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프래질』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서평]
안티프래질, 난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모두 다 읽고 난 뒤에도 동일하다. 그러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이 책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유튜브 떠벌이들이 이 책을 개나소나 추천하니 이 책에 대해 관심을 갖기도 전에 차게 식어 버렸고 유튜브에서 책 추천을 하며 주둥아리를 가볍게 움직이는 것들을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들이 이 책을 언급하면 언급할수록 이 책은 나에게서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그릇된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벌레들에게 '너넨 벌레야!' 하며 가감 ㅇ벗이 눈치 보지 않고 직언하는 책이다." 그리고 나 또한 이 책이 정교한 그만의 언어로 다듬은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기 이전부터 이런 뱀새끼 같은 이들을 항상 욕하고 다니는 것에 가감이 없던 한 사람으로서 동지를 만난 기분이다. 책을 읽는 내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나만의 언어를 더욱 더 날카롭게 연마하여 이들을 서슬퍼런 언어로 베어버릴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위대한 업적 따위는 없다. 가령, 노벨상이라든지 노벨상이라든지 노벨상아리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 책에서 얻어갈 수 있는 통찰은 삶에 대해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건강한 태도이다. 나 또한 상당 부분 공감하며 읽을 정도로 저자의 방향은 꽤 곧은 편이다. 나에게 이런 평을 받는 것은 이전의 내 서평들을 읽어 봤으면 알겠지만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이 책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함구하겠다. 여태 책을 읽어오며 유일하게 망설이지 않고 추천할 수 있는 책은 딱 두 권. 성경과 슈독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절대 무시할만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난 책을 선정할 때 신중을 가하는데 전자책은 다소 여유롭게 고르는 편이다. 그래서 이전에 읽은 책을 다 읽고 무엇을 볼지 고민하던 찰나, 당시 나의 호기심을 일게 했던 친구가 이 책을 읽고 있길래 대강 한 400-500쪽 정도를 예상하고 가볍게 읽으려 밀리에서 고른 것이 계기가 됐다. 자 각설하고 오랜만에 서평을 쓰느라 머릿속 정리가 잘 안 되고 읽은 지 꽤 됐기에 다시 책을 펼쳐 당시 메모와 하이라이트들을 톺아가며 글을 쓰기에 말을 떠듬떠듬거려도 양해 바란다. 애초에 난 못난 놈이지 않던가.
이 책은 주제와 내용이 산발적으로 분산된 편이므로 지금부터는 가볍게 줄거리를 요약 후 내가 좋게 본 내용들을 집어가며 나의 견해를 풀어 글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난 다양한 철학 서적을 읽으며 자신의 삶에서 리스크를 감내하지도 않고 어려움을 당해보지도 않은 이가 철학과 자연을 운운하는 것을 참으로 볼썽사납게 생각한다. 책을 집필하는 것도 요즘엔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 집필은 붓을 직접 잡고 글을 쓰는 것에서 온 단어인데 요즘 인간들은 책을 집필하지 않고 만든다. 다음 책의 인용 문장을 보자.
"나는 글을 쓰면서 글의 한 부분을 구성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특정 주제에 관한 책을 참조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며, 나아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 고민 끝에 여과되어 나오는 아이디어만이 받아들여질 만하다. 그리고 이런 아이디어는 도서관이 아니라 현실에서 나온다."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서문」, 『안티프래질』 , 와이즈베리(2013), 44쪽.
"20세기의 다작 소설가로 유명한 조르주 심농Georges Simenon은 1년에 60일만 글을 썼고 나머지 300일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200편이 넘는 소설을 썼다."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11장 록 스타와 결혼하지 말라」, 『안티프래질』 , 와이즈베리(2013), 352쪽.
이 문장들만 봐도 저자의 태도가 어떤지 대충 가늠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상당 부분 공감하는 바이다. 요즘은 책을 집필하지 않고 만든다. 여러 책에서 한 말들을 보따리상처럼 한 곳에 담아내는 것이다. 그네들은 저자가 아닌 문장 정리가들이며 요약자들이다. 타인의 경험과 입술을 빌려 자네들의 권위를 책이란 도구를 이용하여 그저 한몫 더 챙기기 위한 계책이자 간사한 꾀를 부리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군중들을 더욱 쉽게 현혹시키기 위한 무기다.
뭣 같지도 않은 책을 이력에 내세우며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잔대가리 굴리는 응애 새끼만도 못한 해악을 온 사회 전반에 걸쳐 끼치는 벌레 새끼들인 것이다. 난 이들을 인간이 아닌 그저 물건 간의 이송을 돕는 컨베이어 벨트로 보는 것이 맞다는 주의다. 글과 책이란 것은 양이 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양조차 남의 입술을 빌려 외치는 앵무새만도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래, 이 책에 의하면 '사기꾼'이다. 양의 방패 뒤에, 숨어 독서량 뒤에 숨어, 책을 읽고 난 뒤 자신의 생각을 남기는 한 문장조차도 없이, 그저 이 책에서 저 책으로 허영만 채우고 그릇된 자아만 키워가는 것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자그마치 1753쪽에 달하는 꽤 두꺼운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한 번 펼치면 끝까지 읽어야만 하는 저주에 걸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책장을 넘길 뿐이었다.
책의 줄거리는 제목처럼 《Antifragile》 부서지기 쉬운 것의 반대말은 최악의 경우에도 손상되지 않으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것을 책 전체에 걸쳐 다각도로 시사한다. '세상은 변수덩어리인데 미래의 변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정신병 걸린 소리 하는 학자 새끼들의 말은 무시하고 오히려 변수를 맞이할수록 강인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자'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관을 책에 풀어놓았다. 줄거리는 이제 마치고 내가 좋게 본 내용들과 함께 나의 생각들을 하나하나 인용과 함께 풀어보겠다.
"엣날에는 자신의 행동으로 피해를 보는 리스크를 감수했던 사람들만이 높은 지위를 얻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런 선택을 했던 영우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정확하게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시민들이 대가를 치르는 동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스템을 악용하고 있다. 역사상 어떤 순간에도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사람들, 즉 개인적으로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커다란 권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서문」, 『안티프래질』 , 와이즈베리(2013), 21-22쪽.
난 요즘 시대에 우후죽순으로 발생하는 이 벌레 같은 놈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지만 매우 불쾌하고 더러운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이 문장들은 현시대를 관통하다 못해 걸레짝을 만들어버린다.
상품을 판매하는 이들은 CS를 기계음으로 대체하거나 그들이 좋아하는 '시스템화'를 통해 불편한 감정 소모를 일체 회피하며 편하게 물건만을 팔려고 한다. 책팔이와 강의팔이들은 얕고 얕은 검증도 안된 지식들을 사는 사람만 있다면 단가를 천정부지로 설정하는 것에 일말의 양심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려고 발악한다. 그리고 그들을 발견하기 위해선 물불 가리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팔며 부모를 팔며 메타 광고의 좁은 사각 옥에 갇히기를 꺼려하지 않는다.
이처럼 다방면의 분야에서 실질적인 어려운 업무나 더러운 업무는 하지 않고 돈을 쉽게 벌려는 이들이 적잖다. 난 그런 마인드를 병신이라고 한다. 신체만 온건하다고 해서 정상이 아니다. 정신이 병신인 그네들은 진정 병신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요즘 시대는 어설픈 진화론 책과 심리학 책을 신봉하다 못해 맹신하는 광신도 같은 벌레들도 넘쳐난다. 이들의 특징은 진화론 책과 심리학 책 그리고 몇 권의 철학책을 읽은 뒤 마치 세상을 통달한 것처럼 주름잡는다. 또한 운동(러닝), 독서, 글쓰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난 이들 또한 사기꾼으로 규정한다. 타인의 지혜를 가벼이 여기나 겉으로는 고도의 사회화 가면으로 안 그런 척하는 검은 속내를 지닌 이들이다. 지들이 지혜롭다 스스로 자처하는 지혜 호소인들이다.
"사기꾼을 보고 사기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도 사기꾼이다."
"타협은 묵인과 같은 의미다. 내가 인정하는 단 하나의 근대 명언은 조지 산티야나George Santayana가 했던 말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진실함을 가지고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은 도덕적으로 자유롭다.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서문」, 『안티프래질』 , 와이즈베리(2013), 44, 46쪽.
"언어학자 기 도이처Guy Deutscher는 자신의 저서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Through the Language Glass』에서 원시인들은 색맹이 아닌데도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색깔에 대한 명칭만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테스트를 해보면, 그들은 같은 계열의 색깔끼리 성공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그들은 무지개를 보면서 색깔의 섬세한 차이를 인식할 수 있지만, 이런 차이를 언어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원시인들은 생물학적으로 색맹이 아니지만, 문화적으로는 색맹이다.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1장 다모클레스와 히드라」, 『안티프래질』 , 와이즈베리(2013), 75쪽.
마지막 인용 문장을 보면, 원시인들이 말하는 색의 종류는 두 개 내지 세 개의 색상이 전부이지만, 결국 모든 색을 볼 줄 알며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내가 굳이 인용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어설픈 지혜를 통달한 무리들이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지만 속으로 진화 관련, 심리 관련, 운동, 글쓰기, 독서를 안 하는 이들을 무시하곤 하는데 그들이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것엔 서툴지라도, 그들의 지혜는 오히려 더욱 뛰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이 진화 관련 책을 읽는 것을 즐겨하는 진화가 덜 된 벌레 새끼들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아 참으로 답답하다.
앞의 인용 문장은 악을 보고 악이라고 외치지 않는다면 그 또한 그 악에 타협한 것. 즉 합의한 것이라는 의미로 귀결된다. 이것은 성경에도 비슷한 사례가 나오는데 여자가 성문 안에서 강간을 당했다면 그 여자와 남자를 모두 돌로 쳐 죽이라고 하지만 들에서 여자가 강간을 당했다면 남자만 죽인다. 들에서는 소리를 질러도 듣고 도와줄 사람이 없었지만 성문 안에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즉, 묵인한 것과 다름없단 것이다. 그게 악이란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동의한다만 도덕적으로 세상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는 뒷 명언 따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세상엔 도덕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가 내 생각이다.
"사업계획을 보고 투자하지 말고 사람을 보고 투자하라. 그래서 직업을 예닐곱 번 혹은 그 이상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을 찾아라."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15장 패자가 쓰는 역사」, 『안티프래질』 , 와이즈베리(2013), 738쪽.
이 문장은 조금은 결이 다른 주제로 이야기하기 위해 가볍게 가져왔다. 옛날이고 지금이고 직장에 면접을 보러 갈 때면 자주 퇴짜를 맞곤 했다. 나의 이력은 단 한 번도 같은 직업 또는 직무를 연달아 경력을 이어나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점을 장점으로 보는 곳은, 그런 지혜로운 인간들이 있는 곳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그저 "재직 기간이 조금 짧으신 편이네요"하며 비아냥대는 말투나 속뜻을 숨긴 언행만 할 뿐이다. 그러면 나 또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죠."라고 답해준다. 그리고 그네들의 똥 씹은 표정을 뒤로하고 나온다. 어차피 합격을 시켜도 그런 똥멍청이들과 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 이 부류의 인간들은 자신들의 이익의 최대치 발현을 위해 인간보다 본인들 잇속을 챙기는데 급급한 놈들이 많다. 이것은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니 믿어도 좋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자유인free man은 생각이 자유로운 사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자유로운 시간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24장 윤리를 직업에 짜맞추다」, 『안티프래질』 , 와이즈베리(2013), 1307쪽.
정말 마지막 인용 문장이다. 글을 따라오며 저자의 성향이 어떤지 더불어 알고 싶진 않았겠으나 나의 생각까지 어떠한지 알게 됐을 것이다. 내 꿈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다. 돈의 노예가 되지도, 시간의 노예가 되지도, 사람의 노예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정말 멋진 사람들과 즐겁게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저자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 나와 비슷한 길로 들어서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지레짐작해본다.
마지막으로, 난 이 책을 무시하진 않으나 추천하진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