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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킴 Rickkim Jun 03. 2017

릭, 왜 계기판을 안 봐요?

'회사'라는 이름의 버스를 몰아보니...


회사를 하나의 버스 Bus라고 비유해보면,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는 운전수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업 실패는 교통사고로 비유하는 것이 적절하리라.



작년에 크게 사고를 당하고, 가사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처럼 지내다 마셀펀 프로젝트를 전환점으로 최근에서야 조금씩 제정신이 돌아오고 있다. 이제야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지금 어떤 상황들인지 돌아볼 여유가 아주 살짝은 생긴 것을 느낀다. 요즘은 뭔가 재활 운동을 하는 기분으로 살살 조금씩 움직이며 살고 있다.


작년의 사고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긴 했지만, 의미 없는 자책이나 후회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복기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 들어와서다.


작년 사고의 제일 큰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운전수 인 나 자신. 음. 그건 맞다. 그럼 난 왜 나는 이 사고를 막지 못했을까? 성격이나 역량 등의 보이지 않는 원인을 제쳐두고 조금 더 보이는 원인으로 좁혀서 생각해보았을 때, 내가 생각하는 제일 원인은 “제대로 된 계기판”을 마련하지 못해서 이다.


달리기 위한 엑셀러레이터, 멈추기 위한 브레이크, 방향의 전환을 위한 핸들, 사방을 확인하기 위한 앞 윈도우와 백밀러, 사이드 밀러까지…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현재 내가 타고 있는 자동차의 상태를 한눈에 보여주는 계기판이 없다면 이 모든 것들은 소용없다.


현재 내가 얼마만큼 달려왔는지, 현재 기름은 얼마 정도 남아 있고, 언제 기름을 넣어야 하는지, 토크가 너무 급격하게 오르지는 않는지, 엔진이 과열되고 있지는 않는지… 등의 자동차의 상태 정보들을 인지할 수 있도록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계기판은, 달리고 서고 방향을 트는 자동차 그 본연의 기능보다 우선한다. 자동차 그 자체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작년의 나는 이런 계기판이 없었다.


그저 멋진 자동차를 만들고, 소비되는 기름보다 더 많은 기름을 구해서 넣으면 된다 라는 지금 생각하면 매우 안일한 생각으로 운전을 했었다. 몇 번의 행운으로 한동안은 잘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했기에 막연한 낙관주의와 자기합리화로 몇 번의 중요한 기회들을 그냥 놓쳐버리고 말았다. 계기판이 있었더라면 보다 나은 다른 판단을 했겠지만, 그렇지 못했고, 그래서 결국 내가 운전하던 버스는 기름이 떨어져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같은 버스를 타고 있던 승객과 같은 팀원들에게도 폐를 끼쳤다.


요 며칠, 이제야 그 계기판을 마련하고 있다.


아직 기초적이긴 하지만, 나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를 이전보다 명확히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현재 가진 것은 무엇인지, 문제들은 무엇인지, 어떤 것들이 얼마만큼 필요한지,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무엇은 나중으로 돌려야 하는지와 같은 정보들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계기판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제 보니 문제의 해결까지 내 예상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앞으로 해야 할 것들도 많다. 넘어야 할 고비도 많다.


하지만 이 계기판으로 문제를 마주하니, 이전에 문제가 있다고 막연하게 상상했을 때보다 훨씬 덜 불안하다. 적어도 내가 뭘 얼마만큼 해야 할지가 보이니까. 모름지기 눈에 보이지 않는 적보다 눈에 보이는 적이 상대하기가 훨씬 쉬운 법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번 사고를 거치며 느낀 것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문제"라는 놈에 대해서이다.



이 문제라는 놈은 많은 사람들이 정말 피하고 싶은 놈인 것 같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 놈이 나랑 있다고 인정하기도 쉽지 않다.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지고,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어 진다. 그런데 아무리 도망가고 외면해도 어느새 더 커진 상태로 내 옆에 앉아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안녕?
너 왜 나 계속 모른척해?


내가 배운 중요한 한 가지는, 그런 문제를 똑바로 마주했을 때 오히려 그놈이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다. 분명히 거기 있고, 어디로 없어지진 않지만, 적어도 더 커지지는 않는다.


휴.. 그래, 안녕?
사실 너가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
이제 어디 안 도망갈께.
그럼, 우리 정식으로 서로 이야기 좀 해볼까?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서야 문제라는 놈과의 제대로 된 대화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렇게 난 또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고 있다.


:

2017년 6월 3일, 토요일.

Rick Kim

#릭의어느날의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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