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먼저 품어버린 새벽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그리움은 걸음이 된다

by 리도씨


오늘도 논길 위에 안개가 눕는다. 희미하게 번지는 발자국과 흐려지는 수평선 사이에서, 나는 또 한 번 멈춰 선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 닿지 못할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그대를 생각하며 안개 속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그리움은 멈춘 감정이 아니라, 끝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조용한 힘이라는 것을 믿으며.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천천히 걷는다. 기다림이 무력해서가 아니라, 기다림이 내 마음의 모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지만, 그 서늘함은 상처만의 온도가 아니다.


안개는 언제나 먼저 오고, 나는 조금 늦게 도착한다. 그 순서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먼저 안겨도 되는 풍경이 있고, 늦게 도착해도 되는 마음이 있다.

fog-new-3.jpg

사람들은 그리움을 선명한 감정이라 말한다. 하지만 내게 그리움은 언제나 안개에 가까웠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끝내 붙잡을 수 없는 것. 가까워질수록 더 흐려지고, 멀어질수록 더 짙어지는 것. 그래서 나는 흐려지는 순간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는 이상한 거리다. 한 걸음만 더 가면 닿을 것 같고, 한 걸음만 늦으면 영영 멀어질 것 같다. 그 틈에서 사람은 자꾸 계산하게 된다. 그러나 안개는 그런 계산을 비웃듯 거리의 의미를 지워버린다. 결국 남는 건 단 하나, 지금 내가 내딛는 걸음뿐이다.

fog-new-2.jpg

내가 한 발을 내딛기도 전에 풍경은 경계를 지우고,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목소리는 공기 속으로 퍼져 사라진다. 새벽은 언제나 이렇게 조용한 방식으로 나를 이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멈춰 선다.


논길은 밤새 젖은 체온을 품고 있다. 발끝에 닿는 흙은 차갑고 부드럽고, 멀리서 첫 새가 울고, 아직 다 깨어나지 않은 마을은 숨을 고른다. 그 고요 한가운데 희미하게 번지는 발자국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대가 지나간 자리일까. 아니면 그대를 놓친 내가 서 있던 자리일까.

fog-new-1.jpg




이전 10화다리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