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 헤르만 헤세 [서평]
헤르만 헤세란 사람을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책. 헤르만 헤세(1962, 향년 85세)는 세계 문학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대문호이자 노벨 문학상, 괴테상 수상자이다. 1877년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시인이 되고자 수도원 학교에서 탈주했으며 15살에는 자살을 기도하여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헤르만 헤세(이하 '헤세'로 약칭)는 1946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수상 사유에는 『데미안』이 아닌 『유리알 유희』가 언급됐다. 즉, 노벨 문학상을 받은 책이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데미안을 덮고 『유리알 유희』를 읽으러 가면 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이 문장이 어딘가 낯익지 않은가? 들어봄 직 한다던가. 이 글줄이 바로 데미안이란 책에서 나온 말이다. 저게 뭔 소리냐면 그냥 흑염룡 소환된 헤르만 헤세라고 보면 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자신에게 갇힌 내면의 세계에서 나와 선도 악도 아닌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신에 닿으러 가야 한다는 식의 뉘앙스로 이해하면 된다. 자, 개괄적인 소개는 이쯤에서 마치고 이번 서평은 살짝 매콤한 맛으로 가보겠다. 내 전문 아니겠는가.
우선 누구를 깎아내림으로 희열은 있지만 그 감정에 매몰되어 함부로 펜을 휘두르지 않는다는 점. 나에게 정말 인상 깊은 통찰로 느껴졌다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에 관대한 사람이라는 점. 언제든 열려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아주길 바라며 보험을 깔고 시작해 보겠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신이 '데미안'이란 책을 만들 때 엘리트주의 한 스푼, 신비주의 한 스푼, 중2병 한 스푼을 넣어 만들었다."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베다"읽고 잘난 맛에 취한 중2병 걸린 헤세라는 친구. 조금 폄하해서 표현하자면 "끌어당김의 법칙" 상위 호환(문학 ver.)이다.
글을 쓰면서도 참으로 통쾌하다. 읽고 나서 무언가 찝찝하고 찌꺼기 같은 잔여의 불쾌감을 선사하는 책이었기에 더욱이 그러하다. 이제 그 화를 풀 시간이 왔다. 깊이를 가장하지만 안전 수심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 같은 책이다. 특히 "베다", "우파니샤드", "싯다르타"로 이어지는 작가의 동양철학에 대한 사랑이 싹을 틔우는 전조가 아주 뚜렷한 책이다.
모든 철학들을 보면 결국 신을 찾던가 신은 없다고 하든가 자신이 신이 되든가로 귀결되는 것 같다. 이 책은 마지막에 해당된다. 신비주의에 근접한 색채를 띠는데 난 이 주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신비주의 추종자들에게 "그럼 너네가 신이라는 거네?"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아니? 우리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 우린 그냥 궁극적 실재(신, 우주, 모든 존재)와 합일이 되는 거라니깐?"이라 답할 것이다. 내 생각에는 신의 범주에 자신들이 동일하다라는 말은 다소 위험하고 거만해 보이니 에둘러싸는 방패일 뿐이다. 결국은 자신들이 신이 되는 방향이다. 그럴 바엔 난 차라리 신비주의 같은 껍데기 말고 날 것의 주장이 더 낫다고 본다.
데미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1인칭 시점으로, 싱클레어라는 주인공이 인생을 살아가며 내적 성장을 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인물의 지도자 격 역할인 데미안이란 극 중 인물로 헤세가 하고 싶은 말을 은근슬쩍 던지고 튀는 것을 반복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은 단 하나였는데 바로 이것이다.
"이리 와 보시오." 그가 한참 뒤에 말했다. "우리 이제 철학 좀 해 봅시다. 철학을 한다는 건 '아가리 닥치고 배 깔고 엎드려 생각하기'라고 하오." 헤르만 헤세,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데미안』, 민음사(2009), 136쪽.
이러한 문장이 나의 취향이다. 발칙하고 허심탄회한 언어. 이것을 아가리 닥치고로 표현한 전영애 역자님도 너무 좋다. 역시 책을 많이 읽으신 분 답다.
또한 데미안이란 작품은 영지주의적 평을 논객들에게 받았단 이야기도 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읽었던 책 내용이 연상되며 재밌는 헤세식 은유(메타포)를 발견했다. 영지주의는 인간에 신의 불꽃이 들어있다고 보는 사상인데 데미안을 읽다 보니 불꽃을 이미지화하는 글줄이 상당히 많았다. 아래 인용 문장을 갖고 왔다.
불그스름한 기운이 도는 / 입은 붉게 꽃피어 있었다. 109쪽
불그스름하게 테 둘린 눈 / 진홍의 입이 111쪽
스탠드의 약한 불빛 / 그가 성냥을 켜서 / 장작에 불을 붙였다 / 불꽃이 높이 솟았다. 136쪽
불을 쑤석였다 /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 조그맣고 날렵한 불꽃 / 난롯불이 황금빛으로 작열하는 / 등불이 꺼졌기 때문에 137쪽
그러한 의도를 은유로 흔적을 남겼는지 저자만 알 것이다. 난 맞다고 본다. 사실 모두 차치하고 지금부터만 글에 집중하면 된다. 전하려는 내용이 많다 보니 글을 너무 산만하게 퍼트렸는데 이제 직선으로 꽂겠다. 간혹 당신의 젊음을 빼앗겨도, 평범한 일상을 잃어 가도, 절망을 마주할지라도 자신의 소신을 끝끝내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불세출의 영웅이라거나 이러한 것이 아닌 그것마저 잃게 되면 자신이 그동안 걸어온 모든 길이 부정 당하기 때문이며 마지막 삶의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는 책의 말미에 이런 말을 한다.
"표적을 가진 우리는 세상의 눈에는 이상한 사람들, 위험한 광인들로 비칠지도 몰랐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깨어난 사람들 혹은 깨어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은 점점 더 완벽한 깨어 있음을 지향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행복 추구는 그들의 의견, 그들의 이상과 의무, 그들의 삶과 행복을 점점 더 긴밀하게 패거리에 묶는 것이었다. 그곳에도 노력은 있었다. 그곳에도 힘과 위대함은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견해로는 표적을 가진 우리는 새로운 것, 개별화된 것 그리고 미래의 것을 향한 자연의 뜻을 제시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고수(固守)의 의지 속에 살고 있었다." 헤르만 헤세, 「에바 부인」, 『데미안』, 민음사(2009), 191쪽.
이곳에서 고수는 고수하다의 고수다. 굳을 고에 지킬 수. 한마디로 현행 유지에 최선이다. 사전 뜻으로 차지한 물건이나 형세 따위를 굳게 지킴. 그냥 쉽게 말해 안주하고 더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은 삶을 안주하며 살아가지만 자신은 깨어 있다는 것. 미래를 향한다는 것이다. 난 여기에서 이 작가의 그릇됨과 욕망을 가장한 이상을 보았다. 그는 그저 이상을 꿈꾸는 이상한 몽상가였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표적을 가진 사람들처럼 동일한 행동 양상을 보였다면 헤세는 또 청개구리 마냥 군중에서 떨어져 반대로 걸어갔을 것이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헤세는 그저 다른 이와의 차이를 두고 싶은, 당신의 잘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고차원의 음란한 쾌락을 추구하는 한 고통받는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신이 책에서 데미안을 통해 슬쩍 놓고 튄 일명 '카인 추론법'이라 해두겠다. 이름은 내가 지었는데 꽤나 흡족하다.
그토록, 가차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당찬 그대의 모습을 스스로 아끼며 사랑스러워하는 한 사람의 표현이 담긴 글의 무더기이자 감정의 무덤. 데미안이다.
데미안
저자 : 헤르만 헤세
출판 : 민음사(090120)
내용 : 동양 신비주의를 차용해 자기 발견의 열병을 기록한 청춘 소설. 텅 빈 지식으로 모든 것을 아는 듯한 허울에 갇힌 말로 안 읽어도 되는 책.
목차
1. 두 세계
2. 카인
3.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4. 베아트리체
5.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6. 야곱의 싸움
7. 에바 부인
8. 종말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