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이 머무는 해변

by 리도씨

파도는 늘 같은 모양으로 밀려오지 않는다.

어떤 날은 조용히 모래 위를 쓰다듬고, 어떤 날은 거칠게 마음을 흔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날도, 파도는 해변을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다정함과 닮았다. 한결같진 않아도, 마음을 다녀간다는 점에서. 나는 오래전부터 다정함이란 단어에 약했다. 부드러운 그 말 한마디가 때로는 삶 전체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다정함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지만, 누구나 주는 건 아니다.

때로는 용기가 필요하고, 때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이 필요하다. 나는 삶의 어느 시점에서부터,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먼저 위로받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나는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모르는 게 많아서가 아니라, 말보다 표정으로, 눈빛으로 더 많은 걸 느끼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다정한 사람은 언제나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었다. "괜찮아?", "천천히 해도 돼.", "그냥 너라서 좋아." 그렇게 아무 조건 없이 건네진 말들은, 내 마음 한구석에 고요한 등불처럼 자리 잡았다. 나는 그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언젠가 누군가에게도 같은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상처를 입는다.

말로, 침묵으로, 또는 무심함으로.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모든 상처의 기억에서 가장 오래 남는 건, 그 상처를 감싸주던 순간의 다정함이다. 누군가의 손길, 누군가의 따뜻한 눈빛, 그리고 위로를 건넨 한 문장. 그것은 우리가 다시 사람을 믿게 만들고, 다시 세상을 걸어가게 만든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다정함의 장면은, 아주 평범한 일상에서 피어났다.

늦은 밤, 피곤한 하루 끝에서 누군가가 건넨 "수고했어"라는 말. 비가 내리던 날, 우산 없이 걷던 내게 우산을 씌워주던 조용한 행동. 말하지 않아도 내 기분을 알아봐 준 눈빛 하나. 그 모든 순간들은 작았지만, 내 마음을 오래도록 데워주었다.


세상은 크고 복잡하다.

하지만 그 속을 살아가는 우리는, 작고 단순한 온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바로 다정함이다. 거창한 변화도 아니고, 거대한 구조도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주고받는 조용한 기적.


나는 다정함이 해변과 같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다정함을 건넨다는 건, 그의 마음에 조용히 발을 담그는 일이다. 조심스레 물결을 일으키고, 아프지 않게 다가가는 일. 그리고 끝내, 그 마음이 스스로 밀려오는 물결에 마음을 열게 만드는 일이다.


그런 다정함은 말보다 묵직하고, 침묵보다 따뜻하다. 그것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돌아가고, 닫힌 마음을 열게 만들고, 사라졌던 웃음을 되찾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누구나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정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다정함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바쁘고 지친 하루 속에서도 누군가를 바라보는 눈빛, 상처받은 마음에도 다시 다가가는 용기, 그리고 스스로가 다정함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 그것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나 역시 때로는 다정하지 못했다.

지치고, 화나고, 스스로도 흔들릴 때면, 남을 향한 마음조차 돌보지 못한 날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날조차, 누군가가 건넨 다정함 덕분에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내가 다시 누군가에게 다정해질 수 있었던 건, 그 누군가가 내게 먼저 다정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빛이 된다.

불꽃처럼 뜨겁진 않아도, 잔잔히 타오르는 촛불처럼.

그 불빛 하나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나는 오늘도 조용히 등불을 밝히고 싶다.

그저 다정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이 글을 읽는 당신, 아마도 여러 날의 무게를 안고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았거나, 스스로를 탓하며 힘든 밤을 견뎠을지도 모른다. 그런 당신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그 자체로 충분히 괜찮은 사람입니다.”


혹시, 지금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그에게 조용히, 따뜻한 다정함 하나를 건네보자.

말이 아니어도 좋다. 눈빛, 손길, 마음. 그 무엇이라도.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정함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을.


파도가 다시 해변을 찾아오듯이.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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