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연민의 가벼움

by 뭘봐

연민이 너무나도 우습게 느껴졌다.

오늘 릴스를 보다가 아기 버팔로를 노리는 사자무리를 보게 되었다. 사자 무리는 돌아가며 아기 버팔로를 물었고 어미 버팔로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아기를 지켰다. 어미가 지쳐갈 무렵 사자들을 원을 좁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위기의 순간 버팔로 무리가 어미를 돕기 위해 달려왔고 사자들은 도망을 쳤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안도했다. 나는 버팔로에게 연민을 느꼈고 그들의 생존을 응원했다. 그러나 댓글 한구석에는 집에 돌아간 사냥에 실패한 어미 사자를 바라보는 앙상한 갈비뼈를 내보이는 아기사자들이라는 댓글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의 연민은 아기사자들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그렇다고 난 그들이 아기 버팔로를 잡아먹길 원한 것은 아니다.

결국 자연계의 법칙대로면 안타까운 아기사자가 살기 위해서는 안타까운 아기 버펄로의 목숨을 앗아야만 한다. 자연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일들은 약육강식이라는 잔혹한 말로써 설명되는 것이 아닌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어떠한 의미도 없다. 사자가 종속한다고 버팔로가 종속한다고 우주적 의미에서 어떠한 영향도 없다. 그저 그들은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서 혹은 쾌감을 위해서 다른 생물의 생명을 뺏는다. 거기에는 딱히 우리가 생각하는 감정이랄 게 없다.

이는 인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인간은 연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생존에 있어서 상당히 무가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 버펄로를 보고 연민을 가진 사자가 있었다면, 굶는 아기사자를 보고 연민을 가진 버펄로가 있었다면 과연 그들은 생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고 동시에 짧은 글 하나, 막연한 상상하나만으로 연민은 너무도 쉽게 옮겨갔고 답을 찾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인간은 왜 연민을 가지게 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연민이 가벼워야만 하는 필수적 이유가 있다는 전재하에 고민을 하고 이유를 찾는다면 궁극적으로 연민이 부족생활을 하던 인간을 종속하는데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이족보행을 선택했기에 다른 동물에 비해 출산 시 위험도가 높다. 그렇기에 고아의 발생확률이 높은데 연민이라는 감정은 자신이 낳지 않은 아이에게도 전염되어 모성애 부성애를 불러일으키고 고아를 부족이 돌보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연민이 더 이상 우습지 않게 느껴졌다. 연민은 우리가 이성으로 세운 모든것을 뒷받침하는 감정이었고 우리는 그로부터 성장해 온것이었다. 다시말해 연민은 참을 수 없을만큼 가볍기에 고귀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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