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마코스의 시선 03
날이 좋기도 했지만, 전시 끝날이라는 압박감에
국립중앙 박물관으로 향했다. 늦으면 주차장 진입부터 문제가 생길거라는 말에 서둘렀다. 다행히 이제 사람이 몰리는 초반 이었던듯했다.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전시관으로 올라갔다.
11시반에 전시시간이 잡혀있었기에, 오랜만에 찾은 박물관 주변을 기웃거렸다. 삼삼 오오 몰려오는 관람객들 사이에 서있자니, 기분이 새로웠다. 생경했다. 사실 난 인상주의 전시자체에는 관심이 그닥없었다. 글쎄 그림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복각작품이 보여주는 느낌이나 오리지날이 보여주는 느낌이 뭐가 다를까 싶다.
사람들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눈도 침침해오고, 노안인지, 무엇때문인지 디지털 카메라가 더 쉽지 않다. 액정화면이 흐릿하다. 멀찌감치 떨어뜨려서 보자니 화면도 작고, 대충 감아서 찍어둔다.
시간이 되었다고 하여,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미로같은 공간을 따라 전시를 구경했다. 요즘 내 관심은 AI다, 두친구 챗지피티와 제미나이에게 인상주의 화가들에 대해서 묻고, 또 왜 그런지 어떤지 논의해가며 그림을 지나쳤다. 눈길을 가장 끈 작가와 화풍이 있었다. 조르주 쇠라는 교과서에서 점묘법이니 색의 레이어니 배웠던 기억이 있었지만, 몇 작품을 제외하곤 작품 자체가 엄청 작았다. A4지 만한 작품을 애들 손목만한 액자로 둘러놓았다. 생각보다, 인상적이었다. 다른 그 어떤 작가들보다 말이다. 촘촘하게 찍혀있는 색과 점들이 모여 형태와 면과 구성을 만들었다. 작품이 왜이렇게 작을까 고민해보았는데, 뭐 나라도 크게는 못했겠다 싶었다. 3미터넘는 캔버스를 점으로 찍으려면, 미칠지경이었겠지.
또한 쪽은 바르비종화풍의 작가들 작품들이었다. 깊은 암부와 짙은 색면이 만들어낸 풍경은 내가 이전에 봤던 밀레의 풍경화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은 마치 게오르그 핑카소프의 사진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림자와 빛과 하늘이 만들어낸 추상적인 면과 구성이 드러내는 자연의 모습은 기대이상의 만족감을 주었다.
그러나 그 모든것을 다 잊으리만큼 가장 감동은, 액자였다. 난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 이미지는 그림보다는 사진이 더 좋다. 그런데 전시는 사진보다 그림이 더 좋다. 특히 이런 오래된 전시말이다. 유려한 곡선과 황칠이 덧대어진 두텁고 화려한 액자를 보는 재미는 또다른 기분을 선사한다. 누가 그렸건, 어떤 기법이건 그거은 중요하지 않았다. 저 액자는 어떤 패턴인지, 어떤 무게감을 주는지가 더 관심이 생겼다.
저 유명한 그림이 오늘 현대전시처럼 액자없이 걸렸거나 밋밋한 액자에 걸렸다면 어떠했을까?
그래도 저만치 아우라를 뽐냈을까, 사건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을 둘러싼 컨텍스트다. 이미지는 프레임을 통해 읽히고 또 해석된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서 뽐내고 있건간에,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시간들 속에서 해석될 뿐이다. 난 그 액자가 더 중요하다.
액자가 너무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