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은하 - ep8 수라 修羅

이동조사원 P가 발행한 16개의 기묘한 에피소드

by 이동조사원 P

에피소드 8

수라 修羅*



“거미 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하였다. 퇴근길, 꽉 막힌 도로에서 끼어들기하는 차를 피하려고 핸들을 급하게 돌리는데 갑자기 눈 앞에서 뭔가가 하나 셔츠 앞섶으로 ‘툭!’하고 떨어지는 게 아닌가? 아무 생각도 없이 발작적으로 셔츠를 털었다. 덕분에 내 차는 제 방향을 잃고 차선에 걸친 채로 움직였고 뒤에서는 빵빵거리며 쌍라이트를 켜는 난리를 피웠다. 급하게 핸들을 고쳐 잡고 차를 바로 세우고 한숨을 쉬었다. 녀석은 언제 갔는지 빨간 비상등 버튼 위에 날름 앉아 있었다. 그것은 작고 새까만 새끼 거미였다.

곡예하듯 오른손을 뻗어 조수석 글로브 박스를 열고 휴지를 한 장 꺼냈다. 녀석도 놀랬는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최대한 살짝 녀석을 휴지로 쌌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휴지와 함께 밖으로 던져 버렸다. 눌러서 녀석을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집 안에 들어온 거미는 죽이는 게 아니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나서 괘씸하지만 그렇게라도 보내 주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들어와서 얼른 차창을 닫았다. 그런데 언제 왔는지 여태 뒤에서 따라오던 1톤 트럭 하나가 옆으로 붙더니 차창을 내리며 뭐라고 한다. 차창 밖으로 휴지를 버렸다고 욕하는 것 같았다. 무시하고 다시 내 갈 길을 갔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 거미 쓸려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다음 날 아침, 차의 시동을 켜려다가 다시 흠칫 놀랐다. 이번엔 제법 큰 거미 한 마리가 그 자리, 빨간 비상등 버튼 위에 납죽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얘들이 도대체 어디 있다가 남 차 안에서 이 난리를 피우지? 나는 귀찮은 듯 다시 휴지로 녀석을 싸안았다. 휴지 너머로 녀석의 끈질긴 몸부림이 느껴졌다. 그래 봤자야 임마! 이건 내 차라고……. 너희들이 있어봤자 먹을 것도 없단 말이야. 나는 차의 문을 열고 녀석을 살며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차 문을 닫고 시동을 켰다. 그러자 울려오는 핸드폰 소리. 사무실이었다. 급한 일이니 빨리 오라고 한다. 급하게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한참 달리다 보니 항상 막혔던 구간이 또 막혀 있었다. 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곡예운전을 시작했다. 그런데 1차로로 차선을 변경하려다가 소름이 쭉 끼쳤다. 녀석이었다. 좀 전에 주차장에서 내려준 그 거미가 운전석 쪽 사이드 미러 위에 앉아서 차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짜증이 났다. 때마침 8차선 도로가 시원스레 뚫렸다. 가속 페달을 밟았다. 금세 시속 100km를 넘어섰다. 사이드 미러 위의 녀석이 몸을 잔뜩 웅크리고 바람에 저항하고 있었다. 좀 더 깊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녀석의 작은 몸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차의 속도는 계속 올라갔다. 그때였다. 갑자기 다른 차들이 속도를 줄이는 게 아닌가. 혹시나 싶어 앞쪽을 보았다. 이런 젠장! 경찰이었다. 이동식 과속 단속 카메라가 내 차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급하게 속도를 줄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규정 속도 70km 도로에서 나는 120km로 달리고 있었다. 입에서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나왔다. 사무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니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 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다음날, 휴일이다. 차 문을 열자마자 비상등 빨간 버튼 위로 눈이 갔다. 다행히 아무것도 없었다. 가까운 바닷가에 가기로 약속했다. 시동을 켜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오디오의 볼륨을 올렸다. 어쩐 일인지 도로도 막히지 않았다. 왠지 모를 웃음이 나왔다. 잠시 후 도착한 그녀의 집 앞. 그녀는 예쁜 옷을 입고 예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는 차에서 먼저 내려 바닷가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녀는 차 안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다. 늦가을 바다는 고요했다. 바람도 별로 불지 않았고 물결도 잔잔했다. 좋은 경치를 담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차 쪽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이건 뭔가 싶어 차 쪽을 봤다. 그녀가 뭔가에 놀란 것 같은 표정으로 급하게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진저리를 치더니 자기 옷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신의 스커트 안쪽까지 손을 넣어 뭔가를 털어내고 있었다.

나는 빛의 속도로 달렸다. 그녀는 연방 진저리를 치며 차 안을 가리켰다. 이게 뭐야?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 안 조수석에는 깨알 같이 새까맣고 작은 새끼 거미들이 여기저기로 꼬물꼬물 기어가고 있었다. 엄청난 수였다. 나는 급하게 휴지를 꺼내 녀석들을 털어냈다. 하지만 녀석들은 조수석뿐만 아니라 뒷좌석까지 점령하고 있었다. 나는 불같이 화가 났다. 차 뒤 트렁크를 열고 휴대용 무선 청소기를 꺼냈다. 그리고 차 안 이곳저곳 한 곳도 빠짐없이 녀석들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정리를 마치고 바라본 그녀의 눈에는 이미 닭똥 같은 눈물과 함께 나에 대한 경멸과 실망의 표정이 맺혀 있었다.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일주일 동안 나에게 일어난 일이 모두 거미 때문이라면 누구라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일단 그렇게 수많은 새끼 거미들이 차 안에 가득했다는 것은 차 안 어딘가에 거미의 알집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녀석들이 모두 부화한 것이라면 거미가 더 나오지는 않겠지만 아직 부화하지 못한 녀석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스팀 세차장에서 차 바깥은 물론이고 차 안 구석구석과 엔진룸까지 뜨거운 스팀으로 청소했다. 청소하는 동안은 보지 못했지만 혹시 있다고 해도 큰 거미는 물론이고 알까지 모두 죽었을 거라고 한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차를 볼트와 너트 하나까지 분해해서 모조리 새로 조립하고 싶었다. 어쨌든 그 난리를 친 덕분인지 그 후 며칠 동안 차 안에서 거미는 나타나기 않았다.

그런 어느 날 아침이었다. 나는 주차장에서 있는 나의 차를 보고 또다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것은 눈 앞에 보고서도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주차장 구석 늙은 느티나무 아래 세워둔 나의 차는 거미줄에 “갇혀” 있었다. 무슨 말이냐고? 말 그대로 거미줄에 “갇혀” 있었다. 그것은 마치 거미가 자기의 먹이를 거미줄로 싸 놓은 것 같았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나 나옴직한 거대한, 아니 그보다 훨씬 거대한 거미가 있다면 가능할 것 같은 그 광경을 보고 나는 이전처럼 화가 나기보다 오히려 헛웃음이 났다. 이것은 분명 어떤 이유가 있는 게 분명한 것 같았다.

느티나무 주위를 살펴보았다. 산자락을 깎아서 만든 우리 아파트에서 가장 구석진 곳. 원래 있던 큰 느티나무 몇 그루를 모두 뽑아내고 만든 주차장. 그리고 겨우 살아남은 한 그루 느티나무 밑. 그곳은 언제나 내가 주차하는 곳이었다. 나는 큰 느티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느티나무의 한 곳, 내 차의 위쪽에 작은 구멍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거미의 집이 있었다. 그냥 나뭇가지나 집 처마에 친 거미집이 아닌 진짜 거미의 집이 있었다. 새 둥지처럼 생긴 거미의 집 말이다. 그랬다. 나는 거미의 집 앞, 아니 그들의 집에 나의 차를 주차한 것이었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와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만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백석.jpg 백석의 영생고보 교사 재직 시절을 찍은1937년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보 졸업 사진첩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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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백석의 시 <수라>에서 제목을 따오고 원문을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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