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1.
이 글은 자전거로 3시간 정도면 발리섬 전체를 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과 함께 무작정 떠난 여행기입니다. 발리가 제주도의 3배 크기라는 건 도착하고 한참 후에야 알았습니다.
혼자서 여행을 간 것도, 이토록 대책 없이 여행을 간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찾아보고 준비하기엔 몹시 마음이 지쳐서 다 모르겠고 일단 가보고 싶으니 가자했습니다.
난 오늘만 산다. -영화 아저씨 中
그렇게 영화 아저씨의 '내일은 없는 놈'처럼 무작정 발리에 떨어졌고, 눈 앞에 떨어진 과제는 당장
유심카드 장착과 숙소 도착 정도였죠. 호갱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일념에 유심카드는 제대로 알아보고 사기로 하고(미루고) 250k(만 육천 원가량)으로 흥정을 해 공항 택시를 타고 꾸따(Kuta)에 있는 숙소로 향했습니다.
Tip. 알고 보니 이것도 호갱가였습니다. 하지만 발리는 인구의 80프로가 관광업으로 먹고사는 섬이기에 관광객을 상대로 한 택시 호갱 영업은 공항에선 피하기 어렵습니다. 공항에선 유일한 미터기 택시(블루버드)도 우버도 잡을 수 없어요. 어느 정도 공항을 걸어 나간 후 우버를 불러보거나(우버가 제일 싸지만 지역 택시의 텃세가 심해 몰래몰래 타는 실정) 블루버드를 잡는 방법도 있습니다. 꾸따, 세미냑, 짱구 쪽은 교통체증이 정말 심합니다.
#1. 발리의 첫인상
공항에서 꾸따 가는 길에 펼쳐진 모습은 인도와 동남아가 섞인 느낌이었습니다. 괜히 "인도+네시아"가 아닌 게 인도와 힌두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티가 확연히 났습니다. 인도 같기도 하고 동남아 같기도 한 것이. 사실 수년 전 태국과 라오스를 여행한 후 동남아는 이제 한동안 되었다 생각할 정도로 비슷비슷할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동남아 하면 여행지라기 보단 해변에서 몰디브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하는 휴양지로만 떠올렸죠.
일단 제가 생각한 하얀 백사장의 자그마한 섬이 아니라는 걸 공항 택시를 타고 인지했고, 다음으로 전통의상을 교복으로 입은 학생들과 주민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통이 살아 있는 곳에 있다는 게 참 반가웠습니다. 정체성이 없는 곳은 어쩐지 생명이 깃들지 않은 느낌 이어서요. 이 전통의상은 이후로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여성의상의 경우 상의는 밀착되는 긴팔의 시스루가 많고 하의는 긴 화려한 패턴의 펜슬 스커트 느낌으로 여성스러움을 극대화해줍니다. 남성의 경우 좀 더 껴입은 발랄한 알라딘이 생각 난달 까요.
출처:(좌) Volunteer program bali (우) Depositphotos
힌두교는 우리나라에 선 흔치 않은 종교이기에 굉장히 이국적으로 느껴집니다. 길거리에는 어디가 사원이고 가게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석상들이 줄지어 있는데, 눈망울이 굉장히 부리부리 하면서도 야무지게 생긴 얼굴에 키는 땅딸막하고 역동적인 동작을 취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관심 있게 부지런히 꽃관도 씌워주고 천옷도 입혀 줘 꽤나 사랑받고 크는 아이처럼 귀엽고 당찬 인상을 줍니다.
길바닥에는 집집마다 대나무 잎과 야자나무 잎을 엮어 작은 바구니를 만들고 그 위에 꽃과 작은 크래커(! 나) 생 쌀 등을 조금 올리고 향을 피워 길바닥에 내놓은 공양이 줄지어 있습니다. 한 눈에도 신에게 바치는 정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늘 밟거나 차지 않게 조심조심 걸으며 그 정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엔 이 정성이 어찌나 열정적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카낭 사리(Canang Sari)라고 불리는 공양은 매일 아침 집집마다 적게는 대여섯 개씩 만들어지며 현관문 앞과 집안 곳곳에 놓입니다. 신과 선한 힘 안에서의 균형을 바라면서 말이죠.
낮시간이면 길 강아지들이 카 낭사 리위에 놓인 크래커를 하나 물고 종종 걸어가는 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다음날이면 여기저기 밟히고 채인 카낭사리들은 치워지고 새로운 카낭사리가 놓입니다.
발리 여성들은 하루의 여덟 시간은 잠을 자는데, 또 다른 여덟 시간은 일하는 데, 나머지 여덟 시간은 신에게 헌신하는데 쓴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입니다. 각 집 안에 사원 하나씩 있는 게 기본입니다.
그렇게 신들의 섬 발리에 도착했습니다.
이 한 걸음이 곧 거대한 화산을 지나, 점점 더 작은 섬으로 흘러들다가 무인도에서 가오리떼와 아침인사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하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