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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a Mar 18. 2018

#30. 자식을 위한 엄마의 사랑, 메리엄

제4부 모로코의 사하브(Friends) - 03.자식을 위한 엄마의 사랑

3. 자식을 위한 엄마의 사랑, 메리엄     

  

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 따뜻한 말. 

말 한마디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말.

그 한마디는 바로 ‘어머니’가 아닐까? 

모로코에서 만난 어머니들. 

그들도 역시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자식의 행복을 바라며 기도하는 위대한 분들이셨다. 


마음 따뜻한 농부의 아내, 메리엄     

  

시민의 집 막내 선생님과 이름이 같은 메리엄은 작고 통통한 체격에 눈빛이 반짝거리는 40대 아주머니다. 티플렛(Tiflet)에서는 알아주는 부자인 그녀는 2남 1녀를 둔 모로코의 평범한 어머니이자 순박한 농부의 아내이기도 하다. 그의 남편은 키가 크고, 수염을 기른 서글서글한 인상에 가족을 끔찍이 사랑하는 순박한 농부다. 한 눈에 봐도 서로를 너무 사랑하는 행복한 메리엄 가족.      


메리엄 아주머니와 남편

     

메리엄 아주머니는 내가 사는 집의 주인이었는데, 내가 처음 티플렛에 정착하는 동안 메리엄 가족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생활용품을 사는 것에서부터 꾸스꾸스를 먹는 금요일 또는 라마단 때 초대해주며 혼자 사는 나를 고맙게도 많이 챙겨주었다. 이렇게 가끔 차 한 잔을 마시러 가면 서로의 안부도 묻고 이런 저런 수다도 떨며 메리엄 가족과 가깝게 지냈는데, 한번은 꾸스꾸스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 아주머니에게 꾸스꾸스 만드는 법을 물어보았었다.      


 “메리엄 아주머니, 꾸스꾸스 만드는 거 어렵나요?
너무 맛있어서 한국에 가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어서요.”
 “소피아. 꾸스꾸스 만드는 거 하나도 안 어려워. 내가 만드는 거 알려 줄게.
다음 주 금요일 아침 일찍 우리 집으로 와.”
 “와, 정말요? 알겠어요. 제가 준비해갈 건 없나요?”
 “준비할 거 하나도 없어. 그냥 몸만 오면 돼.”     


금요일 아침 난 꾸스꾸스를 만든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메리엄 아주머니 댁을 찾아갔고, 아주머니는 채소를 씻는 것부터 다듬고 찌는 것 까지 차근차근 알려주셨다. 그런 아주머니 옆에서 일손을 돕는다고는 했지만 사진만 열심히 찍었을 뿐 실상 요리는 메리엄 아주머니 혼자 하셨다. 하지만 그날 먹은 꾸스꾸스는 내가 직접 참여해서인지 왠지 더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모로코 전통음식 "꾸스꾸스" 레시피>


꾸스꾸스 만드는 과정 1 (야채, 채소 다듬어 찜기에 넣기)
꾸스꾸스 만드는 과정 (야채, 채소 다듬어 찜기에 넣기)
꾸스꾸스 만드는 과정  2(스물과 고기를 푹 찐다)
메리엄 아주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만든 꾸스꾸스 완성!


물론 꾸스꾸스가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찜 요리다 보니 그날 이후 혼자 꾸스꾸스를 만들어 보지는 못했지만, 아주머니가 선물로 주신 꾸스꾸스 요리책으로 언젠가 꼭 만들어보리라.     


메리엄 아주머니의 꿈 ☆     

  

이렇게 서로 요리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하게 지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메리엄 아주머니의 꿈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메리엄 아주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총명한 눈빛과 야무진 얼굴의 당찬 이미지가 인상적이었기에 메리엄 아주머니의 꿈이 더욱 궁금했었다.   

   

 “메리엄 아주머니, 아주머니의 꿈은 뭐예요?”
 “나? 호호호. 오래전 이야기인데. 사실 내 꿈은 의사였어.”
 “정말요? 아주머니 공부 잘 하셨나 봐요.”
 “그럼. 20살 때 대학시험 봤었는데,
프랑스에 있는 의과 대학에 합격하기도 했었는걸!”
 “우와! 진짜요? 그런데 왜 프랑스로 대학진학을 안하셨어요?”
 “음. 물론 나도 가고 싶었지. 그런데 부모님이 반대하셨어.”
 “어머, 왜요?”
 “부모님은 여자가 프랑스로 혼자 가서 유학생활 하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셨거든. 그래서 오빠만 프랑스로 공부하러 갔고 난 포기했었지 뭐.
그래서 그냥 카사블랑카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했어.”
 “아, 너무 아쉬워요. 많이 속상했겠어요.”
 “그러게.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냥 프랑스 갈걸 그랬어. 그런데 어쩌겠어.
이미 지나간 일인걸. 그래도 그때 프랑스 의과대학 합격증은 집에 붙여 놨잖아.
우리 아이들도 보고 공부 열심히 해서 엄마 대신 의사하라고. 호호호.”
 “하하하. 정말요? 잘하셨어요. 아이들도 엄마가 대단하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래야 할 텐데 말이야. 호호.”     

  

'여자'라는 이유로 포기해야 했던 의사의 꿈. 물론 아주머니는 웃으며 지난일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아주머니의 말 속에서 깊은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아주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나는 얼른 ‘과거의 꿈’이 아닌 ‘현재의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아주머니, 옛날 꿈은 의사였잖아요. 그럼 지금 꿈은 뭐예요?”
 “지금? 글쎄. 지금은 뭐 우리 아이들이 잘되는 거지.
나처럼 하고 싶은 거 못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사실 뭐 아이들이 나 대신 의사가 되어주면 너무 좋겠지.
하지만 의사가 안  돼도 상관없어.

엄마가 되면 아이들이 건강하게 커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고 행복하거든.
그래서 그냥 건강하게 자라서 좋아하는 사람 만나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면 돼.

그것보다 더 바라는 건 없어. 호호.”     

  

자신은 비록 의사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자식들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게 뒷바라지를 하며 자식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꿈꾸는 메리엄 아주머니. 2남 1녀의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매일 아침 아이들을 데리고 수도 라바트(Rabat)로 출퇴근 하시는 아주머니. 


그녀는 자신의 모든 일과가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지만 그 속에서 또다시 꿈을 꾸고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에 가슴 깊이 행복해했다.  자식을 위해 무한히 희생할 수 있고, 아낌없이 베풀며, 자식의 행복을 꿈꾸는 아주머니의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부모님의 마음이 아닐까.      


메리엄 아주머니의 아이들
메리엄 아주머니와 두 아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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