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는 자와 손해보지 않는 자의 간극
세상에는 차라리 내가 손해 보는 게 편한 사람이 있고, 절대 손해보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
사람마다 그 정도는 다양하고,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이로인해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조금씩 변해간다.
잇속을 차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먼저 믿고 베풀려는 사람들 또한 인간이기에 내가 상대에게 주는 만큼의 배려와 믿음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서러워지고 때론 인간관계 전체에 대한 불신과 환멸을 느끼게 된다.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실망하고 때로는 실망시킨 것을 후회하며 우리는 제 각각의 사회생활하는 기준을 조율해 나간다.
손해 보는 자와 손해보지 않으려는 자의 정도가 0부터 10까지 있다면, 소설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0 그 자체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인간'이란 사회생활을 잘 하는, 남에게 손해보지 않는 인간이다.
아직 사회에서 실격당하지 않은 대부분의 우리들은, 이타성, 신의, 성실, 정직 등의 우리가 높게 평가하는 긍정적인 인간성이 부재하는 사람을 인간실격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인간성은 끝없이 손익을 계산하며 적당히 거짓된 미소로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것이 인간성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이야기는 어느 극악한 범죄자의 사회매장기가 아니라,
처세술과 모든 허위를 이해할 수 없었던 요조가 죽도록 세상을 두려워하다 결국 낙오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대학교 시절, 죽이 잘 맞아 삼총사가 된 친구들이 있었다. 내겐 친한 친구들이었고 참 잘해주었지만, 그들이 사회생활하는 것을 보면 참 약아서 마음이 복잡해지곤 했다. 서로의 기준이 다른 것이려니 하고 넘기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나도 그 피해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결국 실제로 문제가 되어 나는 그 관계를 놓았다.
이를테면, 고시공부 스터디에 모임에 나가며 "나만 초시생인데 잘됐다! 가서 쪽쪽 뽑아먹고 올게!" 라고 장난이라도 치면, 나는 혼자 멈칫하게 되는 것이었다. "에이 너도 도와줄 날이 곧 올거야! 가서 좋은 사람들 만나구!"라고 하며 내가 위선자인가 자기검열에 빠지곤 했다. 이들은 자기 미래에 대한 앞가림을 참 잘하는데 나는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친구들이 심심할때만 휘둘리는 것 같았다.
A는 시간이 뜨거나 이동 중일 때 전화를 해서 두 시간이고 세시간이고 통화를 했다. 나는 하던 일이 있어도 이를 알리고 끊기가 참 어려웠다. 내가 생각나서, 나하고 이런 감정을 나누려고 연락한 마음이 기뻤고, 또 친구가 느낄 거절당하는 감정이 마주하기 힘들었다. 내 마음 속에는 어린 시절 성장을 멈춘 것같은 꼬마가 있는데, 그 아이는 거절 하는 것도, 거절 당하는 것도 몹시 두려워한다.
나야말로 계산적이라 이런 것도 셈하는 구나 하며 마음을 정리하곤 최선을 다해 함께 즐겁게 대화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친구 관계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표현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싶다.
그러다보면 친구는 ‘어 나 다 왔다 이따 연락할게!’하고 갑작스레 사라졌다. 나는 혹시 친구가 미안할까 다급하게 '응응! 얼른 들어가고, 스터디 잘 해!'라는 식의 말을 남기곤 이용당하다 덩그러니 남겨진 듯 한 느낌을 떨쳐내야 했다.
내가 솔직하지 못해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게 아닌가. 나야말로 계산적이어서 일일히 재고 따지며 피해의식을 느끼는 게 아닌가. 끝없는 자기검열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는 착한 사람이에요’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이를 테면, 맛있는 음식이 잔뜩 차려진 식탁에 앉을 때, 내가 먹고 싶은 음식 앞에 바로 앉지 못하는 사람인 거다. 분명 저게 가장 먹고 싶은 사람이 있을 텐데, 하고 머뭇거리거나 다른 친구에게 앉으라고 양보해버린다. 그러고 막상 상대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먼저 앉는걸 보면, 상대는 그렇게 해주지 않음에 조금 슬픔을 느낀다.
내가 타인에게 신경쓰는 만큼, 은연중에 비슷한 배려를 바라게 되는데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도 다른지라 이 기대는 충족되지 않을 때가 많다.
타인에게 실망하고, 심하면 관계에 환멸을 느낄 때마다 마음 한 귀퉁이가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행복의 기원"이라는 진화학적으로 행복에 대해 연구한 결과에 관련한 책에서는, 행복의 핵심이 타인을 더 믿고, 끈끈한 유대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요조가 부잣집에서 태어나 별 굴곡없는 삶을 살면서도 왜 끝없이 불행했는지 설명되는 부분이다.
#1. 타인을 실망시킬까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마음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어른들이 배고프지?하고 간식을 챙겨주면 대번에 “그거 싫어” 하고 거절하는 아이가 있고, 배가 고프지 않았어도 “아~ 정말 배가 고 팠어요”하며 맛있게 받아먹는 아이가 있다. 요조는 후자다. 타인을 실망시킬까 무엇도 거절하지 못하고, 거절당할 까 먼저 손을 내밀지도 못하는 아이.
매사 제 멋대로인 아이들을 싫어하지만, 어리광을 전혀 부릴 엄두도 못 내는 아이는 차라리 제멋대로 인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어린 시절,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고 행동했는데 어른들이 “아이가 너무 일찍 철들었네요 가여워라”라고 대화하는 걸 듣곤했다. 나는 정말 어리광을 전혀 부리지 못하고 눈치 보는 아이였다. 내가 너무 어려 알아듣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나누는 대화였지만 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들려오는 어른들의 대화에 스스로가 처연한 존재인가 되짚어보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서 슬픔과 화가 동시에 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나는 매사 눈치를 보고 사랑을 잃지 않고자 최선을 다하는 아이였다. 그 외에는 뭘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매 순간 100퍼센터 내 편이리라고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요조는 우연찮게 호리키라는 가벼운 친구를 만난다. 호리키는 뻔뻔하게 오엔만 빌려줘봐, 하고 요조의 돈으로 계산을 하며 오늘은 내가 내는 거라며 생색을 내는 인물이다. 그런 얕은 인물이기에 요조는 호리키와는 아무런 부담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요조의 돈을 제 돈처럼 쓰며 놀던 호리키는, 요조가 아무 기댈 대가 없어져 처음으로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 손해보지 않는 자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그렇게 요조는 호리키와의 관계에서 조차 쓸쓸함을 느낀다.
“바보짓은 이쯤에서 그만두지 그래. 오늘은 내가 볼일이 있네. 요즘 공연히 바빠서 말이야.”
“볼일이라니, 뭔데?”
“이봐, 이봐. 방석 실을 끊지 말게.”
저는 얘기를 하면서 제가 깔고 앉은 방석의 시침실이라고 하는 건지 마감 실이라고 하는 건지 그 방울같이 된 네 귀퉁이의 실 중 하나를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으로 갖고 놀면서 쑥 잡아당기고 있었습니다. 호리키는 자기네 집 물건이라면 방석 실 하나도 아까운지 겸연쩍은 기색도 없이 그야말로 눈에 쌍심지를 켜고 저를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호리키는 지금까지 저하고 교제하면서 뭐 하나 잃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호리키의 노모가 단팥죽 두 그릇을 쟁반에 담아 들고 왔습니다.
“어, 이런.”
호리키는 진정한 효자처럼 노모를 보고 진심으로 황공해 했고 말투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정중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단팥죽입니까? 저런, 호사스럽게. 이렇게 신경 안 쓰셔도 되는데. 볼일이 있어서 금방 나가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아닙니다. 그렇지만 모처럼 어머님의 자랑거리인 단팥죽인데. 황송합니다. 들겠습니다. 자네도 어때. 우리 어머니가 일부러 만드신 거라고. 야, 이것 참 맛있다. 야, 참 호사스럽군.”
단팥죽과 그 단팥죽을 기꺼워하는 호리키에 의해 저는 도시 사람들이 조촐한 본성, 또 안과 밖을 딱 부러지게 나누어 살고 있는 도쿄 사람들의 실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안팎 구별 없이, 그저 끊임없이 인간의 삶에서 도망쳐 다니는 바보 멍청이인 저 혼자만이 완전히 뒤에 처져 호리키한테조차 저버려진 것 같은 느낌에 당황했고, 칠 벗겨진 젓가락을 움직이면서 견딜 수 없는 쓸쓸함을 맛보았다는 사실을 기록해 두고 싶을 뿐입니다.
#2. 화를 내는 자와 도망치는 자
호리키는 화를 내기는커녕, 거절도 못하는 요조를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대한다. 타인에겐 공손의 극치를 달리는 호리키가 요조에겐 너처럼 사는 건 세상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요조는 반박하지 못한다.
“세상이라는 게 사실은 자네 아니야?”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는 게 싫어서 도로 삼켰습니다.
-중략-
갖가지 말이 가슴속에서 교차했습니다만, 저는 다만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진땀 나네, 진땀.”하고 웃을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집을 찾아온 요조에게 그리 박하게 굴고선, 호리키는 간신히 안정을 찾은 요조의 거처에 심심하면 찾아가 배가 고프니 음식을 얼른 내와라, 너는 인간실격이다 등의 막말을 서슴치 않는다.
“아아, 배가 고픈데.”
“지금 아래층에서 요시코가 잠두콩을 삶고 있어.”
“저런 고마워라, 내가 좋아하는 거야.”
저는 양손을 머리 뒤에 베고 벌렁 누웠습니다.
“자네는 죄라는 것에 전혀 흥미가 없는 것 같군.”
“그야 그렇지. 너 같은 죄인이 아니니까. 나는 난봉은 즐겨도 여자를 죽게 하거나 여자한테서 돈을 우려내거나 하지는 않거든.”
죽인 게 아니야. 우려낸 게 아니야 라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희미한, 그러나 필사적인 항변의 소리가 끓어올라 왔습니다. 그러나 아니 내가 나쁜거야, 라고 금방 다시 고쳐 생각해 버리는 이 버릇.
화가 날 때 지르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되새김질을 하다가 넘겨버리는 사람이 있다. 후자인 나는 그래서 화를 잘 내지 못한다. 도망치는게 특기다. 화가 치솟아 오를때면, 많은 생각이 머리를 매우치며 이내 체념하고 슬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정말 내가 지금 한치의 잘못이 없어, 부끄러움 없이 떳떳한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상대의 입장에서는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나도 내 이기심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닌가.
그 순간의 자기검열의 시간에 우물쭈물하다 보면 그대로 불덩이를 꿀꺽 눌러 삼키게 된다 스스로에겐 깊은 내상을 입히면서.
사실 이는 더 큰 두려움을 피하고자 하는 행동이다. 내가 화를 냈을 때 서로의 바닥을 보게되는 것의 처참함. 그게 두려운 거다. 나도 너도 결국은 스스로가 가장 중요한 이기적인 타인이고, 그 동안 우리가 웃으며 나눠온 관계는 사실 다 거짓임이 낱낱히 드러날까봐 두렵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다 위선임을 목도 한 후에는 붙잡고 살아갈 게 아무것도 없어지는게, 내가 디디고 서있는 바닥이 갑자기 뻥 뚫려 끝도없이 추락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요조는 인간관계에서 끊임없이 숨고 도망치다 끝내 더 이상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로 시작하는 요조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