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서평]
"이제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무언가를 알기 위한 시간이 없어. 사람들은 상점에서 다 만들어진 것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친구가 없어."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코너스톤(2023), 98쪽.
나는 어른이다. 어린 시절 이 책을 읽지 못한 채 몸만 훌쩍 커버린 이상한 어른이다. 어린 왕자에서 조종사가 늦은 나이에 그림을 시작하듯 나 또한 늦은 나이에 독서를 시작했다. 이 나이에 어린 왕자를 읽으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성경 다음에 가장 많이 인쇄된 책이라도 선뜻 들고 다니며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상한 어른'이 됐다.
'내가 책을 많이 안 읽은 사람이라는 티가 나면 창피할 것 같은데···.'
'그래도 남들은 다 읽었다는데 지금이라도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이게 엄청 유명하다는데 왜 유명한지 알고 싶어.'
'아니, 사실 무리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아.'
'이 책이 유명한 이유는 작가의 문체 때문일까?'
'작가의 표현력이 좋을까?'
'분명 어떤 숨은 의미가 있겠지?'
'단순 동화는 아닐 거야'
'이것에 대해 서평은 심오하게 써야겠지? 그게 어른의 수준이잖아'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저자의 메시지를 꿰뚫어야만 해, 그래야 통찰력이 있는 사람인 거야"
'그래야만 나의 잘남을 세상에 알릴 수 있어'
하며 끊임없는 이상한 어른의 생각을 한다. 그저 생각이라 칭하기에도 민망하고 저급한 무더기의 것들. 난 이제 이상한 어른이 돼 버렸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런 영악한 나를 위해 신비한 마력을 가진 희멀건 그림체로 포근히 안아주고 위로해 준다.
이 책에서 비춰지는 어른들은 각자의 중요한 일을 하느라 바쁘다. 바빠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바쁘다. 아니, 동심 속에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바쁜 세상 속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것?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탐하는 것? 또는 자신의 우월함을 뽐내 보이는 것?
내가 만약 자식이 있다면 이 책을 선뜻 보여주긴 어려울 것 같다. 자신의 행동이 어른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모든 행동에 숫자를 그려 넣는 어른이 되어 버릴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또는 내가 아이에게 어른이라는 사실을 들킬까 봐.
옳고 그름을 저울질하는 어른이 되기 전에 난 어린 왕자와 해가 지는 걸 하염없이 바라보며 가장 느린 시간을 걷는 이상한 어른이 되고 싶다.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문장들을 모두 인용했다.
"나비를 만나려면 애벌레 두, 세 마리는 견뎌야겠지." (49쪽)
"나는 얼굴이 빨간 사람이 살고 있는 어떤 별을 알고 있어.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꽃향기를 맡아본 적이 없지. 별을 바라본 적도 없어.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도 없고. 계산 말고는 아무 일도 해본 적이 없어. 그 사람은 하루 종이 ㄹ아저씨처럼 '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 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같은 말만 되풀이하면서 거만함에 가득 차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라고!" (38쪽)
"이 사람이야말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데. 하지만 저 사람의 별은 정말 너무나 작아. 나까지 있을 자리는 없어···.' (74쪽)
"자신들이 바오밥나무처럼 중요하다고 믿는다." (82쪽)
"게다가 사람들은 상상력도 부족해" (90쪽)
"너희들은 아름답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어." (101쪽)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101쪽)
"사람들은 급행열차를 타고 달리지만 자신들이 무얼 찾으러 가는지는 모르고 있어." (111쪽)
"내 몸은 버려진 껍질 같을 거야. 버려진 껍질은 그렇게 슬프지 않잖아···." (124쪽)
* 인용된 모든 문장들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코너스톤, 2023, 김수영 옮김)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힌다.
어린 왕자
저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출판 : 코너스톤(230810)
내용 : 동심으로 돌아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책. 인생에 담긴 지혜가 많을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이게 될 책.
목차
어린 왕자 009
해설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