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연애 안 망한 사랑을 말할 때 내가 가져오고 싶은 노래 세 곡
이 글을 읽는 이들 다수가 연애와 사랑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애가 (대부분의 경우) 쌍무적이고 상호독점적인 관계를 지칭한다면 사랑은 그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감정과 관계들을 지칭한다.
반려동물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반려동물과 연애를 할 수는 없고 내가 누군가를 짝사랑한다고 해서 그게 연애는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연애와 사랑의 차이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 연애는 망할 수 있지만, 사랑은 망할 수 없고 또 끝나지도 않는다고.
어쨌든 이 세 곡은 망한 연애와 끝나지 않는 사랑을 노래하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덜 유명한 곡들이다.
Don't you hear my call though you're many years away?
Don't you hear me calling you?
All your letters in the sand cannot heal me like your hand
https://www.youtube.com/watch?v=kE8kGMfXaFU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한국에서 990만 관객을 동원했고 락이라는 장르에 대한 이해가 있든 없든 이제 한국에서 퀸을 아예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퀸을 알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소개하고자 하는 곡은 '퀸' 하면 떠오르는 곡은 아니긴 하지만, 아주 아름다운 노래다.
퀸의 4번째 스튜디오 앨범이자, 그 유명한 Bohemian Rhapsody와 Love Of My Life가 실린 불세출의 명반 A Night At The Opera의 다섯 번째 트랙 - ’39. 너무 밝은 빛의 그늘에 숨겨진 보석같은 곡이라고 자부한다.
이 곡은 프레디 머큐리 대신 퀸의 기타리스트이자 천체물리학자(!)인 브라이언 메이가 작사 및 작곡 그리고 보컬을 맡은 노래로, 서정적인 기타 선율과 부드러운 브라이언 메이의 목소리가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다가오는 곡이다. 아마 프레디 머큐리의 로맨틱하고 드라마틱한 보컬만 알고 있는 이들은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랄 수도 있겠다. (사실 퀸은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와 드러머 로저 테일러가 작곡/작사하거나 부른 노래도 꽤 되고, 베이시스트 존 디콘이 작곡/작사한 노래들도 적지 않게 있다. 퀸이라는 밴드는 매체에 자주 비춰지는 것처럼 ‘프레디 머큐리 +a’는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퀸의 특징 중 하나인 탄탄한 백보컬은 브라이언 메이 - 로저 테일러 - 존 디콘의 트리오가 성실하게 쌓아올린 결과이기도 하다.)
In the year of '39, assembled here the volunteers로 시작하는 가사는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래에 지구는 인류가 살 수 없도록 오염되어서 인류는 생존을 위해 다른 땅을 찾아 나서야 하게 되었다. 자원해서 우주 탐사를 나선 화자와 지구에 남을 수밖에 없는 그의 연인은 이별하게 된다. 돌아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눈물 흘리지 않으며 떠난 화자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구로 무사히 돌아오지만 우주에서의 시간 흐름과 지구에서의 시간 흐름은 같지 않고 연인은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이다. 화자는 연인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된다. 그는 모래사장에 연인의 이름을 적고 연인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러보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화자의 인생은 계속 이어져야만 하고, 그의 사랑도 슬픔도 계속 이어지게 된다.
퀸 하면 떠오르는 오페라틱한 사운드도 아니고 프레디 머큐리의 화려한 목소리도 아니다. 소박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이상의 사랑과 슬픔이 담겨 있는 위대한 노래다. 곡이 끝나고 나서 우리는 이 노래의 화자가 남은 인생을 모두 그의 사랑에 바칠 것이라는 예감을 받게 된다. 그것은 개인의 행복, 자신의 연애 대신 인류의 미래를 택하기로 결심한 화자의 속죄일 것이고 또 전하지 못한 편지이자 끝나지 않는 사랑일 테니까.
Thank you for the sun the one that shines on everyone
Now there’s a million years between my fantasies and fears
I feel love
https://www.youtube.com/watch?v=0v2pAIgFJGM
락을 안다면 모르기 어려운 이름 중 하나, 90년대를 흔든 브릿팝 웨이브의 쌍두마차 중 하나, 워킹 클래스 훌리건 형제의 밴드 - 오아시스다. 지인들은 알겠지만 필자는 오아시스의 팬으로, 정규 앨범의 모든 LP판과 CD를 모았고 싱글까지 수집하고 있다.
Don’t Look Back In Anger / Wonderwall / Live Forever - 명실상부 오아시스를 대표하는 곡들이다. 이 노래들은 너무 유명해서 들어봤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이 글은 4집의 3번째 트랙인 Who Feels Love?를 소개할 것이다.
오아시스는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형 노엘 갤러거와 프론트맨인 동생 리암 갤러거의 밴드인데, 둘은 서로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또 증오했다. 정말 지독한 연애였고 결국 밴드는 이들의 애증을 버텨내지 못하고 해체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서로에 대한 노래들을 끊임없이 발표하고 있다. 망한 연애와 끝나지 않는 사랑의 살아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오아시스의 1집은 영국을 뒤집어놓았고, 2집은 1집보다 더 크게 터졌다. 하지만 두 앨범이 너무 성공한 나머지 3집은 과소평가되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러 사고들이 겹쳐 4집을 작곡할 때의 노엘은 상태가 아주 나빴다. 그런 상태의 그가 이끈 4집은 이전과 전혀 다른 슬픔을 품게 된다. 그 슬픔은 Gas Panic! 그리고 Who Feels Love? - 이 두 곡에서 가장 진하게 묻어난다.
Gas Panic! 에서 노엘은 가족도 믿지 못할 정도의 공황과 공포를 표현한다. 불안함을 극대화시키는 기타와 그에 맞춰 성대를 갈아버리는 리암의 목소리가 청자를 공황 상태에 밀어넣는다.
하지만 같은 앨범의 Who Feels Love?에서 그는 영혼을 정화하는 사랑을 느끼고 또 믿는다.
Who Feels Love? / I Feel Love - 노엘은 그의 페르소나 리암의 목소리를 빌어 사랑을 치유하고 사랑에 치유받는다. 그는 자신이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구원받았음을 알고, 또 그 사랑이 영원히 이어질 것임을 안다.
이 곡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Thank you for the sun the one that shines on everyone / Now there’s a million years between my fantasies and fears / I feel love 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 화자는 모두에게 빛을 주는 태양에게 감사하며 그를 지배하던 환상과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그리고 그를 구원한 사랑을 느낀다.
이 사랑은 음악에 대한 사랑이고 리암에 대한 사랑이고 또 오아시스에 대한 사랑이다. 노엘은 공황을 겪으며 이후가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연애가 망할 것임을 직감했고 예측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사랑에는 끝이 없어서 노엘과 리암은 계속 음악과 서로를 사랑해대고 있다. 하라는 화해는 안 하고 서로를 향한 곡들만 주구장창 써대고 있으니 팬으로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오래 전 널, 바래다 주던 길
어쩌다 난 이 길을 달리게 된 걸까
이러다 널 만나게 될까봐 난 두려워
https://www.youtube.com/watch?v=eole6YN826o
지금은 20년대 한국 대중음악과 상당히 거리가 먼 음악들을 듣고 있지만, 중학생 때는 나도 K팝을 좋아했다. 그런 나를 밴드 음악과 락으로 이끌어 준 계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0년 11월 6일에 돌아가신 고 이진원씨, 원맨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프론트맨이자 작곡가의 ‘치킨 런’이라는 노래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야자를 하는 학교를 다녔는데, 야자 시간에 할 일을 끝낸 다음에는 멍하니 라디오를 듣는 습관이 있었다. 몇 가지 좋은 노래를 소개받을 수 있는 시간이라 꽤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질감을 가진 락커의 목소리 그리고 언더독의 삶에서 느껴지는 진짜 슬픔과 진짜 감정이 제대로 묻어나는 노래를 듣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기획 단계부터 제작된, 상품의 성질이 강한 K팝은 내게 그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하게 되었다.
곡의 분위기는 밝고 명랑하다. 기타와 드럼이 강조된 멜로디는 경쾌하게까지 들리지만, 가사는 처절하다. 키 작고 배 나온 닭배달 아저씨로 자신을 지칭하는 화자는 가수를 그만둔 치킨 배달원이고 배달 중에 옛 연인을 만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그는 누구도 자신을 몰라봤으면, 자신이 모두에게 잊혀졌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자신은 버티지 못했다고 말하며, 그는 자기 인생의 영토를 주공 1단지 - 치킨 배달을 하는 구역으로 한정짓고 세상이 자기에게 명령하는 대로 찌그러져 있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마음 속에는 죽이지 못한 음악에 대한 사랑이 있다. 그는 생활고에 기타를 팔며 울고 세상을 노래하던 과거를 생각한다. 언젠가는 다시 기타를 사겠다고 하면서도 욕망은 파멸을 불러온다는, 본인이 그 증거고 교훈을 위해 패배자인 자신을 박제해도 된다는 가사가 이어지고 노래는 자신의 영토를 다시 한 번 한정지으며 끝난다.
예쁘고 잘생긴 가수들의 사랑 노래만을 듣던 내게 이 노래는 말 그대로 세상을 뒤집어 놓는 충격이었다. 명문 대학교를 가지 못하면 인생 패배자가 되는 학교에서 학원비 100만 원이 우스울 정도로 잘 사는 친구들에게 치이며 겉으로는 외교관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돌아선 다음에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사춘기의 나는 이 노래를 듣고 화장실로 뛰쳐들어가서 아주 오래 울었다. 직업에 귀천이 있는 세상에서 패배하고 실패했지만 한때 자신은 세상을 노래하는 가수였다고, 돈을 모으면 다시 기타를 사겠다고 말하는, 끝나지 않는 사랑 앞에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종류의 일을 성공적으로 찾아가거나 명문 대학교 진학을 이뤄내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과 거기서 느껴지는 생생한 패배감이 오히려 위로를 주었다.
실패하고 넘어지고 찌그러질 수도 있지만 돈을 모아 다시 기타를 사겠다고 하는 그 끊어낼 수 없는 사랑 앞에서 나는 울었고, 내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도 사랑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노래를 처음 들은 14살로부터 12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빛요정 이진원 씨가 내 마음과 정신과 인생에 날린 역전의 홈런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패배할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삶도 사랑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14살의 나는 이 노래로 그걸 깨달았고 그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해나가며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나뿐만 아니라 당신의 인생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