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모로코의 사하브(Friends) - 02. 음악을 사랑한 꿈 지기
매일 아침 7시가 되면 모로코의 관광도시 마라케시에는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기 위한 여행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수십 여 명의 인원은 15명 정도로 나누어지고, 한 명의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팀을 구성해 2박 3일의 사하라 사막 여행을 시작한다.
마라케시에서 사하라 사막까지는 620km가 넘는 장거리 여행길이라 현지인 가이드들은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루에 12시간씩 운전을 해야만 한다. 2박 3일 동안 꼬불꼬불 아틀란티스 산맥도 넘어야 하고, 황량한 사하라 사막에 모래바람을 맞으면서 달려야 하는 사막투어 가이드들. 그 속에 호센이 있었다.
호센을 처음 만난 건 사하라 사막으로 향하는 버스에서였다. 사실 모로코의 일상에서 다른 언어보다도 데리자(모로코식 아랍어)를 많이 사용하다보니 외국인들과 이야기할 때 종종 나도 모르게 데리자가 가장 먼저 튀어나오곤 한다. 아마도 이때 역시 외국인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나도 모르게 데리자를 했던 것 같다. 낯선 동양 여자아이가 데리자를 하는 모습을 발견한 호센. 신기했는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어! 모로코 말 할 줄 아네요?”
“네, 저 모로코에 살거든요.”
“아, 정말요? 어디에 살아요?”
“티플렛이요. 아세요?”
“아... 아.. 라바트 옆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요? 당연히 알죠!
그런데 왜 큰 도시에서 안 살고 티플렛에 사세요?”
“사실 전 한국에서 자원봉사자로 모로코에 왔어요.
그래서 지금 티플렛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어요.”
“선생님이요? 오~ 멋진데요!”
“하하. 감사합니다.”
자그마한 동양 여자아이가 쫑알쫑알 모로코의 말을 하는 것이 신기했는지, 호센은 잠시 쉬는 카페에서 다른 동료 가이드들에게 나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야. 모하메드. 이 친구 소피아인데 우리말 할 줄 안다!
티플렛에 사는 유치원 선생님이래.”
“아, 정말? 안녕하세요. 소피아. 전 모하메드예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저는 소피아예요. 만나서 반가워요.”
“우와, 진짜 모로코 말 잘 하시네요. 어디서 배웠어요?”
“감사합니다. 데리자는 라바트(Rabat)에서 두 달간 배웠어요.”
이렇게 호센의 소개로 나는 끊임없이 사막 투어 가이드들에게 자기소개를 하고, 악수를 하고, 비즈를 하며 우리 팀 외국 친구들보다 현지인 사막 가이드들과 더 친해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호센은 중간에 쉬는 카페에서 내가 장식품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어느새 다가와서는 “소피아, 이거 맘에 들어? 사려고? 잠깐만, 아저씨 이 친구 제 여동생인데요. 우리말(데리자)도 할 줄 알아요. 좋은 거 있으면 싸게 파세요.”라며 모로코 사람들 특유의 오지랖과 친절을 베풀기까지 했다. 게다가 내가 앉은 자리는 호센이 운전하면서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운전석 바로 뒷자리였기에 2박3일 동안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치 오랜 친구 같은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사막으로 가는 길이 너무나 멀기 때문에 첫째 날 저녁은 아틀란티스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계곡에 위치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보통은 피곤하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모두들 각자 방에 들어가 쉬지만, 이날은 음악을 좋아하는 호센과 친구들 덕분에 모로코 전통음악에 맞춰 외국인들과 춤을 추며 신나는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모로코 음악에 취해 여행객들과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있는데, 호센도 그 속에서 동료들과 북을 두드리며 신나게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가만히 살펴보니 운전할 때와는 달리 유난히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호센의 북 치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었다.
모로코 전통 음악에 맞춰 한판 신 나게 논 다음 날. 다시 사하라 사막으로의 먼 길을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또다시 호센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나는 호센의 북치는 실력을 칭찬하며 물었다.
“호센, 어제 북 너무 잘 치던데요? 멋있었어요.”
“하하. 정말? 고마워. 사실 나 음악을 무척 좋아해.”
“그래요? 어쩐지, 너무 잘하시더라. 음악을 따로 배웠었나 봐요?”
“음... 예전에 피아노를 배웠었지.
음악을 좋아해서 친구들과 그룹으로 음악을 하기도 했었는걸.
지금도 친구들은 음악을 하고 있어.”
“그렇구나. 그런데 왜 호센은 음악을 그만 뒀어요?”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우리 집은 저 아틀란티스 산에 있는 작은 마을에 있거든.
거기에 어머니랑 동생들이 살고 있는데, 생활이 넉넉하지가 않아.
그리고 거기서는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많지도 않고.
그래서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려고 마라케시로 나와서 직장을 구한거야.”
“아... 그랬구나. 지금 음악을 못하게 돼서 많이 속상하겠어요.”
“음. 같이 음악 하던 친구들이 음악 열심히 하는 거 보면 속상하긴 하지만 괜찮아.
나는 사막 가이드 일하면서 외국인 손님들하고 음악 할 수 있잖아.
모로코 음악을 소개도 해주고 말이야. 어제처럼.”
“맞아요. 정말 멋졌어요. 게다가 호센은 음악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도 잘하잖아요.”
“하하. 잘하기는. 사실 친구가 사하라 사막 가이드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해서
영어를 독학하고 가이드가 된 거야.”
“네? 영어를 독학 한 거라고요? 와. 정말 대단해요. 호센.”
“하하. 고마워 소피아.”
이렇게 농담 반 진담 반 시작된 그와의 이야기는 호센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아쉬움, 현실의 쓸쓸함을 남기며 끝이 났다. 지금은 비록 사하라 사막 투어를 담당하고 있지만 여전히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그리워하는 그의 눈빛과 말끝에서 슬픔과 아쉬움이 묻어 있어 가슴이 아팠다.
가슴 속에 열정도 많고, 꿈도 많은 호센. 음악을 사랑하지만 영어를 독학하며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이라는 꿈을 포기해야 했던 호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손님들에게 늘 웃으며 친절을 베풀고, 운전하느라 지쳤을 텐데도 손님들을 위해 북을 치며 그 순간을 진심으로 즐기는 그.
음악을 더 이상 못하게 되었지만 외국인친구들에게 모로코 음악을 들려주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는 그는 오늘도 사하라 사막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힘든 삶을 이겨내고 마음속 음악을 연주하고 있겠지?
음악이라는 미래를 꿈꾸지만 지금 당장은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순응해 살아가고 있는 호센. 하지만 짧은 만남으로도 그의 꿈과 열정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지금처럼 꿈을 간직하고, 가슴 속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그가 언젠가 자신의 꿈을 세상에 마음껏 펼치며,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