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2.
발리에 오게 된 데는 읽고 있던 책,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영향이 컸습니다.
대체 어떤 곳이기에 무려 '신들의 섬'이라 불리는지 궁금했고, 저 역시 한 달 정도 기약 없이 살아보며 무엇인가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인도네시아에서는 올해 9월에 대규모 지진이 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또 며칠 전 쓰나미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습니다.
인도네시아라는 이름의 의미는 인도양에 놓인 섬들(=네시아)로, 무려 만 육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아직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섬이 무수할 정도로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지만 역설적으로 화산활동이 들끓는 불의 고리에 위치하고 있으니 왜 이토록 신에 대해 생각하고 의식을 중시하는지 절로 이해가 갔습니다.
발리섬 하나에만 7개의 화산이 있고 어딜 가나 웅장한 화산이 배경에 버티고 서 있는데 찰나 같은 삶과 신의 존재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 화산 트랙킹에 대한 이야기는 차후에 더 자세히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꾸따의 명과 암
#1. 씁쓸했던 꾸따
아무래도 바다 근처로 가야겠지란(인도네시아를 휴양지로만 생각했기에) 생각에 가장 대표적이라는 꾸따를 첫 목적지로 삼았습니다.
숙소에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좌우로 줄지어 서있는 맥도날*와 KF* 등의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관광객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지면서 너무도 상업화된 모습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명동 한복판 같은 곳에 숙소를 잡고 "어머 왜 현지인들이 갈 법 한 식당이 하나 없지?" 하며 갸웃거린 것 같습니다.
이후에 여행을 하다 만난 많은 친구들 중에서도 꾸따가 좋았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길거리 쏘다니는 걸 좋아해서 하루는 날을 잡고 구석구석 돌아도 봤지만, 슬프게도 늘어서 있는 가게마다 죄다 똑같은 관광상품을 팔고 있었기에 하루로 충분했습니다.
그래도 깊은 골목을 돌아다니다 괜찮은 현지 식당에서 먹은 아얌 국수(닭국수)와 아보카도 주스는 생각만으로 다시 군침 돌게 맛있었습니다. 현지에서 아보카도 주스를 시키면 늘 초코 시럽 같은 게 중간에 뿌려져 있었는데 이게 참 아보카도 맛을 톡톡히 살려줍니다. 저렇게 신선한 주스가 1200원 정도 했습니다!
늘 느낀 게 국물요리에 국물이 좀 자박할 정도로 적게 나오고 음식의 양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종교적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많은 만큼 야채를 주로 활용한 음식이 많아 부담스럽지 않게 즐겼습니다.
꾸따의 풍경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사진 우측에 보이는 관광객을 위한 이동식 바였습니다. 트레일러 뒤에 개방된 바를 설치해서 거나하게 취한 관광객들이 잔뜩 흥이 올라 시내를 뱅글뱅글 도는 서비스였습니다.
웃기면서도 한편으론 입 맛이 썼습니다. 꾸따 전체가 휴양객의 편의에 맞춰져 본래의 색을 잃고 값싼 유흥가로 전락한 것 같아서요. 서양식 식당과 서핑숍, 온통 똑같은 디자인의 기념품을 파는 가게의 홍수 속에서 현지인들은 관광객에게 의존해서 사는 호객꾼 외엔 설 자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한 걸음 떼기가 무섭게 따라붙는 현지인들의 호객행위에도 지쳐갔습니다.
아 물론 제가 원하던 것과 달라서 그렇지, 친구 혹은 가족들과 편리하게 따뜻한 휴양지에서 입맛에 맞는 음식과 음주가무, 서핑을 즐기고 싶다면 누군가에겐 매 년 오고 싶은 휴양지일 수도 있습니다.
#2. 해 질 녘의 서핑
그래도 바다 때문에 꾸따까지 왔는데 서핑은 도전해봐야겠단 생각에 우선 이틀을 예약하고 갔습니다.
바다색이 흔히들 생각하는 에메랄드 빛이 아니고 누리끼리한 색(!)이라 잠시 당황했지만 초보자가 타기 좋은 해변으로 유명한 만큼 금방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파도 위에 서서 육지를 향해 날아가는 듯한 그 기분. 심장이 벌떡였습니다. 어설프게 구름 위를 나는 손오공처럼 자세를 낮추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속으로 빌었어요.
특히 해 질 녘에 황금빛 바다에서 타던 서핑은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있습니다.
석양으로 온통 눈부시게 빛나는 파도 위로 하루 종일 뜨겁게 타오르던 태양이 빠져드는 모습에 다들 생각에 잠겨 숨 죽이고 지켜봤습니다.
해가 지는 것을 볼 때마다 소설 어린왕자가 생각납니다. 그가 느꼈을 외로움도 함께요.
그가 살던 조그마한 별에서는 의자를 조금만 움직이면 보고 싶을 때마다 해 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하루는 해가 지는 것을 44번 보았어..."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뒤에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아저씨, 몹시 외롭고 쓸쓸할 때에는 해 지는 것이 보고싶어져..."
"그러면 해 지는 걸 44번을 보던 날은 그리도 외롭고 쓸쓸했었니?"
어린 왕자는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태양이 사라진 하늘은 주황색과 분홍색, 보라색이 뒤섞여 고운 여운을 남기지만 공허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시간은 가고 있고 모든 것에 끝이 있음을 상기시켜줘서 일까요.
텅 빈 하늘을 마주하고 있자면 아름답고 그래서 더 외롭습니다.
대기가 급속도로 식으며 허전함이 찾아왔습니다.
하루가 또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