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에는 향기가 있다.
그것은 꽃의 향기일 수도 있고, 흙의 냄새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누군가의 체온처럼 따스한 향기일 때도 있다. 우리는 늘 어떤 길을 걷고 있지만, 그 길에서 맡았던 향기가 남아 우리를 기억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나는 길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바람이 부드럽게 스치는 그 순간이 좋다. 목적지보다 길 위의 순간에 집중하는 걸 배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전에는 늘 목적지를 향해 조급하게 걸었고, 돌아보지 못한 길의 향기들은 내 곁을 스쳐가 버렸다.
어느 봄날, 오래된 동네 골목을 걷다가 문득 멈춰 섰던 기억이 있다.
벽에 기대 핀 작은 풀꽃들이 햇빛을 머금고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오래도록 발을 떼지 못했다. 그 풀꽃들이 풍기는 풀냄새와 흙냄새는 어릴 적 외할머니 댁 마당을 떠올리게 했다. 유난히 따뜻했던 마당, 나무 바람개비가 돌아가던 그 여름, 맨발로 뛰어놀며 웃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향기는 기억을 데려온다.
잊고 살던 얼굴, 오래된 풍경, 그때의 내 목소리까지 모두 불러온다. 사람은 냄새로 사랑을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사랑도, 이별도, 용서도 모두 향기와 함께 돌아오니까.
살면서 가장 깊게 각인된 향기는 의외로 아주 평범한 날의 것이었다.
20살, 비가 오던 어느 여름 오후, 빗물에 젖은 아스팔트 냄새, 젖은 나무의 향기, 그리고 그날 따라 유난히 진하게 느껴졌던 커피 향. 나는 그날, 거리에서 비를 맞고 있었다.. 처음 느낀 이별. 사랑한다고 쓰고, 고맙다고 쓰고, 미안하다고 쓴 마음의 편지가 비 내리는 길 위에서 점점 젖어갔다. 머리카락 위에 떨어진 빗방울이 마치 눈물 같았다.
나는 그날, 길 위에서 울었다.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빗소리는 나를 대신해 울어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다가, 나는 문득 향기를 맡았다. 그것은 젖은 나무와 풀의 냄새였다. 그리고 비를 품은 향기를.
그날 이후, 나는 길 위에서 향기를 찾기 시작했다.
슬플 때도, 기쁠 때도, 길은 늘 향기를 품고 있었다. 장미꽃이 피는 골목의 달콤한 향기, 가을날 나뭇잎이 마르는 쓸쓸한 냄새, 겨울 아침 차가운 바람 속에 섞인 따뜻한 국물 냄새까지. 모든 향기는 순간을 담고 있었고, 그 순간들은 내 삶의 작은 조각이 되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 곁에는 과자 냄새가 퍼져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언젠가 저 아이들도 오늘의 향기를 기억하게 될 거라고. 어른이 되어 힘들고 지친 어느 날, 문득 이 향기가 스쳐 지나가면, 지금의 웃음소리와 햇살 가득한 이 순간이 떠오를 거라고.
삶은 그렇게 향기를 따라 걷는 여정이다.
어떤 향기는 나를 울리고, 어떤 향기는 나를 웃게 하고, 어떤 향기는 내가 더 나아갈 용기를 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향기는 언제나 현재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숨을 들이쉴 때에만 비로소 맡을 수 있다는 것.
나는 오늘도 길을 걷는다. 천천히, 깊게 숨 쉬며. 오늘의 향기를 마음에 담고, 언젠가 다시 이 향기가 돌아올 그날을 위해.
그리고 조용히 되뇐다.
“향기는 남는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