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은 밖을 보는 틀이면서, 동시에 안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아침이면 햇살을 머금은 공기가 창을 두드리고, 저녁이면 노을빛이 조용히 기울어 들어온다. 나는 종종 그 창가에 앉아 생각한다. 흘러간 시간들, 지나온 얼굴들, 그리고 말하지 못한 마음들에 대해.
기억은 파도와 닮았다.
가끔은 조용히 다가와 발끝을 간질이고, 또 어떤 날은 무너질 듯 휘몰아쳐 가슴을 적신다. 그러나 아무리 거세게 휘돌아도, 기억은 늘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 기억들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의 나로 서 있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엔 작은 창이 하나 있었다.
그 창은 바람이 머무는 길목이었고, 해가 가장 먼저 드는 자리였다. 나는 그 창가에 앉아 노란빛으로 물든 마루바닥을 바라보곤 했다. 그 빛은 마치 조용한 속삭임 같았다.
어릴 적의 나는 그 말을 몰랐지만, 어렴풋이 그 따뜻함을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은 내게 다정한 이불 같았다. 세상의 거친 바람이 불어도, 나는 그 안에서 잠시 안도할 수 있었다.
살아가며 우리는 무수히 많은 창을 마주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스쳐간 풍경, 오래된 노래 한 소절,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냄새 하나가 기억의 창을 열어젖힌다. 그 창 너머로 우리는 잊고 지낸 얼굴을 만나고, 지나간 계절을 다시 살아낸다. 때로는 아프지만, 그 아픔마저도 우리를 따뜻하게 한다.
나는 어느 봄날의 기억을 자주 떠올린다.
잎사귀가 막 피어나던 어느 날, 그 사람은 말없이 내 손을 잡았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등을 돌렸다. 너무 많은 감정이 쏟아질까 봐, 차라리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나는 수없이 마음속에서 그날을 되뇌었다.
그때의 침묵은 후회가 되었고, 후회는 긴 여운이 되었다. 하지만 그 여운이 나를 바꾸었다. 나는 더는 침묵 속에 머무르지 않기로 했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전하고, 미안하다고 솔직해지는 용기를 조금씩 배워갔다.
기억의 창은 시간을 거슬러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때는 몰랐던 마음, 그 순간엔 보지 못한 눈빛, 그리고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감정들. 삶은 그렇게 조금씩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어도, 그 상처를 품은 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나는 이제 아침마다 창을 연다.
외부의 풍경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단, 내 안의 풍경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오늘은 어떤 감정이 내 안에 머무르고 있는지, 어떤 마음이 고요하게 나를 부르고 있는지 듣기 위해.
창문은 말이 없다. 하지만 창가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말을 걸어온다.
"괜찮아, 네가 지나온 길은 모두 의미가 있어."
나는 그 말을 믿는다. 모든 실패도, 모든 상처도, 심지어 잊힌 꿈들조차도 내가 걸어온 길의 일부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자신의 창을 가지고 있다.
그 창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 창 앞에 조용히 앉아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자. 바쁘게 살아가느라 미뤄둔 질문들, 눌러두었던 감정들, 그리고 끝내 말하지 못한 진심들이 그 창가에서 조용히 고개를 든다.
오늘 하루가 아무리 빠르게 흘러가더라도, 잠시 멈춰 창가에 앉아 보자.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그 안에는 늘 같은 말이 숨 쉬고 있다.
"너는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기억의 창은 지나간 날을 돌아보게 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길도 보여준다. 우리는 기억 속에서 따뜻함을 발견하고, 그 따뜻함을 안고 미래로 걸어간다.
당신의 창가에도 빛이 들기를. 그 빛이 당신을 감싸 안고, 오늘을 살아갈 용기를 전해주기를.
창문을 여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다시 다가가는 일이다.
지금, 당신의 기억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억은 당신에게 어떤 마음을 남겼는가?
잠시 눈을 감고, 그 창가에 앉아보자. 모든 게 조용해질 때,
그 기억은 분명 당신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괜찮아. 너는 참 잘 살아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