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 조지 오웰 [서평]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불리는 조지 오웰의 책이다. 조지 오웰은 타임즈 선정 위대한 작가이자, BBC 선정 가장 위대한 작가로 선정된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 책은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동물농장과 1984중 하나인 『1984』다. 1984란 책의 제목은 조지 오웰이 이 책의 집필을 완료한 1948년을 거꾸로 뒤집어 미래를 향한 경고로 의도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난 앞서 언급한 세계 3대 디스토피아 고전으로 불리는 책 중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고 이 책에도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겨 읽게 됐다.
길게 끌 것 없이,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면 "전체주의에 대한 경각심 일깨우기"다. 내 방식대로 해석하면 "당신이 주인공이라면 신념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겠는가? 선뜻 대답할 수 없다면 우린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하고 조지 오웰이 묻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 책이 과연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저울질하고 있다. 나의 답은 늘 말하듯 "그딴 건 없다"이다.
글은 몇몇 사상에 관련된 '주의'들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줄거리는 전체주의가 극으로 치닫았을 때 미래상을 풍자한 것으로 윈스턴이란 주인공이 신념을 갖고 당의 체제에 저항하다 끝내 '자신의 의지'로 당에 굴복하며 비참한 생을 마감하는 음울한 내용이다.
만약 어떠한 심오한 세계관이나 작가의 신묘한 영적 통찰을 기대한다면 이 책을 덮고 이번에 업데이트된 카카오톡의 쇼츠 세계로 풍덩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 책이 왜 이렇게 명성을 갖게 됐냐고 묻는다면 그 당시의 불안정한 시대상과 풍자를 가장한 전체주의의 고증을 현실감 있게 반영하여 대중적인 권위를 얻게 됐다고 답할 수 있다. 사실 운이 좋았다고 본다.
글이라는 것은 결국 작가의 경험에 기반한다. 소설이란 장르도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경험이 없다면 상상도 없다. 오웰은 이 소설을 쓸 당시 환경이 가혹했다. 아내의 죽음, 폐결핵이란 지병과의 처절한 사투가 그것이다. 오웰은 운 좋게도 식민을 하는 입장인 제국주의의 권력 편에 태어났으나 회의감을 느끼고 사회적 약자의 삶을 체험하고 싶어 노숙도 개의치 않는 괴짜였다. 저자의 이름도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르포르타주의 성격으로 풀어낸 첫 작품인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에서 "가족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영국의 대중적인 이름 조지와 강의 이름 오웰을 따서 지었다."라는 불확실한 소문이 있다.
오웰의 이러한 환경과 경험이 동물농장과 1984를 탄생시켰다. 이제 당신이 궁금해할 만한 개괄적인 내용을 모두 추석선물세트처럼 한번에 전달했다. 만족하는가. 지금부터는 나란 사람의 색깔로 칠해진 호불호가 강한 글이니 안 읽어도 좋다. 책의 일부 내용들을 인용하며 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거침없이 개진하겠다. 난 스티븐 킹이 강조하는 글을 쓰는 사람의 자세처럼 글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한 사람이다.
어렸을 적 나에겐 악취미가 있었다. 그것은 상상에 기반한 극단적인 가정인데 '내가 만약 어떤 신념을 갖고 있고 그 신념을 밝히는 순간 뎅겅 목이 잘린다면, 그래도 나의 신념을 용기 있게 외칠 수 있는가?' 하는 터무니없는 것들이다. 만약 이 관문을 운 좋게 통과했다면 나를 더욱더 극악의 조건으로 몰아붙인다. 이를테면, 인간이 가장 고통을 느낄 것 같은 부분을 잔인하게 고문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 절멸의 육체적 고통에서도 나는 신념을 고수할 수 있을까?'
예상했겠지만 이 괴상한 악취미의 결말은 항상 나의 패배로 막을 내려야 비로소 끝이 난다. 그리고 나는 쓰라린 절망감을 맛본다. '한낱 상상일 뿐인데, 이러한 상상 속에서도 이렇게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니! 이 얼마나 거짓된 자아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뜬금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내가 어렸을 적 하던 이 해괴한 상상이 『1984』에서 주인공이 처한 현실이다. 윈스턴은 전체주의 사상에 얼룩진 세상에 반감을 품고 저항하다 끝내 발각되어 감히 인간으로서 견뎌낼 수 없는 정신적, 육체적 고문을 당한다. 그리고 이내 곧 '자신의 의지'로 신념을 바꾼다.
나는 어렸을 적 이런 상상을 통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나의 내면은 가증스럽다는 것이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을 것 같던 나의 기상도, 용기도 모두 상상 속 고통 앞에 부질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약게 태세를 전환할 뿐이었다. 유년시절 이런 나의 악한 점을 타인이 알지 않기를 바랐다. 난 당시 스스로에게 환멸과 모멸감을 느꼈다. 그 누군가는 나와 달리 극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떳떳이 고수할 수 있는 성인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점을 시사한다. 인간에게 부여된 존귀한 '자유 의지'란 것도 결국 잔악한 환경 앞에 무용이라는 것. 그래서 더욱 경각심을 갖고 세상을 자각하며 지금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거나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 오웬이 이러한 경종을 울린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의 시작은 악을 인정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고 난 생각한다.
진보가 급진적이면 공산주의를 가장한 전체주의로 향하며 보수가 급진적이면 파시즘으로 간다. 진보는 약자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결국 권력의 독점을 원하고, 보수도 국가와 민족, 자유 시장을 앞세우며 권력의 독점을 원한다.
현재 가장 안정적인 경제 체제로 인정받고 있는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심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누구나 알고 있듯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인간의 욕심이 일정한 선을 넘기 시작하는 순간 참상이 벌어진다. 오웰은 그것을 경계하는 듯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동기를 인정할만한 용기가 없었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한시적으로만 권력을 장악하겠다고 약속하고는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낙원이 도래할 것이라고 꾸며 댔지."
"누구든 권력을 장악하면 그것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법이지. 권력은 수단이 아닐세. 목적 그 자체네. 혁명을 보장하기 위해서 독재를 행사하는 게 아니라 독재를 하기 위해서 혁명을 일으키는 걸세."
"권력의 목적도 권력 그 자체네."
- 조지 오웰, 「3부」, 『1984』, 민음사(2003), 363-364쪽.
책의 내용처럼 오웰은 전체주의에 대하여 통렬한 직언을 내뱉는다. 그는 순수한 이상을 바랐다. 약자들을 진정으로 위하며 모두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궁극적 이상향. 모두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골몰하는 세상. 그러나 아쉽게도 인간에게 애초에 그런 '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태 인간의 '선'을 신봉한 체제는 모두 타락하다 못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이 책이 권위적인 이유는 이처럼 다양한 시각으로 해체하며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경고로 다가가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책의 어설픈 결말이 담긴 마지막 장을 넘기며 오웰이란 사람이 얼마나 헛헛한 삶을 살았을지 상상해 본다. 인간의 이상을 바랐던, 순수한 선을 열망했던 자가 가장 어두운 곳으로 끝없이 자유낙하하고 있다.
오웰에게 묻는다. "당신이 바라는 세상은 과연 올 수 있을까?"
1984
저자 : 조지 오웰
번역 : 정회성 옮김
출판 : 민음사(030616)
내용 : 인간의 끝없는 추락을 풍자하며 순수한 이상을 바라는 한 영혼이 쓴 글.
목차
제1부 ... 9
제2부 ... 149
제3부 ... 315
부록: 신어의 원리 ... 418
옮긴이의 말 ... 437
작가 연보 ... 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