하기 때문에? 내가 싫어한다고 생명체를 그냥 죽일 수 있을까?
법에 저촉되지 않고, 내가 사회를 이루는 인간들에게 해가 되지 않으니까?
인간의 주거공간이고 나는 전혀 이 공간 내에서는 공존할 의사가 없으니, 내가 그들의 서식지를 침범한 것도 아니고 대화가 통하는 상대도 아니고 수가 더 늘어나는 걸 보고싶지 않으니 죽이겠다?
수많은 병균을 옮기고 집안 내 위생에도 나쁜 해충이다 헌데 나는 너처럼 생포는 절대 못하겠고 생포해도 다시 돌아와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할테니 주거공간에선 죽인다.
그 뒤로 많은 이유를 생각해봤으나 여전히 조금 찝찝한 질문이다. 나도 랜덤하게 태어난 생명체가 아닌가. 혹시 자연에게 의지가 있다면, 지구의 최악의 기생충이라 불리는 인간도 이렇게 박멸당해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닐까하며.
바퀴 하나로 왜 나는 이렇게 그들을 무서워하나 어릴 적 트라우마라도 있는가 기억을 더듬는 것에서 부터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한 탐구, 그리고 바퀴를 죽일 권리를 곱씹어보기 까지, 이렇게 까지 많은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하게 해준 것에 대해 한편으론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