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모로코의 사하브(Friends) - 04. 이웃집 아기 양
양은 꼬리가 길까? 짧을까?
양은 주인을 알아볼까? 모를까?
그럼, 양은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를 칠까? 안칠까?
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었던 나의 친구 양순이. 양순이는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다가 발견한 내 동물 친구다. 티플렛에서는 마땅히 갈 곳도, 함께할 친구들도 없어서 출퇴근 시간 외에는 늘 집안에서 생활했었다. 그러다보니 남는 시간에 창밖을 보며 사람들 구경, 날아가는 새들 구경, 노을 지는 하늘을 구경하며 지내곤 했었다. 하지만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활발한 성격인 내가 집안에서 답답하게 혼자 지내는 것은 너무 심심하고도 외로운 일이었다.
이때 우연히 창밖을 보던 나는 우리 집 앞 1층 옥상에서 외로이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새끼 양을 발견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새끼 양이 우리 집 앞 옥상에서 살게 된지가. 그러고 보니 새벽녘에 양 울음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아직 태어난 지 2~3개월밖에 되지 않은 새끼 양이 옥상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심심하면 옥상 아래 사람들을 구경하는 모습을 보니, 집안에 갇혀 창밖을 보는 내 모습과 너무나 비슷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새끼 양을 발견한 뒤로는 나도 모르게 잘 살고 있는지 혹시나 주인집에서 잡아먹은 건 아닌지 걱정되어 수시로 양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침에 양 울음소리가 들리면 보고, 집 안에서 심심해질 때도 창을 열어 양을 관찰하면서 내 맘대로 ‘양순이’라고 이름도 지었다.
양순이를 관찰하며 지내고 있을 때였다. 새벽 6시쯤. 해가 떠오르는 어스름한 새벽녘에 양순이가 울고 있었다. ‘음매~ 음매~.’ 이 소리에 잠이 깬 나는 얼른 창문을 열어 양순이를 살펴보았다. 그러자 정말 놀랍게도 양순이가 옥상 아래 주인아주머니 쪽을 바라보며 인사를 하듯 ‘음매~음매’ 하고 울고 있었다.
양순이 소리를 듣고 나오셨는지 주인아주머니는 아슬아슬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시는데, 양순이는 그 모습을 보며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옥상 위를 이리 저리 폴짝 폴짝 잘도 뛰어다녔다. 심지어는 아주머니가 올라오자 긴 꼬리를 강아지처럼 살랑 살랑 흔들기까지 했다. 난 그때 처음으로 양 꼬리가 길다는 사실을 알았다. 양털이 덥수룩하게 덮여 있는 꼬리는 바닥에 끌리기 직전까지 길게 내려와 있었다.
‘우와, 양이 강아지처럼 주인을 보고 꼬리를 흔들다니!’
새벽녘에 본 이 흥미로운 모습을 얼른 카메라에 담았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양순이는 아주머니를 보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는 양순이가 그러든지 말든지 밥을 주시고는 옥상의 이곳저곳을 치우시며 일만 하시고 있었다.
‘양순이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온종일 아주머니만 기다렸을 텐데,
한번이라도 쓰다듬어 주시지.’
라며 혼잣말을 하던 나는 어느 날 큰 맘 먹고 양순이를 직접 만나 보기로 했다.
오로지 양순이를 만나겠다는 의지로 집 앞에 내려가서는 우선 양순이 주인집으로 갔다. 혹시라도 양순이와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주인아주머니가 오해하실 수도 있어서 먼저 허락을 받으러 간 것이었다. 양순이 주인집으로 가서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앞집에 사는 소피아인데요.
집에서 양을 봤는데 너무 예뻐서 잠깐만 봐도 될까요?”
하고 여쭤보았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모로코 사람도 아니고 낯선 동양인이 들어와 자신의 양을 구경하겠다고 하니 상당히 놀라신 듯했다. 하지만 이내 알았다며 허락해주셨고, 아주머니의 아들은 나에게 양을 보여주겠다며 앞장서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6살가량 되어 보이는 그 녀석은 아슬아슬하게 사다리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더니 나보고 얼른 올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나도 꼬마 녀석을 따라 옥상위로 조심조심 올라갔다. 생각보다 가파르고 손잡이도 없어서 꽤 무서운 사다리타기였다.
그래도 드디어 양순이를 직접 볼 수 있겠구나 싶어 신이 나서 올라갔는데, 정작 양순이는 낯선 자의 방문이 전혀 반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를 한 번 힐끔 보더니 자기 집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참 겁도 많은 녀석이었지만 양도 주인을 알아보는 게 분명했다.
어쨌든 양순이에게는 내가 이방인이니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수밖에. 양순이가 안정을 취할 수 있게 저 멀리 떨어져 주인집 아들 녀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양순이도 내가 궁금했는지 용기를 내어 슬며시 다가왔다. 이때를 놓칠까 나는 얼른 손을 양순이 코밑에 내밀며 인사를 청했다. 그러자 내 손을 킁킁 거리고 맡더니 작은 이빨들로 내 손가락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첫 만남인데 양순이가 좋아하는 음식들 좀 가져올 걸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빈손의 손님 인사를 양순이가 받아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랑 조금 친해진 양순이를 가만히 살펴보니 눈이 너무나도 예뻤다. 하얀 털 속에 커다란 눈이 대비되어 더욱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게다가 길게 난 속눈썹과 엄지손가락만큼 자란 검은 뿔까지 너무나 귀여운 인형 같았다.
“양순아, 너 너무 귀엽다.
언니는 앞집에 사는데 종종 놀러올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라며 나는 계속해서 양순이에게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그날 이후 양순이와 친구가 된 듯 종종 놀러가서 양순이가 얼마나 컸는지 보기도 하고, 창밖으로 계속 관찰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문득 혹시나 양순이가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이슬람력 12월 10일이 되면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드 알아드하(عيد الأضحى : 희생제)가 시작되는데, 무슬림 가정마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양을 잡아 신에게 바치게 되어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희생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에 옮기려 하자 하나님이 이를 멈추게 하고 양을 대신 제물로 바치도록했다는 코란 내용에서 유래한 이슬람 전통축제 ‘이드 알아드하’.
이 기간이 되면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의 전 지역에서는 집집마다 양을 한 마리씩 잡아 온 나라가 양의 피로 물들게 된다. 바로 이 축제가 양순이의 고비임에 분명했다.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동물친구 양순이가 죽을까봐 너무나 걱정되는 마음에 나는 큰 맘 먹고 양순이 주인아저씨를 찾아가 부탁하기로 했다.
“아저씨, 혹시 양순이를 먹을 건가요?”
제발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라도 양순이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물은 것이었지만, 아저씨는 내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허허 웃으며 대답하셨다.
“양이 아직 작아서 못 먹어. 나중에 더 크면 먹어야지.”
“아저씨, 양순이 안 먹으면 안돼요? 제발 죽이지 마세요.”
울상이 되어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보시더니 아저씨는 나를 달래며 “알았어. 알았어. 지금 안 먹을 테니 걱정 마.”라고 하셨다. 당장은 먹지 않는다는 아저씨의 대답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날 이후 양순이의 뿔이 조금씩 더 자라며 몸집이 커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아파왔다.
‘양순아 너무 빨리 자라지 마라. 위험하단 말이야.’
라고 혼잣말을 하며 창밖으로 양순이를 걱정스레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 지 어느새 부쩍 자라 옥상에 앉아 있는 양순이. 이제는 터줏대감처럼 한 자리에 턱하니 앉아서 거리를 오고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양순이는 알까? 내가 양순이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양순이를 보는 것이 외로운 나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곤 했었는지 말이다.
이후 양순이는 점점 몸집도 커지고 머리의 뿔도 멋들어지게 자란 어른 양이 되었다. 물론 슬픈 운명이 정해져 있었지만, 내 가슴 속에서 만큼은 영원히 살아있을 양순이. 초롱초롱 반짝이며 낯선 나를 이빨로 깨물며 반겨줬던 양순이를 난 영원히 기억하련다. 누가 뭐래도 나의 외로움을 달래준 나의 티플렛 친구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