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은하 - ep13 불면증

이동조사원 P가 발행한 16개의 기묘한 에피소드

by 이동조사원 P

에피소드 13

불면증



알브레히트 뒤러 <멜랑콜리아 I>


귀에서 계속 비틀즈의 노래가 맴돌고 있다.

“She wouldn’t say. I say something wrong.”

예스터데이. 그렇다.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노래가 몇 주 째 내 귀를 맴돌고 있다. 여기는 지구와는 정반대 편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곳에 지구인이라고는 나 혼자 뿐인데도 말이다.

나는 지구를 떠나면서부터 지구의 모든 것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음악으로부터 가장 먼저 벗어나야만 지구에서의 기억을 잊어버리기 쉬웠을 것이다. 그래서 지구로부터 흘러나오는 전파들만 수집하여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은하 히치하이커들에게 판매하는 플레이아데스 성운계 행성 B612의 악덕 상인을 만났을 때도 나는 거의 진저리를 쳤다. 어떻게 아직 태양계조차 벗어나지 못한 지구인들의 음악을 저렇게 자기 것인 양 팔고 있는지. 그런데 알고 보니 한 둘이 아니었다. 은하 중심부의 수많은 항성계에서는 그처럼 지구의 음악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 아니 그 존재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로부터 멀어지고자 했다. 지구의 모든 것이 싫어서 지구를 떠나 은하 히치하이킹 시스템에 올라탄 나에게 지구의 음악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들은 의외로 집요했다. 내가 지구 출신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지구의 음악을 담은 스팸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심지어 어떤 상인은 나에게 무료로 음원을 제공해 주겠다면서 지구의 최신 유행 음악을 가르쳐 달라고도 했다. 아직 인터페이스 전환 시스템을 구입하지 못한 게 한스러웠다. 은하 어디를 가든지 지금 나의 모습은 그들에게 지구인으로 보일 게 당연한 게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이곳으로 왔다. 이곳 은하의 또 다른 반대편 말이다.

지구로부터 궁수자리 알파성까지 직선으로 은하수를 건너와 또 그만큼 직선으로 은하수를 건너면 바로 이곳에 도착할 수 있다. 항성계 뮤(μ) 시스템. 그 6번째, 지구와 비슷한 크기의 행성. 은하 중심부로부터 아직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이 행성에선 은하 중심부의 엄청난 별빛 때문에 지구 쪽 항성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음원 상인들의 광대한 은하 네트워크에서도 벗어나 더 이상 그들의 스팸 메시지를 받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나는 지구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은 것이다.


"끝이야! 더 이상 연락하지 마. 나 상관 말고 잘 살아."

지구에서 내가 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자 지구인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그날 밤 나는 그 지긋지긋한 곳을 떠났으니까. 그것은 정말 뜻밖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그를 내버려 둔 채 차를 몰고 찾아간 바닷가. 그곳에서 나는 정말 우연히 놀라운 광경을 훔쳐보게 되었다. UFO! 그렇다. 그것은 흔히들 말하는 미확인 비행 물체였다. 파란색 상자처럼 생긴 그것은 마치 (실제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고래의 숨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불과 1, 2 미터 위 공중에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어떤 존재가 있었다. 분명 지구인 여자와 같은 모습을 한 그 존재는 막 그 비행 물체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잠깐만요."

나는 다급하게 그녀, 혹은 그 존재를 불렀다. 그 존재는 나를 보자 무척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존재는 이내 그 비행 물체 안으로 흡수되듯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잠시 후, 비행 물체에서 파란빛이 내 쪽으로 흘러 왔다.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내 몸이 공중에 들렸다. 그리고 나는 그 비행물체 안으로 끌려들어 갔다. 나는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그곳은 나의 방 안이었다. 그때였다.

"정신이 들어요?"

방 안 가득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된 거죠? 여긴?"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간단히 말하죠."

목소리는 내 말을 자르듯이 말했다.

"당신은 은하 히치하이킹 시스템에 가입하시겠습니까?"

"무슨 말이에요? 은하 히치하이킹 시스템이라니."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은하 히치하이킹 시스템에 가입하는 것과 가입하지 않는 것."

"가입하면 어떻게 되죠?"

"그러면 우리가 당신의 목적지에 당신을 내려 줄 겁니다. 물론 그 목적지가 우리 경로와 일치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만."

"가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조금 전까지 당신의 기억은 지워지고 원래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원래대로라면?"

"방금 전 지구의 그 바닷가로."

"그럼 여기는 어딘가요? 제 방이 아닌가요?"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당신은 은하 히치하이킹 시스템에 가입하시겠습니까?"

"네? 네."

"정확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은하 히치하이킹 시스템에 가입하시겠습니까?"

"네."

벗어나고 싶어서였을까? 나는 분명히 그렇게 대답했다.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분명히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이제 당신은 정식으로 은하 히치하이킹 시스템 회원으로 가입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은하 히치하이킹 시스템을 규정한 은하 교통과 통신법 제1972조 11항에 따라 당신에게 필수적인 생존 키트를 제공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본래의 인터페이스로 돌아가겠습니다. 너무 놀라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인터페이스 변경 후 몇 가지 공식 인터뷰가 진행될 것이니 안내에 따라 조정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목소리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명이 꺼졌다. 그리고 예의 그 고래 숨소리 같은 소리가 엄청난 크기로 온 방 안을 울렸다. 나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다시 조명이 켜졌다. 그런데 그곳은 더 이상 내 방이 아니었다. 텅 빈 하얀 공간. 신기하게도 그곳은 벽과 모서리가 보이지 않았다. 출입구 같은 곳도 없었다. 이상한 것은 분명 텅 빈 공간인데도 마치 가벼운 솜털 이불 안처럼 편안함과 따뜻함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졸음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확인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입구가 어디죠? 조정실로 오라면서요?"

그러자 내 눈 앞에 파란 사각 공간이 하나 생겼다.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자 좀 전의 그 하얀 공간이 사라지더니 내 발걸음 앞으로 파란 공간이 계속 확장되어 갔다. 긴장감을 억누르며 파란 공간으로 계속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하얀 사각 공간이 눈 앞에 생겼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조정실이었다. SF 영화에서 흔히 보아왔던 우주선의 조정실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좀 전 내가 있던 곳과 같은 하얀 공간에 모니터처럼 생긴 화면들이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그곳에 그녀, 아니 그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인간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서 와요."

나는 주춤주춤 그녀의 앞으로 갔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잡아먹지 않을 테니까."

그녀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당신, 외계인 맞나요?"

"역시 지구인들은 항상 같은 질문이군요. 네, 맞아요. 외계인."

"그런데 "

"그런데 어째서 지구인의 모습이냐구요? 그건 당신을 위해서죠. 당신이 보기엔 이 모습이 편할 거예요."

"그럼 모습을 바꿀 수 있단 말이에요."

"네. 일단 거기까지. 지금 중요한 건 당신에 대한 인터뷰라구요. 빨리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거든요."

"인터뷰라면?"

"당신이 나의 우주선에 히치하이킹하게 된 이유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서 보고서를 제출해야 돼요. 그래야 벌금 안 물어요."

"벌금이라니요?"

"아, 걱정 말아요. 당신이 내는 게 아니니까."

"네. 그렇군요."

"이제 인터뷰를 시작하죠. 먼저 당신은 왜 내 우주선에 탔죠?"

"그건, 그냥 궁금해서."

"좋아요. 다음 당신의 목적지는 어디죠?"

"목적지라면?"

"어느 항성계에 가고 싶냐고요."

"그럼, 정말 우주로 간다는 말인가요?"

"물론이죠.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의 목적지는 어디죠?"

"아직, 몰라요."

"아직 모른다. 좋아요. 그건 가는 도중 결정해도 되니까. 마지막으로 당신은 어떤 존재인가요?"

"어떤 존재?"

"어느 행성의 누구이며 성향은 어떠한가."

"전 지구라는 행성의 R이라고 해요. 성향은 그냥 평범해요."

"평범하다. 좋습니다. 이것으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그것뿐인가요?"

"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자기 앞의 어떤 모니터를 터치했다. 그러자 그 모니터는 휙 사라졌다.

"저기."

"잠시만요. 이것만 처리하고 당신의 질문을 받도록 하죠. 경로를 설정해야 하거든요."

"아니 잠깐만요. 제가 지구를 떠난다구요? 전 아직 준비가 안됐어요."

그러자 그녀는 멈칫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이제 지구를 떠나려 할 겁니다. 좀 전 당신의 인터뷰를 통해 그걸 확신하게 되었거든요."

"전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좋아요. 다시 한번 묻죠. 당신은 지금 지구를 떠나겠습니까?"

그녀가 말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마음 어느 구석에선가 알지 못할 확신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네."

"그것 봐요. 은하 히치하이킹 시스템의 통계는 정확하다니까요. 그럼 이제 경로를 설정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줘요."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또 다른 모니터를 바라보며 뭔가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조종실 전체를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부터 지구 인력권에서 벗어납니다. 충격에 대비하세요."

충격에 대비하라니? 도대체 어떻게? 우주 영화에서 보았듯이 충격에 대비하려면 무엇인가 지탱할 것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조정실 안은 모니터만 둥둥 떠다니는 텅 빈 공간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조작을 마친 그녀가 나를 보더니 자기처럼 하라는 듯이 살짝 점프를 했다. 그러자 놀랄 일이 일어났다. 그녀의 몸이 점프한 그 상태로 내 눈 앞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것보다 나는 그제야 이 공간 안에서 중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서둘러요."

그녀는 다급한 듯 말했다. 나는 그녀처럼 살짝 점프를 했다. 그런데 너무 세게 점프를 한 탓에 그녀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멈추고 말았다. 그러자 그녀는 빙긋 웃더니 다시 한번 점프를 해서 나와 눈을 맞추었다. 잠시 후 나와 그녀의 몸이 조금씩 아래로 움직여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이게 충격이란 건가요?"

"네."

그런데 그녀는 좀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1분 남짓이었을까?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지구 인력권을 벗어났습니다. 이제부터 자유롭게 행동하셔도 됩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구를 벗어나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이네요."

"그럼, 당신은 전에도 지구에 와 본 적이 있단 말인가요?"

"물론이죠. 소개하죠. 전 은하 옥션의 2등 큐레이터 A라고 해요."

"은하 옥션 큐레이터? A?"

"지구 말로는 그렇죠."

"그런데, 당신이 정말 외계인이라면 어떻게 우리가 말이 통하죠? 그리고 은하 옥션은 또 뭔가요? 그리고 정말 지금 내가 우주공간에 있는 건가요?"

그녀는 빙긋 웃었다. 여자인 내가 봐도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미안해요.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괜찮아요. 자주 겪는 일인걸요. 먼저, 우리가 말이 통하는 건 이 우주선의 옵션이에요. 전 은하를 돌아다니는 나 같은 큐레이터에게 자동 통역 장치는 필수 옵션이에요. 그리고 은하 옥션은 내가 일하는 회사구요. 은하계의 숨은 예술가들을 발굴해 내는 게 내 일이에요. 끝으로 당신은 지금 우주 공간에 있는 게 맞아요."

"정말 여기가 우주 공간?"

"컴퓨터! 외부 화면!"

순간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나와 그녀가 있는 곳이 우주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답고 거대한 지구가 내 발 밑에 있었다. 나의 별 지구는 내가 아는 한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답게 보였다. 저 멀리 내가 살았던 나라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얼마간 그 눈부신 모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런데, 걱정이 하나 있어요."

"무슨 걱정인지 알아요. 남겨둔 이들 때문이죠?"

"네."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그냥 시간이 해결해 주도록 내버려 두는 것. 아니면 당신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

"내 존재를 지워버린다는 건 어떻게?"

"간단해요. 저기 있는 모니터에 입력키만 누르면 돼요. 그러면 지구에서 당신과 관련된 모든 데이터는 사라질 거예요."

"그건 데이터만 지워지는 거잖아요. 사람들의 기억은 남잖아요."

"기억도 데이터예요. 함께 지워질 거예요."

"사진! 사진 같은 것은?"

"그것도 역시 지워질 거예요. 물론 그 사진들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게 남긴 하겠지만."

"놀라운데 기분이 이상하군요. 내가 이렇게 있는데 나의 존재가 지워진다니."

"그렇죠.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메커니즘은 아니에요. 사실 더 문제는 당신이죠. 당신이 견딜 수 있겠느냔 거죠."

"전, 지구를 떠나고 싶어요. 여기선 더 이상 희망이 없어요."

"무슨 일인지 묻지는 않겠어요. 어차피 당신의 선택이니까."

"혹시 돌아올 수도 있나요?"

"당신이 원한다면. 그리고 나처럼 지구로 오는 이를 만날 수 있다면. 아니면 또 모르죠. 당신이 그곳에 가서 이런 우주선을 장만할 수 있다면 올 수도 있겠죠."

"그렇군요. 그런데 혹시 돌아오더라도 지구에서 난 사라진 존재겠죠?"

"말했잖아요. 그건 데이터라고. 복구하면 돼요. 저 입력키, 단순히 삭제만 하는 게 아니라 백업도 하거든요. 물론 백업과 복구 사이에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프로그램으로 보정하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

"정말, 놀랍군요."

"지구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겠죠. 자, 이제 다른 질문은 더 없나요? 없으면 출발해야 될 것 같네요. 너무 오래 지체했거든요. 그리고 다른 질문들은 가는 도중에 해결해도 되니까."

"잠시만요. 혹시, 누군가를 보여줄 수 있나요?"

"그 사람 말이죠?"

"그 사람이라니?"

"2시간 전에 당신이 차 버린 남자."

"그걸 어떻게?"

"우주선엔 그냥 들어올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모든 것이 스캔되니까. 그런데 정말 그 사람이 보고 싶나요?"

"어차피 마지막인데요. 뭐."

"좋아요. 그럼 한 번 찾아보죠. 컴퓨터! 그 사람을 찾아봐."

잠시 후 지구를 비추던 화면이 조금씩 확대되기 시작했다.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러더니 복잡한 화면을 거쳐 어떤 한 거리가 나왔다. 그리고 한 건물 위에서 화면이 멈추었다.

"저 안에 있나 보군요. 그럼 얼굴을 볼 수는 없을 거예요."

카페 올드. 그곳은 그와 나의 사랑이 시작된 곳이었다. 그리고 2시간 전 그를 버려두고 온 곳이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나간 후에도 그는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게 더 싫었다. 하긴 모든 것이 넌더리가 났으니 그렇게 그를 버렸겠지만 말이다. 그때였다. 익숙한 옷차림의 한 남자가 카페에서 나왔다. 그러더니 하늘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이 빠르게 확대되었다. 마치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아는 것처럼 화면 속의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많이 울었는지 눈이 벌게져 있었다. 가슴이 조금 저려왔지만 더 보기 싫었다.

"이제 됐어요."

화면이 사라지고 다시 조정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자, 이제 출발할게요. 화성 궤도를 벗어나면 워프 항법으로 진행할 거예요."

"태양계를 벗어나려면 얼마나 걸리죠?"

"지구 시간으로 48시간이면 돼요."

"그렇군요. 그럼, 이제 저를 지워주세요."


그렇게 나는 지구를 떠났다. 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이제 지구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말했지만 나는 될 수 있는 한 지구로부터 멀어지려고 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항성계 뮤 시스템. 지구 시간으로 얼마가 걸렸는지 알 수는 없다. 워프 항법 도중 지구에서 가져온 시계는 멈추었다. 운이 좋았을까? 은하 옥션 큐레이터 A는 선한 존재였다. 그녀로부터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물론 반대로 그녀는 나에게서 지구의 예술과 관련한 수많은 정보를 얻었다며 감사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도움으로 편하게 은하 중심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알파 시스템에서 헤어질 때 그녀는 두 가지 선물을 주었다. 하나는 나의 DNA를 팔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정보였다. 덕분에 수시로 머리카락을 뽑아야 하긴 했지만 혼자서 우주여행을 하기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은하 캐시를 모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백과사전식 잡지다. 잡지라고는 하지만 생긴 건 요즘 지구에서 유행하고 있는 태블릿 PC처럼 생겼다. 차이가 있다면 업그레이드할 때 하드웨어의 인터페이스도 함께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은하의 수많은 항성과 행성들과 생명체들에 대한 정보를 실어 놓은, 이름 그대로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다. 나 같은 존재들에게 필수 아이템인 것이다. 지금 이 글도 안내서에 쓰고 있다. 이 글이 지구의 당신들에게 보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인간이란 존재의 가장 좋은 점은 낯선 곳에서는 자기의 성격까지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존재가 없는 이곳에서 나는 지구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다. 지구에서 나는 신경쇠약 직전이었다. 일도 가정도 사랑도 무엇 하나 나를 힘들지 않게 하는 게 없었다. 행복이란 것을 느낀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그는 심지어 이런 말까지 했었다.

"너는 왜 고마우면 고맙다, 미안하면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해?"

왜냐하면 고맙지 않았고 미안하지 않았으니까. 내 머릿속엔 누군가에게 고맙고 미안한 감정을 느낄 여유 따윈 없었으니까. 오로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으니까. 그래서 지구를 떠났다. 그를 버리고 지구에서의 나를 지웠다. 여기까지 오면서 오로지 신비한 것들 투성이인 지금과 늘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내일만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나, 행복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잠을 잘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숱한 고민과 우울로 잠 못 이루던 지구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외로움도 아니었고 지구에 대한 그리움은 더더욱 아니었다. 처음 말했던 노래. 바로 비틀즈의 예스터데이 때문이었다. 무슨 까닭인지 몇 주 전부터 잠자리에 누워 하늘의 별들을 볼 때마다 예스터데이가 들려왔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구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지구의 음악들을 외면했던 나였다. 처음엔 장사꾼들이 보내는 새로운 형태의 스팸 메시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안내서를 통해 알아보니 아직까지 그런 형태의 스팸 메시지는 없다고 했다. 아니 그 이전에 그것은 내 머릿속에 수시로 떠오르는 데이터화 된 메시지가 아니라 분명 환청처럼 귓가를 맴도는 소리였다. 소리는 귀를 막아도 들려왔다. 답답한 마음에 뇌파 분석 키트를 이용해 뇌파 분석 데이터를 주치 병원에 보내기도 했는데 별 문제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혹시나 해서 조금 위험하긴 했지만 치료 효과 98퍼센트라는 강력한 수면 유도 전파를 써 보기도 했다. 그랬더니 잠은 쏟아졌지만 예스터데이는 들려왔다. 그대로 밤을 새워 버렸다. 이상한 점은 낮에는 그 노래가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덕에 낮잠을 자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세 주가 지난 오늘 아침, 간밤에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나는 그녀, 은하 옥션 큐레이터 A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 은하에서 나와 지구인들을 제외하고는 지구에 관한 것을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게 그녀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영상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 노래, 아마 그가 보낸 것일 거예요."

"그라니요?"

"당신이 지구에 버려두고 온 그 남자."

"지구에서 어떻게 그 노래를 보낼 수 있단 말이죠?"

"엄밀하게 말하면 그가 보냈다기보다는 온 지구가 보낸 거라 할 수 있죠."

"이해가 안 되네요. 지구의 과학 수준은 아직."

"그렇죠. 그것은 지구의 과학이 아니죠. 하지만 내 직업이 바로 그거예요. 행성들의 예술 작품이 방출하는 파장을 수집하는 것. 그러다 보니 우연히 지구를 발견하게도 되었지만. 어쨌든 지구에서 나오는 파장들 중 가장 많은 것이 바로 그 노래, 예스터데이예요."

"그런데 그건 당신 같은 큐레이터의 컴퓨터가 인식하는 게 아닌가요?"

"맞아요. 하지만 좀 특별한 경우가 있어요."

"특별한 경우라면?"

"이번처럼 누군가의 강한 바람이 담겨 있는 작품은 특별한 파장을 함께 가지고 있어요. 마치 행성 전체에서 울려 나오는 파장이랄까? 그런 게 있어요. 그럴 땐 그 파장이 그 대상에게 직접 전해지기도 해요."

"그럼, 이 노래가 그가 나를 생각하며 듣는 노래란 건데. 이해가 안 돼요. 지구에서 나는 지워졌잖아요? 그에게도."

"물론이에요. 그의 뇌에서도 당신에 관한 데이터는 지워졌어요. 하지만 감정은 지워지지 않죠. 아마 그의 가슴 한 구석에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이 남아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대상을 알 수 없는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며 그 노래를 항상 듣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지구 전체를 울려 그 그리움의 대상인 당신에게까지 전해진 걸 거예요. 혹시 그 노래의 어느 부분이 주로 들리는지 알아요?"

"Why she had to go, I don't know. She wouldn’t say. I say something wrong."

"그렇군요. 그는 당신이 왜, 아무 말없이 떠났는지, 자신이 무엇을 잘못 말했는지 몰라서 아파하고 있군요."

"그럼 결국 내 불면증의 원인이?"

"그래요. 온 지구를 울리고 수 만 광년의 거리를 건너온, 그의 그리움과 미안함이죠."

나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그제야 그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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