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과 현지인 사이의 애증

발리에서 생긴 일#3. 꾸따 탈출기

by Redpanda

호주 사람들은 늘 오늘은 어떤지로 인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식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에는 똑같이 "안녕하세요?"라고 답하면 끝나는 것과 달리 늘 0.5초간의 고민을 수반하는 질문이었습니다.


"Good"이라고 말하자니 사실 뭐가 좋은지 모르겠어서 찝찝하고

"Not bad"라고 하자니 별 일 없는데 괜히 걱정 끼치는 것 같고


하루는 "Great!"이라고 밝게 말하는 친구에게 "Why is it so? 어째서 그리 좋은 게냐"라고 되물었다가

친구가 당황하며 "그.. 글쎄? 뭐.. 뭐가 좋지? 좋은 거 같은데"라고 말하며 진땀을 흘리는 걸 보고는

"뭐 날씨가 좋다거나 아침이 맛있었다거나 이유가 있어야 할 거 아니냐"라고 꼬치꼬치 묻다가 웃음이 빵 터진 적이 있습니다. 이걸 계기로 한동안 서로 '행복한 영혼'과 '불행한 영혼'으로 불렀고요.


한 친구의 대답은 늘 "Same shi*, different day" 였죠.





발리 사람들은 늘 어디서 왔는지, 얼마나 머물 건지, 이후로 어디로 갈 건지를 물었습니다.


발리에서 한류의 흐름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있었기에 한국에서 왔다 그러면 감사하게도 감탄과 함께 환영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민호 씨 그리고 BTS 님들 꽃길만 걸으세요!) 길에 있는 많은 가게에서 아이돌 그룹의 K팝이 흘러나오는 건 흔한 일이었고 제가 머물던 숙소 루프탑에선 저 조차 제목을 말할 수 없는 한국의 조용한 카페에서나 나올 법한 어쿠스틱 K팝이 끊임없이 흘러나왔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한 달 정도 머물 것 같다고 하면 그때부터 이들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정도? 라니 너도 네가 언제 돌아가는지 모르는 게냐라는 질문을 삼키고 "한 달간 뭐할 건데?"하고 물으면 또 "글쎄 아직 모르겠어. 서핑을 배울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고. 사실 발리가 자전거 타고 다 돌 수 있는 크기인 주 알고 왔는데 너무 크고 생각했던 것 같은 휴양지가 아니라 뭘 할지 찾아봐야 할 거 같아"라는 대답에 믿을 수 없다는 듯 깔깔 웃곤 했습니다. 발리에서 차는 필수거든요.


처음 서핑을 시작하고 재미있었지만 두 번의 클래스만에 한 달간 서핑을 배우는 건 아닌 거 같다고 결심한 데에는 제가 선택한 서핑 클래스의 영향도 있습니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여행객을 걸어 다니는 지갑으로 보는 데 기가 질린 것이죠.


예를 들어, 오늘은 파도가 오후에 좋을 것 같으니 내가 보내주는 택시를 타고 오후에 와라. 내릴 땐 xx정도 팁만 주면 된다."라고 말하며 이미 제가 확인도 하기 전에 택시를 예약해 줍니다. 한데 이게 또 생각해서 친절하게 택시까지 불러준 것 같아 감사하면서도 후에 우버를 체크해 보면 덤터기 금액이었습니다. 따지기엔 또 애매한.

서핑장에 도착해서 옷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가는 데에도 돈을 내고요. 큰 금액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조금의 배려나 인간적인 관심에서 우러난 친절이 있었다면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기승전 돈으로 연결되는 데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대게 여행객들의 반응은 두 갈래로 나눠 더군요. 절반은 극도의 불신, "이 사람들은 그저 우리를 멍청한 관광객 정도로 보고 돈 털어 낼 생각만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발리 사람들의 극도의 친절함에 감동받은 사람들.


발리인 들을 탓하고 싶진 않습니다. 진심이 당연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저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음뿐입니다.


첫날은 서핑을 배우는 재미에 신나서 맥주를 벌컥이며 즐겁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다 같이 즐거운 시간이었죠. 그날의 고객은 저 하나뿐이라는 데 네 명의 강사가 하루 종일 앉아있었습니다.


전적으로 관광객에게 의존한 경제구 조이기에 최선을 다해서 관광객이 돈을 쓰게 하는 게 생존 방식이 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부 관광객들이 이들을 사람으로 봐주지 않았기에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똑같이 관광객에게 인간적 존중을 잃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럴듯한 홈페이지에는 호주인 주인의 사진이 걸려있었지만, 실제로 연락책부터 강사는 모두 현지인이었고 사실 누군가를 가르치기에는 실력과 영어가 매우 부족했습니다. 제가 생각보다 너무 금방 일어설 수 있게 돼서 당황한 듯 그 이후로는 뭔가 가르쳐주기보단 끊임없이 다시 바다로 나가서 일어서기를 시켰습니다. 한데 뭔가 어려운 점이 있어 물어보면 그 점에 대해서 이렇게 해봐라 라는 교정이 없이 아직 내가 잘 못 가르쳐서 미안해 라고 웃을 뿐이었죠. 소년의 나이는 겨우 열일곱. 영어를 거의 못했고 누군가를 가르쳐보는 것은 거의 처음인 듯 연신 미안해하며 자기보다 실력자에게 배우라고 말을 하더군요. 차라리 소년과 아이처럼 바다에 뛰어들던 시간은 유쾌했습니다.


끊임없이 제게 맥주를 더 팔려고 할 때에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기보다 한 병이라도 더 팔아야 좋은 것이란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소년보다 조금 실력자라는 사람. 이미 너는 돈을 냈고 그럼 뭐 어쩔 거야라는 심보로 신경을 거스르는 말을 하며 대충대충 가르치는 폼에 분노를 유발한 강사가 있었죠.


수산시장 입구>고르는 과정>요리해 주는 곳


연락책이던 여성분은 저를 이곳저곳 초대해 주었고, 하루는 친구들과 수산물 시장에 갈 건데 같이 가자는 말에 정말 뛸 듯이 감사하며 나갔습니다. 혹시 해산물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가세요. 정말 맛있었습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야채도 향기로운 게 해산물과 잘 맞았습니다. 이곳 특유의 버터향의 달콤한 양념*을 칠해서 고른 해산물을 구워주는데 발리에서 먹은 음식 중 제일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게 했습니다. (*이 양념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은 부디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근데 이러한 호의도 그냥 호의가 아니라는 게 씁쓸했습니다. 당연히 제가 먹은 만큼은 내는 게 맞지만 너는 **정도 내면 돼.라고 말해주는 금액은 1/n 수준이 아니라 8인이 먹은 식사의 절반 이상을 커버하는 금액이었으니까요. 제가 잘 모르리라 생각하는 듯했지만(그렇죠 발리를 자전거 타고 다닐 생각으로 왔다는 관광객이니) 계산서를 이미 본 후였고 불러준 게 고마운 마음에 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 물론 그 사이 이미 절 위한 택시를 불러서 우버 가격인 **만큼 팁만 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우버 앱에서는 그 금액의 절반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정말 기본적으로 베풀 수 있는 친절에도 대가를 치러야 했고, 저에게서 사람이 아닌 돈을 보는 상황은 어쩐지 마음 한구석을 끊임없이 무너뜨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중에서 유일하게 저를 돈으로 보지 않았던 사람, '나가'가 있습니다. 한데 나가는 저를 여자로 봐서 더 불편한 상황까지 갔습니다. 저녁은 먹었냐고 전화가 오는 등의 부담스러운 연락이 계속 온다거나. 저도 대화는 즐거웠지만 혼자 여행하러 왔기에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말에 '다시는 너에게 전화도 문자도 하지 않겠다'라고 답장이 오는 등 다른 의미에서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물론 이후로도 전화와 문자는 계속 와서 차단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왜 멍청하게 타인의 호의를 기대하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현지인들은 당연히 장사꾼이고 현지 남자에게 넌 어떻게 해볼까 하는 외국인 여성일 수 있다고요. 한데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어보고자 하는 태도로 살고 있습니다. 제가 타인에게 제 일부의 모습으로 어떤 사람으로 단정되고 싶지 않듯이 타인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지금 모습은 백 퍼센트 자유의지로 빚어진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환경과 문화, 사상에서 우리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이러한 환경은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니까요.


제가 우연히 저이듯 당신도 우연히 당신이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바뀐다 해도 하등 이상할 일 없는 일이기에 누구에게도 좀 더 친절할 수 있길, 한번 더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길 바랍니다.


나가 와의 대화는 나가라는 사람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도네시아의 할렘가에서 태어난 비슷한 나이 때의 남성의 삶에 대해서요. 자카르타섬 출신으로 발리섬의 텃세를 이겨내는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돌아갈 집은 시궁창에 가까운 할렘가라 갈 곳도 없다는 것도. 꾸따 해변에 서핑 클래스 우산 하나를 꽂는데 얼마나 많은 돈이 들며, 자신은 이 년 정도 주인 밑에서 일해서 일단 돈을 모아볼 생각이란 것도. 사실 너무나도 호주로 가고 싶지만 비자도 그렇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관광객들을 통해 영어를 배우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이란 것도 알게 되었죠.


저는 나가보다는 운 좋게 한국에서 태어나 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었고, 클릭 한 번으로 호주로 가는 워킹비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밤 잠 못 자게 했지만요. 제가 가진 고민을 들으며 그가 보인 반응도 놀람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런 삶도 있구나 하더군요. 제 친구들과는 다 함께하는 흔한 고민이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에겐 이렇게 색다른 고민이었습니다.


그는 현지인들이 관광객에게 느끼는 반감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관광객 중에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현지인을 영어도 못하는 바보 취급하며 푼돈으로 왕 놀이를 하다가 가는 경우가 많다고요. 그럴 땐 발리어로 웃는 척 관광객의 면전에서 조롱하는 이들도 있다더군요. 아까 제가 언급한 건성건성인 강사가 특히 관광객들을 바보 취급한다는 것도요.


네, 제가 느낀 그 알 수 없는 찝찝한 죄책감과 불편함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과한 관광화로 얼룩진 땅에 저까지 가담해서 부담을 얹는 기분이요.



그렇게 두 번째 서핑 클래스가 끝난 날, 저는 도둑같이 지역 이동을 감행했습니다.


서핑 클래스 사람들과 대화하며 발리가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본 것처럼 작은 숲 속 마을에 있는 평화로운 공동체 일 주 알았다란 말에 한 친구가 제가 찾는 곳은 영화 촬영지인 "우붓"인 거 같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꾸따에 와보지 않았다면 동남아에 여행 와서 바다 한 점 안 보이는 내륙지역이 웬 말이냐 싶었을 소리지만 제가 원하는 곳은 우붓에 가깝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꾸따에서 유명하다는 클럽은 끌리지도 않는 스스로를 관찰한 끝에 내면의 평화를 찾아보자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한밤 중에 꾸따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 발리섬의 한가운데 위치한, 발리의 심장, 우붓으로 향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