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대한 생각

내가 보는 것에 대하여

by 레드 피터

사진은 대상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본질에 대한 문제이다. 대상이 제공하는 기능이나 물성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사진가는 세계를 배회하는 사람들이다. 천천히 그러나 공격적으로 배회하는 그들은 낯선 세계로 통하는 문을 발견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는 쉽게 현혹된다. 대상에 쉽게 말려들고 만다. 그때 우리는 대상에서 드러나는 진실의 빛을 놓치고 만다. 오르페우스처럼 내가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이 발동하는 순간 대상에게 소비되고 만다.


때로 빨간 기둥과 이어진 끈의 긴장 속에서 버티는 세계를 조우한다. 불타는 듯한 기둥에 사진가는 세례를 집전한다.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꺼지지 않는 모세의 떨기나무처럼 대상은 이미 그것을 벗어난다. 현현하는 불꽃 속에서 떨기나무는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찬가지로, 진실을 조우하고자 하는 사진가들에게 찾아오는 대상의 틈이 열리는 순간, 대상은 온데간대 없다.


긴장과 낯섦 사이에서, 현존에 대한 불안감을 발견하고 사진가는 그곳에서 자화상을 보게 된다.

신을 본 자는 죽는다 했지 않는가. 스스로를 신이라고 착각했던 자아는 거기서 깨지고,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사진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그러므로 대상에서 쾌를 얻는다니, 대상이 주는 아우라가 있다느니 헛된 말에 속지 말자.

대상 자체로서 존재하기에 세계는 너무 불안정하다. 색은 면이 되고, 선이 된다. 선은 확장하고, 면은 이어진다. 면과 선이 물리면서 유기적으로 서로를 당기는 긴장감이 드리울 때 드디어, 세계의 틈이 열린다.


문제는 이 틈을 여는 재료는 무척이나 단순한 것에서 출발한다. 거창하고 이상적인 대상은 필요 없다. 신은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가 모르는 언어로 말을 걸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대상과 의미를 통해서 다가온다. 야곱이 신과 조우할 때 그를 초대하였던 대상은 그가 베고 자던 돌베개였다. 거기서 하늘의 문이 열리고, 거기서 현존을 보게 된다.


이처럼 사진은 보는 것이다. 그러나 곧 망각을 전제로 하는 부재와 사망을 전제로 하는 앎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곧 잊힘과 사라짐에 대한 우울을 초대한다. 사진은 기록함으로써 그것을 증명한다.



L3260723.jpg red
L3260730.jpg ramp
L3260741.jpg barrier
L3260742_1.jpg typ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